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찌 이토록 참담한 일이 벌어질 수 있는가. 세계 10위의 경제 대국, 세계 6위의 군대 강국에서 이런 불상사가 일어나다니 상상이나 할 수 있는 일인가.2014년4월16일 세월호 참사가 일어나 국가 안전시스템 붕괴의 민낯을 보여주더니 2022년10월29일 '이태원 참사' 라는 상상할 수 없는 역사의 부끄러움을 마주하게 되었다. 세월호 참사의 진상은 아직도 밝혀지지 않은 채 우리는 이태원 참사를 맞닥뜨렸다. 우선은 사고수습이 급선무지만 참사의 진상을 명백하게 밝혀 다시는 이런 비극이 일어나지 않도록 해야 한다. 이번 기회에 국가 발전
지난 토요일(9월 24일) 임진각 평화누리공원에서는 경기도가 주최하고 경기여성네트워크(경기도 여성단체협의회·경기여성연대·경기 여성단체연합·경기 자주 여성연대 등 4개 단체)가 주관한 ‘2022경기여성 DMZ평화걷기’가 “한반도에 종전과 평화를”이란 주제로 진행됐다. 이날 행사는 ▲아침 9시, 임진각 「6.25전쟁납북자기념관」 앞 집결 ▲09:00~09:30 걷기신청자 확인 및 접수 ▲09:30~09:55 기념식 ▲09:55~1
[DMZ 평화기행] ‘몽키하우스’를 아시나요? 사단법인 평화철도와 나아지는 살림살이(이하 평화철도)는 지난 4월 1일부터 7월 29일까지 매주 목요일 저녁 8시 ‘제2기 역사평화기행 강사학교’를 열어 주옥같은 강좌들을 진행했다. 평화철도의 강사학교는 1~4차 강사교실로 분화되어 진행되었는데, 4월에 진행된 『1차 이북역사평화기행 강사교실』(강사 진천규 통일TV 대표), 5월 진행 『2차 백두산-중국 동북 역사평화기행 강사교실』(강사 임영태 역사작가), 6월 진행『3차 러시아 연해주-바이칼 역사평화기행 강사교실』(강사 이병한 역사학자
1월28일 400여개 한국·미국·국제 시민사회단체들은 한미연합군사훈련 중단을 촉구하는 공동성명 를 발표하고 미국과 한국 정부에 전달했다.이들은 공동성명을 통해 한미연합군사훈련은 “매우 도발적이고 비용이 많이 드는 전쟁 연습”이며 “2000년대 이후에는 유사시 북한에 대한 선제 공격과 북한 지도부 제거도 포함하는 작전계획을 연습하는 것으로 알려져 왔다”고 지적했다. 이어 이러한 규모와 성격으로 인해 “한미연합군사훈련은 한반도에 군사적, 정치적 긴장을 촉발해왔다”고
해방 이후 주한미군 부대 주변에서 서비스업 중심의 생활권을 형성한 일종의 군사취락을 '기지촌'이라고 한다. 기지촌 성매매 종사 여성 110여명 이 2014년 6월 국가를 상대로 손해배상 청구 소송을 내었다. 기지촌 여성들은 "정부가 기지촌에서 성매매를 조장하고 방조한 책임이 있다"며 손해배상을 청구했고, 2018년 2월 서울고등법원에서 승소했다. 그러나 여전히 정부의 공식 사과와 진상 규명은 요원하기만 하다. 이런 가운데 경기도의회가 4월 29일 경기도 차원의 '기지촌 여성' 지원 근거를 담은 조례를 전국 지방의회 가운데 처음으로
새 동네는 전에 살던 동네와 무척 달랐다. 전에 살던 동네는 삼팔선 이남이었기에 농촌 토박이 삶이 남아 있었지만 삼팔선 이북의 수복 지구인 새 동네는 대규모의 미군이 주둔하면서 생긴 기지촌 문화가 번창하고 있었다. 새 학교 아이들은 스티로폼으로 유리창을 닦았다. 창틀에 걸터앉아 양 손에 그 하얀 스티로폼을 들고 유리창을 문지르면 삐까삐까 소리가 나면서 유리창의 때가 말끔히 벗겨졌다. 지금은 우리나라 전역에서 스티로폼 쓰레기가 넘쳐나지만 나는 새학교에서 그런 물건을 처음 보았다. 우리 반 아이들은 그 스티로폼이 미군부대 오물장에 지천
삼촌네 약방 밖은 버스 정류장이었다. 정류장 앞에 길게 이어진 국도는 자갈투성이였고 바람만 조금 불어도 흙먼지가 일었다. 삼촌은 군용 철모에 긴 자루를 단 연장으로 도랑물을 퍼서 흙먼지를 재우려고 애썼다. 종일 도랑물을 뿌려대도 콩고물 같은 흙먼지를 아주 잠재울 수는 없었다. 물기가 마르면 지프차 한 대만 지나가도 뭉게구름 같은 흙먼지가 기세 좋게 피어올랐다. 시야를 가린 누런 흙먼지가 가라앉으면서 맨 먼저 약방 유리창으로 보이는 것은, 길 건너 극장 건물의 지붕과 처마 밑의 확성기였다. 그리고 극장 간판의 그림들이 보였다. 카우보
가평 할머니에 대한 기억은 이제 점점 희미해진다. 그러나 내 마음 속 가장 깊은 곳을 들여다보면 여전히 거기 남아 있다. 켜켜이 묵은 시간이 드리운 두꺼운 장막에도 좀 먹은 구멍은 있어서 거기 눈을 대면 어두운 방 아랫목에 놓인 화롯불처럼 희미한 할머니의 모습이 보인다. 그것을 첫 장면으로 하여 어린 시절 몇 토막이 무성 영화 필름처럼 돌아간다. 내 기억의 가평 할머니는 늘 화로불 앞에 앉아 있다. 풀색 군용 담요로 만든 바지저고리 차림이고, 쪽진 머리에 백동비녀를 꼽았다. 그리고 봉초 담배를 말아 피운다. 나는 할머니의 화로 곁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