산모퉁이 돌아서니오랫동안 참았던 눈물 쏟아지네텅 빈 하늘은 자꾸만 넓어지고구름 사이로 폭정의 아귀들이 질주하고쉴 곳 찾아 산길을 걷는 발걸음 뗄수록 힘이 빠지네감당하기 힘든 일들은 쌓여만 가는데내가 과연 해낼 수 있을까 이길 수 있을까초조한 마음 눈발처럼 흩날리네확증이 강해지는 편견과 편향이 진실을 묻고 정의를 파괴하네쫄면 곧 지는 것이라는데 찌든 가슴은 점점 오그라들고어려움을 이기는 방법은 어려움에 맞서는 거라지만적당히 타협하는 게 좋지 않을까 유혹의 언어들 마구 춤추고무소유를 강조하는 성자의 말씀 희롱하듯
4. 거래의 법칙 다음 날 늦은 아침에 두충은 장터 마당으로 나가 전날 초피를 팔아 챙긴 은화를 모두 털어 고급 비단을 샀다. 뒤따라온 사기는 두루마리로 된 원단을 말 위에 실었다.“이걸 어디로 가져가시려는지…?”사기가 은근히 물었다.“넌 알 것 없다. 말이나 끌고 따라오너라.”두충은 앞장서서 성큼성큼 걸었다. 해는 벌써 중천에서 놀고 있었다.왕궁에서 그리 멀리 떨어지지 않은 곳에는 기와집들이 즐비했다. 그 중 솟을대문이 높다랗게 올려다 보이는 집 앞에 당도한 두충은 기침을 크게 한 번 한 뒤 점잖게 소리쳤다.“이리 오너라!”문을
뜨거웠던 여름 서늘히 식어가고병걸려 죽거나 굶어 죽거나 잔혹한 시간을 강요하는 코로나19이제는 함께 살아가야 하는 바이러스반려견 '구름'이와 함께 걷는 산길산모퉁이 돌 때마다 한움큼의 추억이 떨어지고또 한 해의 가을이 깊어가네적폐청산 평화 번영 통일 촛불의 꿈은 아득해지고생존을 요구하는 피켓들이 아우성치는구나콩 한쪽이라도 서로 배려하며 나눠먹으면 좋으련만누구는 죽이고 누구는 살리는 선택적 권력이 난무하고물어뜯고 할퀴고 잔인하게 죽이는 장면이 인기를 모으며낙엽처럼 돈이 마구 뒹구는 세상울긋불긋 단풍같은 자본주의가 춤추는데생을
산길 걷노라면 어수선한 일상이 격리된다두근거리는 발자국마다 사연 깊은 추억이 찍히고당신을 지켜주지 못했던 과거가 따라 운다지나간 일은 지나간 대로 그냥 두고자 하지만헤어지던 순간이 못내 아쉬워 하염없이 운다혼란스런 시간들이 발자국 속에 묻히고어제의 후회스런 일들 바로잡을 수 없어서노심초사 발걸음 산길이 어지럽다눈치 살피는 정치가 일상이 되어버려청산하지 못한 적폐들의 난동 거세지고혁신하는 발걸음 무뎌질수록내려놓지 못하는 당신을 향한 그리움그리운 당신을 추억할 때산모퉁이 돌아오는 바람 한줄기낙엽 구르는 소리에 고
코로나19 위기 일상이 멈춰버린 시간한파경보 뚫고 산길 걷는다언 살 터져 손등 쓰린 가난이 몰려오고눈물 마르고 시린 가슴 찬바람 속에 팽개쳐질 때배신과 배반의 전선이 확대된다어느 편에 서야할까갈팡질팡 갈피 잡지 못하는 마음들이 흔들리고아무리 추워도 공무원들의 임금은 춥지 않다언택트 부르짖으며 살려달라는 아우성 높아가는데부정적 편견에 갇혀 외면하는 핑계와 이유 견고하다곳곳에서 부도와 폐업의 쓰나미가 밀려오고실업수당으로 연명하는 삶이 위태롭다산모퉁이로 휘몰아치는 칼바람에 발걸음 휘청인다앙상한 나무가지들도 살려달라고
일본 청년들은 저마다의 상념에 젖어서 뚝뚝 떨어져 걷고 있었다. 나는 맨 뒤에 한참 떨어져서 걸었다. 내 앞에 가는 한 일본 청년은 산모퉁이 길로 접어들 때마다 돌아서서 손을 흔들었다. 다르질링으로 가는 막차가 떠날 시간이 가까워졌으므로 어서 오라고 보내는 신호였다. 염려 말라는 뜻으로 나도 손을 흔들어 주다보니 나는 길 떠나는 식구를 배웅하러 나온 그 동네 사람처럼 느껴졌다. 나는 멀리 떠나온 게 아니라 돌아와 있는 것 같았다. 길가의 마을들은 그토록 친숙했다. 마을마다 까말라가 입은 것과 같은 종류의 손뜨개 스웨터를 입은 아이들
이튿날 아침에 보니 룸부네 집 부엌에 어린 소녀가 있었다. 먼 산동네에 사는 친척 집에서 데려다 기르는 소녀라고 했다. 장작을 나르고, 물을 길어 오고, 그릇을 씻는 등 허드렛일을 하면서 학교에 다닌다는 여덟 살 소녀의 이름은 까말라. 까말라는 연꽃이라는 뜻이라고 했다. 까말라가 입은 스웨터는 우리가 어렸을 때 입었던 것과 흡사했다. 주변 모두가 가난했던 그 시절, 어머니들은 헌 스웨터의 실올을 풀어서 둥글게 감아놨다가 다시 스웨터를 떠서 아이들에게 입혔다. 까말라가 입은 스웨터는 바로 그것과 흡사했다. 얼핏 촌스럽게 보이지만 두
아침 6시. 바람은 여전히 사납게 불었다. 체왕 롯지 앞의 룽따는 곧 찢어질듯이 펄럭였다. 바람 때문에 고원은 더욱 황량하게 느껴졌다. 언덕 위에서 히말라야가 펼쳐져 있을법한 북쪽을 바라봤지만 히말라야 쪽에는 두꺼운 구름이 장막처럼 드리워져 있었다. 구름 위로 해가 솟고 금빛 햇살이 마을 골목을 비출 때 쯤 멀리서 뎅그렁 뎅그렁 쇠방울 소리가 들리더니 검은 소들이 허연 입김을 뿜으며 올라왔다. 이 소들은 고산의 소 야크와 저지대의 물소의 교배종인 ‘조’인데 등에 땔감을 잔뜩 짊어졌다. 체왕 호텔 부엌에서는 벌써 아침 준비하는 연기가
동포들도 트레킹을 떠난 그 날은 온종일 싱숭생숭했다. 그들 청춘남녀와 함께 떠나지 못한 것이 못내 아쉬웠다. 지금이라도 마니반장으로 가서 부지런히 걸으면 조만간 합류할 수 있을 것 같았다. 그러나 그들은 나를 반기지 않을지도 몰랐다. 나는 개밥에 도토리가 되기 십상이었다. 나는 사흘 쯤 뒤에 출발하기로 작정하고 초우라스타 광장에 가서 트레킹에 필요한 지도와 판초 우의를 샀다. 사흘 후, 침낭과 우모복과 판초 우의를 배낭에 쑤셔넣었다. 사전과 회화 책, 일기장, 영양제, 안 입을 옷 등 알리멘트에 맡길 짐은 따로 보자기에 쌌다. 양철
박 씨는 지나간 전쟁 중에 고향과 가족을 잃은 사람이었다. 지금은 비무장 지대인 철원 북쪽 어느 마을에서 자랐다. 전쟁 나던 해 봄에 인민학교 2학년이었는데 나물하러 가는 형들을 따라 산에 갔다. 그 날 산에서 버섯을 따 먹었던 기억은 있는데 그 뒤 몇 달 동안은 기억이 없다. 그가 먹은 버섯은 미치광이 버섯이라고 부르는 독버섯이었다. 이 걸 먹은 사람은 낄낄거리며 사방천지를 돌아다니는 광인이 된다고 했다. 그도 그렇게 실성하여 낄낄거리며 돌아다니다가 피난민 대열에 휩쓸려 이남으로 내려왔을 것이다. 정신을 차렸을 때 그는 남쪽 어느
대규모 기동훈련이 여러 날 계속되던 어느 날 비가 몹시 내렸다. 사격장 출입은 통제 되어 있었고 소들은 목장 옆에 조성한 목초 밭에 풀었기에 목동 두 사람이 각각 마을로 내려가는 길목과 사격장 넘어가는 길목을 지켰다. 나는 마을로 내려가는 길목에서 소들을 지켰다. 판초 우의를 걸치고 바위 처마 밑에 혼자 앉아 하염없이 내리는 비를 바라보노라니 무료한 가운데 처량한 생각도 들었다. 소들은 찬비 맞는 등에 더운 김을 피워 올리며 열심히 풀을 뜯었다. 빗소리와 도랑을 흐르며 모래를 굴리는 물소리 속에서 이따금 새들이 지저귀는 소리가 들렸
자프레의 셀파 호텔에서는 감자 졸임 말고도 토종 배추의 일종인 싹이라는 채소 졸임이 반찬으로 나왔다. 달(녹두죽의 일종)도 걸쭉하니 맛이 좋았다. 오랜만에 아주 만족스럽게 먹고 이도 닦은 후에 아직 덜 마른 양말 네 켤레를 배낭에 주렁주렁 매단 양말 장수 행색으로 다시 길을 떠났다. 지난 2월 하순에는 눈이 무르팍까지 쌓여 있던 똘루 곰파에서 오는 길을 거슬러 가는 것이다. 능선이 나오고, 석경담이 나왔다. 석경담과 나란히 난 길 끝에서 길은 갈라지는데, 곧장 가는 길은 불부레로 가는 길이었다. 좌측으로 난 길이 똘루 곰파로 이어지
고욤 윤 한 로가을 초저녁무녀리 지실 들고그깟,떫고도그리운 맛 하나 땜시목 메네고향 마을 떠올라시작 메모 산모퉁이 굽돌아 가는 오솔길 보면 고향 생각난다. 굴뚝만 보면, 찌그러진 양철 지붕만 보면, 바가지만 보면, 파란 연기만 보면, 고욤나무만 보면, ‘고욤’ 말만 들어도 왈칵, 고향 생각난다. 특별한 추억 하나 없는데도, 내 고향이 정확하게 어딘지 모르는데도, 가을이면 소년이 된다. 주책맞게스리. 작 성 자 : 서석훈 ranade@krj.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