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포츠에서 스타플레이어의 효과는 이루 헤아릴 수 없다.박찬호가 메이저리그를, 박세리가 미국여자프로골프 LPGA를, 김연아가 피겨를, 박태환이 수영을 그리고 펠레가 축구를, 마이클 조던이 미국남자프로농구 NBA를, 무하마드 알 리가 프로복싱 역사를 얼마나 바꿔 놓았는지......더 이상 언급할 필요가 없을 것이다.2024 한국 프로스포츠에서, 프로축구의 린가드, 프로야구의 류현진의 등장이 엄청난 파장을 몰고 오고 있다.긍정적인 파문이다. 지난 7일 한화 이글스는 연습경기인데도 불구하고 무려 7만 명이 넘는 야구팬들이 실시간으로 지켜봤
라이벌은 선수를 성장하게 한다.오늘날 김연아가 있기 까지 영원한 라이벌 일본의 아사다 마오가 어느 정도의 역할을 했었다.두 선수의 실력은 주니어 때 까지는 우열을 가리기 힘들었지만, 2008~2009년 무렵부터 아사다 마오가 대부분의 여자선수들이 겪어야 하는 신체적 변화를 슬기롭게 극복하지 못하고 체형이 여성스러워지는 바람에 김연아 쪽으로 기울어지기 시작했다.아시다 마오는 가볍고 빠른 점프를 하지 못해서 회전수 부족으로 손해를 봐야 했다. 기술적으로는 주 무기인 ‘트리플 악셀’이 오히려 발목을 잡지 않았나 하는 생각도 든다.2010
피겨스케이팅 여자 싱글 신지아(영동중, 15)가 2023~24시즌 국제빙상경기연맹(ISU) 피겨 주니어 그랑프리 2차 대회에서 출전 선수들 가운데 유일하게 200점대 점수를 받아 우승을 차지했다.신지아는 지난 2일(한국시간) 오스트리아 린츠에서 벌어진 대회 여자 싱글 프리스케이팅에서 기술점수(TES) 69.42점에 예술점수(PCS) 61.53점을 더해 130.95점을 받았다. 전날 쇼트프로그램에서 획득한 70.38점을 합쳐 총점 201.33점을 기록하며 우승을 차지했다. 대회 출전 선수 33명 가운데 200점대는 신지아가 유일했다.
2008년 베이징 올림픽에 출전하고 있던 선수들은 선수촌 식당 등에서 태권도 복을 입고 악수를 청하는 키가 큰(1m91cm)미남청년을 보고 깜짝 놀랐다.2004년 아테네올림픽 남자 태권도 +80kg급 결승전에서 올림픽 태권도 사상 처음으로 (그리스의 알렉산드르 니콜라이다스 에게) KO승을 거두고 금메달을 딴 한국의 문대성 씨가 IOC 선수위원 후보로 나서 유세를 하고 있었던 것이다. IOC 선수위원은 전 올림픽까지 출전한 선수에게 출마자격이 주어진다. 2008 베이징 올림픽에는 2004년 아테네올림픽에 출전한 선수까지 출마 할 수
이해인은 지난 24일 일본 사이타마 슈퍼 아레나에서 벌어진 2023 국제빙상경기연맹(ISU) 피겨스케이팅 세계선수권대회 여자 싱글 프리스케이팅에서 기술 점수(TES) 75.53점, 예술점수(PCS) 71.79점, 합계 147.32점을 받았다.쇼트프로그램에서 개인 최고점인 73.62점을 받았었기 때문에 총점 220.94점으로 사카모토 가오리(일본·224.61점)에 이어 은메달을 땄다.이해인은 세계선수권대회에서 2013년 김연아(33·은퇴)의 금메달 이후 끊겼던 명맥을 무려 10년 만에 이었다. 김연아는 세계선수권대회에서 금메달 2개
한국의 여자피겨의 전설, 김연아(33)는 현역시절 라이벌인 일본의 아사다 마오(33)를 극복하면서 성장했었다.김연아와 라이벌 아사다 마오의 맞대결은 지난 2010 밴쿠버 동계올림픽에서 절정을 이뤄 김연아가 아사다 마오(은메달)를 꺾고 금메달을 따면서 승부가 결정 났었다.두 선수는의 라이벌 전은 4년 후인 2014 소치 동계올림픽에서 재대결을 벌여 김연아가 판정의 불리함을 극복하고 은메달을 획득한 반면, 아사다 마오는 6위에 머무르면서 사실상 막이 내렸다.그러나 일본의 새로운 마오(시마다 마오 15세)는 업그레이드 된 마오다. 제2의
강남유아트클럽(원장 김재일/유플랫 대표, 회장 임대순/뉴욕경제문화포럼 대표)과 GD엔터테인먼트가 주최 및 주관하고 Gallery 미셸, Gallery 선정이 후원한 제10회 ‘화요일엔 Jazz Wa’가 서울시 강남구 선릉로 533 강남유아트홀에서 지난 9월 27일에 개최됐었다. ‘화요일엔 Jazz Wa’는 매주 화요일 문화예술 생태계의 활성화, 공연예술 집단의 일자리 창출과 국내외 정상급 공연자와 VIP 관람자를 이어주는 새로운 공연문화를 창출하기 위해 유플랫(대표 김재일)과 골드오페라(의장 임대순)가 협업해 펼치는 그린뉴딜문화운동
1995년 경북 상주에서 출생, 대구에서 성장한 고우림은 대구평화교회 목사인 아버지와 성악을 전공한 어머니의 2남 중 차남으로 9살 터울의 형은 미술전공자로 알려져 있다. 원래 피아노로 경북예고 진학을 목표로 하였으나 선생님의 권유로 성악으로 바꿔 일주일 만에 입시에 합격하였다. (4년 위인 김호중 나중에 김천예고로 전학을 가긴 하였으나 경북예고에 입학한 경북예고 출신이다.) 재수 끝에 서울대 성악과 15학번으로 입학, 현재 서울대 성악과 대학원에 재학 중이면서 크로스오버 그룹 포레스텔라의 멤버로 활동하고 있다. 2018년 올댓스케
그녀의 뜰에 핀 무궁화는 / 김주선 고등학교 졸업식도 못 치르고 가족과 함께 캐나다로 이민 간 친구가 있다. 곱슬머리에 주근깨가 많고 사리에 밝은 영민한 친구였다. 오 년 전이었을까. 집 근처 농장에서 무궁화(Rose of Sharon) 묘목을 샀다며 현관 출입구 왼쪽 화단에 심은 사진을 SNS에 올렸다. 잘 자랄지 걱정을 하더니 해마다 꽃나무의 성장기를 알려왔다. 작년 여름에는 백송이 넘게 피었다며 분홍색으로 활짝 핀 무궁화꽃 소식을 전했다. 한국에서 자라는 것처럼 나무가 크진 않지만, 근성이 있는 꽃나무라 낯가리지 않고 잘 자라
지구상에는 두 개의 올림픽이 있다.1896년에 시작되어 126년의 역사를 갖고 있는 하계올림픽, 1924년에 시작되어 이제 98년이 된 동계올림픽이다.한 때는 “동계올림픽은 백인들을 위한 스포츠다”라며 평가절하 한 적도 있다. 그러나 4년을 인내하며 올림픽을 향해 기량을 연마한 선수들에게 동계올림픽은 새로운 스타 탄생과 감동의 스토리가 준비돼 있는 무대다.역대 동계올림픽의 명장면을 모아봤다. ○ 미러클 온 아이스-1980년 미국 아이스하키팀미국 스포츠 사상 최고의 이변으로 꼽히는 경기가 1980년 레이크플래시드에서 벌어진 미국과 구
음악이면 다 같은 음악일 건데 20세기만 해도 서구 클래식 음악만이 진짜로 여기고 대접받았다. 듣고 미적 판단을 하여야 할 텐데 그럴 기준과 능력도 되지 않는 대부분의 사람들은 먹물들에 의해 재단된 조건에 맞춰 본인이 스스로 듣고 즐기지도 못하면서 그저 그걸 따라야 했었고 그러지 않으면 뭔가 교양 없고 무식한 사람 취급받아 샤이보수네 샤이진보네 하는 말처럼 샤이할 수밖에 없었다. 한국의 클래식의 역사를 되짚어보는 과정에서 필연적으로 ‘타국에서 발원한 문화’라는 특성이 수반한다는 사실은, 바꿔 말해 완전히 다른 문화권 아래 있었던
대한체육회는 지난 9월 9일(수) 제12차 스포츠영웅 선정위원회를 개최하고 추천위원, 체육단체, 출입기자, 일반 국민을 대상으로 스포츠영웅 선정을 위한 후보자를 추천받은 결과와 체육인단 및 추천기자단의 최종후보자 추천 접수 결과를 바탕으로 최종후보자 4명을 결정했다.이번 국민 지지도 조사는 대한체육회 홈페이지 및 네이버(NAVER) 메인 팝업창 또는 2020 대한민국 스포츠영웅 선정 투표창(http://hero.sports.or.kr/2020vote)을 통해 국민 누구나 참여할 수 있으며, 10월 18일(일) 오후 6시까지 진행된다
대한민국 1호 스포츠평론가, 미디어피아 기영노 전문기자가 자신의 유튜브 채널 '기영노의 스타박스'를 통해 스포츠계 명언에 대해 이야기한다.스포츠는 선수, 지도자, 철학자들이 명언을 많이 남겼다.예로, 미국 프로농구 NBA 필라데피아 앨런 아이버슨 선수는 183cm의 작은 슈팅가드이다. 그는 '농구는 신장이 아니라 심장으로 하는 것이다'라며 큰 심장이 있으면 작은 키를 극복할 수 있다는 명언을 남겼다.모든 구기 종목에 대표적인 명언도 있다. '공은 둥글다'우리나라 스포츠 선수들도 자신들만의 명언을 남겼다. 이상화 선수 '슬럼프는 자기
갑신정변을 주도했었던 김옥균과 가까웠던 신기선이라는 양반이 서양인들이 테니스 하는 것을 보고“아니 아랫것들을 시키지 왜 직접 뛰어 다니시오?”라고 말한 것은 1890년대 초 였다.1895년 체조가 학교교과 과목에 처음 포함된 이후 축구, 야구, 정구, 마라톤 등이 보급되기 시작하기 시작한 이후 100여년이 지났다.그동안 한국 스포츠는 많은 국위선양을 많이 했다.오죽하면 정치가 스포츠의 10분의 1만 해 줘도 벌서 선진국이 되었을 것이라는 말이 나왔을까? 실제로 과거의 차범근에서부터 현재의 박지성, 박찬호, 추신수, 김연경, 손흥민,
전 국가대표 피겨스케이팅 선수 김연아. 그녀는 2014 러시아 소치 동계올림픽을 마지막으로 현역에서 은퇴했다.대한민국의 피겨 여왕으로 불리던 그녀, 은퇴 후 현재 근황은 어떨까? 지난 4월, 그녀는 코로나19 환자 진료 및 치료로 힘쓰는 의료인에게 고마움을 전하는 덕분에 챌린지에 참여했다.인스타그램을 통해 "고로나19에 맞서 싸우며 위기 극복에 힘써주시는 의료진 여러분 감사합니다"고 전했다. 최근 그녀는 자신의 인스타그램에 근황 사진을 게재했다. 사진 속 김연아는 흰 티에 레깅스를 입고 포즈를 취하고 있다. 마스크 착용도 잊지 않으
[미디어피아] 황인성 기자= 한국 피겨의 역사 김연아와 팬이 코로나19 치료 활동을 위한 기부를 몸소 실천했다. 김연아와 그의 팬 연합 단체는 26일 코로나19 치료에 써달라며 기금 1억 850만 원을 유니세프한국위원회를 통해 기부했다.김연아의 소속사인 올댓스포츠에 따르면, 이번 기부금은 팬들의 모금액과 김연아가 낸 1억 원이 더해져 마련됐으며, 기부금은 유니세프한국위원회를 통해 경북 권역의 책임 의료기관인 경북대 병원에 전달될 예정이다.한국 피겨의 산증인이자 세계적인 피겨퀸 김연아는 지난 2010년 아이티 대지진, 2012년 시리
MBC [미디어피아] 최하나 기자= 최근 진행된 녹화에서 도티는 “1인 방송을 시작하게 된 계기가 김연아 선수 덕분”이라고 고백했다. MC 김용만이 그 이유를 묻자 도티는 “김연아의 주니어 시절부터 팬이었다”면서 “영상을 많이 모아서 팬 무비를 만들고 싶었다. 그렇게 독학으로 영상 편집을 배우다가 방송을 시작하게 됐다”고 밝혔다.드라마 ‘내 이름은 김삼순’을 통해 데뷔한 안미나는 연세대 철학과 출신의 뇌섹녀로 그간 철학 서적과 추리소설을 출간하며 배우와 작가로 활동을 병행해왔다.
MBC [미디어피아] 이혜선 기자= 20일 오후 방송된 MBC 에브리원 ‘대한외국인’에는 크리에이터 도티와 안미나, 서경석이 게스트로 출연했다.그의 유튜브 채널은 구독자가 250만명이 넘는다.도티는 기억에 남는 팬에 대해서도 언급했는데. 그는 “제가 만 6년째 활동하다 보니 아이들이 중·고등학생이 된 케이스가 많다. 그중 여중생 팬클럽 무리가 있는데 ‘공부보다 중요한 건 도티 덕질‘이라는 의미로 팬클럽 ‘공중도덕’을 만들어 활동하고 있다”며 10대들 사이에서는 유재석보다 유명하다는 본인의 위엄(?)을 입증해 보이기도 했다.안미나는 연세대학교 철학과 출신으로 지난 2005년 MBC 드라마 '내 이름은 김삼순'으로 데뷔 한 연기자다.도티는 김연아의 영상을 만들기 위해 독학으로 영상 편집을 배웠고, 이는 1인 방송 시작으로 이어졌다는 것.
[미디어피아=이원정 기자]백두산의 보컬 유현상이 'TV는 사랑을 싣고'에서 아내 최윤희와 이어준 은인 이기종 기자를 찾아 네티즌들의 관시ㅁ이 쏟아지고 있다.10일 재방송된 KBS1 'TV는 사랑을 싣고'에는 유현상이 출연, 최윤희와 결혼 하는 과정을 이야기하면서 평소 숨겼던 솔직한 속내를 털어놨다. 유현상이 찾고 싶은 사람으로 최윤희와의 결혼식을 모두 담당해서 혼자 진행했던 은인 이기종 기자를 지목했다. "너무 고마운 사람이지만 그동안 먹고 사는 게 바빠서 밥 한번 대접한 적이 없다"고 말하면서 "이제라도 따뜻한 밥 한그릇 사드리고 싶다"는 말을 이었다.신문사들이 자리한 종로의 광화문으로 유현상은 "여기에서 최윤희와의 관계를 이기종기사에게 털어놓고 결혼식 진행을 의뢰 드렸던 곳"이라고 전했다.용만은 "어떤 마음으로 이기종 기자에게 갔냐"고 물었고 현상은 "안들어 주면 어쩌지, 걱정도 한편은 있었지만 그것 보다 확신하는 마음이 더 컸다. 이 형은 나를 도와 줄 사람이다 라는 생각을 했었다"라고 하면서 당시의 애틋했던 인연을 생각했다.현상은 혼자 버스를 타고 광화문 근처의 광장에 내렸다.현상은 기종을 알아보고 "형님" 하고 불렀다. 이기종 기자는 "왜 연락도 없다가 갑자기 이게 어떻게 된 일이냐"고 물었고 현상은 "죄송하다"고 허리 숙여 사과했다."어떻게 지냈냐"는 기종의 말에 "열심히 잘 살고 있다"면서 웃어보였다. "윤희는 어디 있는지" 묻는 기종에게 현상은 "직장에 다니고 있어서 못나왔다"고 말했다. 기종은 "평생 연락을 안하고 살았던 아이인데 나를 찾는다고 해서 너무 기뻤다"고 당시의 소감을 말했다. "내가 제일 좋아했던 동생이 나를 찾는다니 내가 무리를 해서라도 여기를 와야겟다는 생각이 들었다"고 기종은 멋쩍게 웃었다. 이어 현상이 이기종 기자에게 밥을 대접했다.1954년생으로 올해 나이 예순 여섯살인 유현상은 1971년에 록 밴드 Last Chance의 리드 싱어로 활동하다 1976년 재즈 록 밴드 사계절의 기타리스트로 활동했다.1976년부터 1979년까지 대한민국 육군 사병 복무 이후, 1981년에 솔로 가수로 전향하였으며, 1982년 록 밴드 사랑과 평화의 보컬리스트로 잠시 활동한 후 1986년 헤비 메탈 밴드 백두산을 결성하고 보컬리스트로 활동했다.1988년 백두산 프로덕션을 설립한 후 가수 이지연의 매니저로 활동하면서 프로듀서로 활동하였고, 1991년에 트로트 가수로 전향하여 앨범 《여자야》를 발표한 후 솔로 활동을 하다가 2008년에 백두산을 재결성하여 8월 17일 《동두천 록 페스티벌》에서 컴백 공연을 펼쳤다.유현상 하면 가장 큰 이슈가 전 수영 국가대표 최윤희와 결혼 사건이었다.1967년생으로 올해 나이 쉰 세살인 최윤희는 여덟 살 때부터 수영을 시작해 1982년 4월 상비군 평가전 여자 배영 100m에서 1분 06초 47로 2년 전 언니 최윤정이 세운 한국 기록을 1.30초 단축하며 생애 첫 대한민국 신기록을 세웠다.이어 1982년 아시안 게임 여자 배영 200m에서 2분 21초 96으로 아시아 신기록을 세우며 금메달을 땄다. 이어 배영 100m와 개인혼영 200m에서도 각각 아시아 최고 기록을 세우며 우승해 아시안 게임 수영 사상 최초로 3관왕에 오르며 '아시아의 인어'라는 별칭을 얻었다.이후 1986년 서울 아시안 게임 때는 배영 100m와 200m에서 금메달을 땄고, 그 공로를 인정받아 같은 해 체육훈장 청룡장을 받았다.빼어난 미모와 몸매로 당시 연예인보다 더 큰 인기를 얻으며 뭇 남성들은 물론 전 국민적인 인기를 구사했다. 최근 김연아와 김연재 이상의 인기를 얻었다.그런 최윤희가 스물 다섯살이던 1991년 열세살 연상의 유현상과 결혼 발표로 세상을 떠들썩하게 만들었다.당시 유현상은 수많은 사람들에게 '도둑놈'소리를 들으며 비난을 받았다. 하지만 주위의 우려에도 두사람은 단 한번도 잡음없이 단란한 가정을 끌려 나가며 주위의 부러움을 받고 있다.유현상도 방송에서 “돌이켜 생각해보면 만약 SNS가 있었다면 나는 아마 결혼을 못하지 않았을까. 글에 맞아죽었을 것 같다”며 웃었다.유현상은 “아내가 은퇴를 하고 방송 일을 조금 할 때 나도 방송을 하면서 서로 다른 분야인데 오다가다 만났다. 만날 때마다 다소곳하고 곱다는 생각을 했다. 나와 아내의 만남은 운명이었다”고 말했다.이어 “방송국에서 자주 만났지만 어느 식사자리에서 만났다. 나는 지인과 식사하러 갔고 아내는 운동하던 선배랑 같이 왔다. 우연한 만남이었다. 그날 따라 예뻐보였다. 그 후에 아내와 그 선배가 연습실에 놀러왔다”고 만남의 시작을 밝혔다.유현상은 “장모님께는 항상 ‘죄송합니다’ 하는 마음으로 살고 있다. 그때 아내는 국민들이 다 사랑해주시는 스포츠스타였고 나는 마니아들만 좋아하는 밴드에서 노래하던 사람이었다. 아내와 데이트 하고 집 앞에 데려다주고 차에서 내렸는데 어머님을 거기서 뵈었다. 어머님께서 나는 쳐다보시지도 않고 ‘윤희야, 상대가 돼야지’하고 아내 손을 잡고 데려가더라. 마음은 아팠지만 그래도 어머님을 이해할 수 있었다. 내 딸이 나같은 녀석한테 시집간다면 나는 다리를...”이라고 말해 웃음을 자아냈다.
[미디어피아=이원정 기자]'TV는 사랑을 싣고'에서 가수 류현상을 조명해 네티즌들의 관심이 쏟아지며 11월 8일 저녁 실시간 검색어에 등장했다.11월 8일 방송되는 KBS 1TV 'TV는 사랑을 싣고'에서는 가수 ㅇㅍ현상에 대해 집중 조명한다.1954년생으로 올해 나이 예순 여섯살인 유현상은 1971년에 록 밴드 Last Chance의 리드 싱어로 활동하다 1976년 재즈 록 밴드 사계절의 기타리스트로 활동했다.1976년부터 1979년까지 대한민국 육군 사병 복무 이후, 1981년에 솔로 가수로 전향하였으며, 1982년 록 밴드 사랑과 평화의 보컬리스트로 잠시 활동한 후 1986년 헤비 메탈 밴드 백두산을 결성하고 보컬리스트로 활동했다.1988년 백두산 프로덕션을 설립한 후 가수 이지연의 매니저로 활동하면서 프로듀서로 활동하였고, 1991년에 트로트 가수로 전향하여 앨범 《여자야》를 발표한 후 솔로 활동을 하다가 2008년에 백두산을 재결성하여 8월 17일 《동두천 록 페스티벌》에서 컴백 공연을 펼쳤다.유현상 하면 가장 큰 이슈가 전 수영 국가대표 최윤희와 결혼 사건이었다.1967년생으로 올해 나이 쉰 세살인 최윤희는 여덟 살 때부터 수영을 시작해 1982년 4월 상비군 평가전 여자 배영 100m에서 1분 06초 47로 2년 전 언니 최윤정이 세운 한국 기록을 1.30초 단축하며 생애 첫 대한민국 신기록을 세웠다.이어 1982년 아시안 게임 여자 배영 200m에서 2분 21초 96으로 아시아 신기록을 세우며 금메달을 땄다. 이어 배영 100m와 개인혼영 200m에서도 각각 아시아 최고 기록을 세우며 우승해 아시안 게임 수영 사상 최초로 3관왕에 오르며 '아시아의 인어'라는 별칭을 얻었다.이후 1986년 서울 아시안 게임 때는 배영 100m와 200m에서 금메달을 땄고, 그 공로를 인정받아 같은 해 체육훈장 청룡장을 받았다.빼어난 미모와 몸매로 당시 연예인보다 더 큰 인기를 얻으며 뭇 남성들은 물론 전 국민적인 인기를 구사했다. 최근 김연아와 김연재 이상의 인기를 얻었다.그런 최윤희가 스물 다섯살이던 1991년 열세살 연상의 유현상과 결혼 발표로 세상을 떠들썩하게 만들었다.당시 유현상은 수많은 사람들에게 '도둑놈'소리를 들으며 비난을 받았다. 하지만 주위의 우려에도 두사람은 단 한번도 잡음없이 단란한 가정을 끌려 나가며 주위의 부러움을 받고 있다.유현상도 방송에서 “돌이켜 생각해보면 만약 SNS가 있었다면 나는 아마 결혼을 못하지 않았을까. 글에 맞아죽었을 것 같다”며 웃었다.유현상은 “아내가 은퇴를 하고 방송 일을 조금 할 때 나도 방송을 하면서 서로 다른 분야인데 오다가다 만났다. 만날 때마다 다소곳하고 곱다는 생각을 했다. 나와 아내의 만남은 운명이었다”고 말했다.이어 “방송국에서 자주 만났지만 어느 식사자리에서 만났다. 나는 지인과 식사하러 갔고 아내는 운동하던 선배랑 같이 왔다. 우연한 만남이었다. 그날 따라 예뻐보였다. 그 후에 아내와 그 선배가 연습실에 놀러왔다”고 만남의 시작을 밝혔다.유현상은 “장모님께는 항상 ‘죄송합니다’ 하는 마음으로 살고 있다. 그때 아내는 국민들이 다 사랑해주시는 스포츠스타였고 나는 마니아들만 좋아하는 밴드에서 노래하던 사람이었다. 아내와 데이트 하고 집 앞에 데려다주고 차에서 내렸는데 어머님을 거기서 뵈었다. 어머님께서 나는 쳐다보시지도 않고 ‘윤희야, 상대가 돼야지’하고 아내 손을 잡고 데려가더라. 마음은 아팠지만 그래도 어머님을 이해할 수 있었다. 내 딸이 나같은 녀석한테 시집간다면 나는 다리를...”이라고 말해 주위의 웃음을 자아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