친애하는 쿠마 씨마음 까지 읽어주는 번역기가 있다면 참 좋겠습니다. 당신이 열어보지 않는 메일이지만 이 가을에 편지를 씁니다. 사진첩을 정리하다가 오래전 당신이 찍어 준 사진들을 발견하고 감회에 젖습니다. 도메인 공원에서 노랗게 물든 은행나무 아래 나를 세우고 자꾸 웃으라고 재촉하던 모습이 눈에 선합니다. 사진 속의 나는 세상 다 산 여자처럼 보이지만, 뒤쪽에 서 있는 천년의 은행나무는 너무나 곱고 아름답습니다.붉은악마가 열광했던 해였습니다. 치열했던 3년간의 싸움은 5분 만에 협의로 끝이 났습니다. 살림을 나누고 말고 할 것도 없
저 빛을 보라- 마혜경 젊어서는 처자식을 업고 다녔다그는 별을 읽으며 집에 돌아가곤 했는데그때마다 돌쟁이 아들의 잠꼬대를베고 잠들었다세상이 이율배반적이라고 떠들어도그의 등에 실린 짐은 좀처럼 줄지 않았다 아들은 지 살기에 바쁘고아내는 류머티즘으로 거동이 불편하다 그의 어깨는 언제쯤 가벼워질까세상의 무게 모두 내려와 언제쯤 동그랗게 빛날까
그대 꼬박꼬박 상자에 이름 쓰는가요그게 만약 내 이름이라면변덕이라 칭했던 서로의 추억이그대 나를 잊지 않고 살아줄 수 있나요 이미 약지에 낀 반지가 불에 타버리니태양에 아른거릴 수 없는가요무지개빛이 벽을 타고 흔적 남기는 것을미련하다 말하며 좋아했었는데 벽을 메운 상자 모서리를 조금만 뜯어내니까만 글씨가 쏟아져 내려낱말을 조합해서 내 맘대로 해석한다면그대 곁에 나는 거짓이 되는가요 불행하게도 우리는 서로 너머를 바라보고변화하고도 유리는 새로 나무를 바라보길 내가 그렇게 미쳐가길 바랬는가요 그대 트럭을 모는 기사의 유리를 두들겨상자를
우리는 탄생이라는 역에서 출발했다.그 역에는 커다란 아픔 후에엄청난 축복도 함께했다. 도대체 어디까지 가야 하는지내가 왜 가야만 하는지 모른 채가라니까 갔고 남이 가니까 따라갔다. 간이역을 지나며 봄꽃의 향을 맡았고조금 큰 역을 지나며 가끼우동을 먹었다.맛은 있었지만 이름에서 왜놈 냄새가 났다. 어느 날 역사(驛舍)에서 역사(歷史)를 바꾸겠다는왜놈 냄새나는 역장을 만났다아직 난 역사(歷史)를 모르는데···어딘지는 모르지만 아직 가야 할 길이 멀고내 뒤에는 스물여덟 살 아들도 기차를 탔고그 아이도 아직 역사(驛舍)와 역사(歷史)를 모
초중고 개학이 하루 이틀 밀리던 때 우리 회사는 격주 재택근무를 시작했다. 다른 팀은 수월했지만 디자인팀이 문제였다. 그리고 나는 그 문제의 디자인팀이었다. 하하. 다른 팀들은 문서작업을 주로 하기에 집에 있는 PC나 노트북로도 충분히 업무가 가능했다. 안타깝게도 디자인팀은 아니었다. 디자인 작업용 PC가 있는 팀원은 상관 없었지만, 나처럼 PC자체가 없는 사람은 방도가 없었다. 맥북으로도 디자인을 할 수 있다고 우겨 보았지만 생산성이 떨어져서 안된다는 답변을 받았다. 그러면 어떻게 해요?(속 뜻은 나더러 저걸 들고가라는 말이냐.
너의 여덟 살, 이제 안녕- 마혜경 9월 14일 오전 11시 16분,인천시 미추홀구의 한 임대주택 2층에서 불이 났다형과 동생은 심한 화상을 입고 중환자실에 입원 중이다 그날 엄마가 있었다면비대면 수업이 아니었다면라면을 끓이지 않았다면아니 배가 고프지 않았더라면 열 살 형은 호전 됐지만 여덟 살 동생은 38일만에 눈을 감았다 신이 다녀간 8년을 뒤늦게 알았다
작가 리정은 2018년부터 시작한 서양미술사 이야기책 '100명의 성공한 화가들의 비밀' 1권을 오는 11월3일 솔아북스에서 출간한다고 밝혔다. 2권은 12월에 출간할 예정이다. '100명의 성공한 화가들의 비밀'은 총2권으로 집약된 100명의 예술가들의 일대기이다.작가는 지독한 고통과 죽음 앞에서도 힘들게 탄생시킨 그들의 작품을 보면서 많을 것을 배웠고, 같은 예술가로서 눈시울을 적신 적이 너무나 많다고 한다. "그들의 삶은 어려운 시대를 살아가는 우리가 배울점이 많다. 이번에 출간하는 '100명의 성공한 화가들의 비밀'은 딱딱한
단풍놀이- 마혜경 얼마나 좋은지렌즈를 닦고 조리개를 맞춘다불붙은 나무를 마주 본다활활 타들어 가는 순간이 짜릿하니까불씨의 흔들림을 바라본다밤엔 또 얼마나 좋을까재가 되지 않은 사람들이 숲으로 간다숲으로 번진 불이 어둠에 붙는다어둠이 불을 감추고 있다방화범을 숨기고 있다신고할 사람이 없어경찰도 소방관도 오지 않는다불구경이라면 얼마나 좋은지얼마나 달아오르는지
망아지를 껴안아주고울분을 토하며 성명서를 낭독한 어제를 뒤로 하고오늘은 반려견 구름이와 눈감아도 떠오르는 산길 걷는다굽이 돌 때마다 한움큼의 추억이 떨어지고뜨거웠던 시간 서늘히 식으며코로나19 긴 터널 가을이 깊어간다생존의 피켓들은 과거에도 모였고 지금도 모이는구나콩 한쪽이라도 서로 배려하며 나눠 먹으면 좋으련만낙엽처럼 돈이 소진되는 거리과로를 견디지 못한 택배 노동자가 죽어가고울긋불긋 단풍같은 자본주의가 춤추는데거룩하게 마감하는 생명들이 우수수 떨어진다누구는 죽이고 누구는 살리는 현실의 아귀다툼누구
현대인에게 마스크란 무엇인가? 코로나 시대 이전에도 마스크는 오염된 공기를 막아주고, 2020년에는 코로나 예방 필수 아이템으로서 든든한 현대인의 방어구가 되어줬다. 실로 고마운 존재이지만, 현대인은 마스크를 혐오한다. 전 세계 사회에서 반 마스크 움직임이 나타나고 있다. 아직 코로나가 완전히 종식되지 않았음에도 많은 사람들이 마스크 없이 번화가를 누빈다. 해외에서는 마스크를 거부하는 행위예술이 행해지고 있다. 전염으로부터 보호해주는 유일한 갑옷을 미워하는 실로 아이러니한 상황이다.“나 자가 격리할거야” 이 말을 하기 전의 나에게도
뭐가 달라도 달라해발고도 1500미터그곳에도사람이 살더이다. 하늘 아래 첫 동네하루가 지날 때슬픈 역사 생각나한 차례씩 내리는 비 한 30분 쏟아지다언제 그랬냐는 듯해맑은 하늘을 보여 주는여기 사람 닮은 곳 뛰어난 손재주자수 박물관엔사진보다 사진 같은정성이 가득한 곳 달랏은 달라.
가을 오다 가을은 어떻게 오는가?가을은 위에서 내려온다.북에서 남으로 내려오고산 높은 곳에서 아래로 천천히 내려온다.나무 꼭대기에 대롱대롱 매달렸다 내려온다. 그렇게 내려오는 가을은알록달록 오색 선물을 가지고 온다.선물이 부족 할까봐들판에 황금빛 알곡을 주고나무에 주홍빛 감들을 준다. 가을에 물들어 그 속에 빠지고 싶다.잠깐이라도 가을처럼 넉넉한 마음을 가지고 싶다. 이렇게 내려온 가을은 넉넉함을 남기고서리가 내려 축 처진 호박잎처럼시린 슬픔으로 떠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