7. 패전의 쓰라림 찌는 듯한 7월의 불볕더위는 진군하는 병사들의 걸음을 마냥 더디게 했다. 서홍천의 둑은 진흙이 말라 쩍쩍 갈라진 상태였고, 고구려 중군의 행렬이 지나가는 길도 먼지로 자욱했다. 폭우가 내릴 때 서홍천이 범람하면서 쌓인 진흙이라, 군사들이 진군하면서 일으킨 미세 먼지들이 구름처럼 자욱하게 일어났다.군사들은 옷이며 얼굴까지 먼지를 하얗게 뒤집어써서 마치 일부러 진흙을 칠해 굳어진 것처럼 보였다. 줄기차게 땀이 흘러내리는 데다 먼지가 뒤엉켜, 도무지 누가 누군지 얼굴조차 구분하기 어려울 정도였다. 걸어가는 군사들보다
네 곡의 선정작과 한 곡의 위촉작으로 30대부터 50대까지의 한국 현존 작곡가들의 다섯 작품이 연주되었다. 오늘의 평은 의도적으로 손에 쥔 프로그램북의 곡 설명과 해설을 읽지 않고 백지상태에서 오직 귀로만 감상하고 적었다는 걸 미리 밝힌다. 작곡가들의 말과 글을 통해 먼저 접하고 기대했다가 말(文)과 소리(音)가 일치되지 않은 허무맹랑하고 황당한 경우를 너무나 많이 겪어 실망한 적이 많았기 때문이다. 섣불리 선입견에 빠지고 싶지도 않았고 제목에 속지 않고 갇히지도 않기 위해서다. 나이, 학력, 성별 등을 전혀 모른 상태에서 문자 그
애틋한 새소리에 눈을 떴다. 동이 트고 있었다. 눈 뜨면 바로 일어나 걷던 수개월 동안의 버릇이 나를 산책으로 이끌었다. 아직 어두운 골목을 빠져나와 광장에 이르렀을 때 태권도 도복을 입고 맨발로 달리는 소대 규모의 군인들을 보았다. 트레킹 전에는 못 본 풍경이었다. 사원으로 오르는 계단 주변에 자리 잡고 줄지어 앉아 구걸하는 걸인들도 낯설게 느껴졌다. 예전에는 오직 운무만 보면서 운무 속을 산책했기 때문에 미처 못 봤을 것이다. 사원이 있는 야산을 우회하는 도로를 걷다가 긴 의자와 철봉이 있는 곳에서 발걸음을 멈추었다. 동쪽, 그
밤중에 온 사내들과 소년들은 날이 새기 무섭게 행장을 꾸려 비탈길을 내려갔다. 두 시간 후, 우리가 마일리 가웅의 바스넷 씨 집을 떠날 때 바스넷 씨의 외동딸은 광에서 맷돌로 옥수수를 갈고 있었다. 선물로 줄 게 없어서 볼펜, 연필, 색연필 등이 든 내 필통을 줬더니 예쁘게 웃었다. 길은 경사가 급한 산비탈 경작지 사이로 이어졌다. 숨이 차서 자주 멈춰서야 했는데, 멈춰 서서 돌아볼 때마다 앞산 너머 설산이 쑥쑥 커지고 있었다. 산비탈 따망 마을의 주막집에서 아침 겸 점심을 먹고, 일어서 걸으니 길은 아름드리 전나무 숲속으로 이어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