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들어가는 말모든 역사책들이 원래 편찬된 때 그대로 전해져 왔다는 보장은 ‘절대’ 없다. ‘北史(북사)’는 코리안이 배우기를 고구려와 백제가 망하기 전인 659년 이전에 편찬되었다. ‘北史(북사)’는 386년부터 618년 사이의 차이나 양자강 이북 지역의 역사이다. 지난 글에서 ‘北史(북사)’ 고리 (고구려)조를 보았다. 내친 걸음에 ‘北史(북사)’ 에 나오는 다른 나라들의 위치를 보자. 2. 百濟1) ‘北史(북사)’ 백제조 원문과 국사편찬위원회의 번역이다.①百濟之國, 蓋 馬韓之屬 也, 出自 ②索離國 (중략)百濟國은 [그 先代가
1. 들어가는 말1) 원래 편찬된 때 그대로 전해 왔다는 보장은 ‘절대’ 없다. ‘北史(북사)’는 코리안이 배우기를 고구려와 백제가 망하기 전인 659년 이전에 편찬되었다. ‘北史(북사)’는 386년부터 618년 사이의 차이나 양자강 이북 지역의 역사이다. 北史 : 唐 太宗 貞觀 元年~高宗 顯慶 4년(627~659) 사이에 李延壽가 私撰한 北朝(北魏·齊·周·隋) 233年間(386~618)의 通史. 本紀 12·列傳 88, 總 100卷.『北史』도『南史』와 마찬가지로 李延壽가 夫 李大師의 뜻에 따라 완성하였다. 특히 李延壽의 家系가 대대
1. 지금의 산동성 황하 이남 혹은 이서 (지금의 산동성) 에서 서쪽으로 흐르는 강을 찾아 보자.(1) 황하의 지류로서 서에서 동으로 흘러 황하로 들어가는 강은 제법 있다. 현대에 운하로 연결하기 전에는 황하와 합쳐지는 지류가 더 많았다. 대표적으로 김제하 (金提河) 이다. 아래는 김제하에 대한 바이두 설명이다. 동북으로 흘러 황하로 들어간다. 发源 于 河南省 新乡县(一说 滑县 耿二庄处 [1] )境,流向 东北,经豫、鲁两省,至 河南省 台前县 张庄 附近 穿临黄堤 入 黄河 (2) 서쪽으로 흘러 황하로 들어가는 강으로 대문하大汶河가 있다.
1. 들어가는 말 지난 호 글 “ 신당서新唐書 고려 高麗(고려)(리) 열전, “고(구)려(리)는 동으로는 바다를 건너 新羅에 이르고, 남으로는 역시 바다를 건너 百濟에 이른다.” 차라리 차이나의 신당서를 가짜 책이라고 해라! 그럼 고(구)려(리)는 어디인가? 차이나 대륙 황하유역인가? 북만주 일대인가? 부일사학 국사편찬위원회 (30)“ 의 계속이다. 2. 고(구)려(리) 평양의 위치1) 신당서 동이열전 고리(려) 조에서 평양성은 한나라때 낙랑군이라고 했다. ③其君 居 平壤城, 亦謂 長安城, 漢 樂浪郡 也, 去 京師 五千里而 贏, 그
1. 들어가는 말 지난 글의 연속이다. 신당서 동이열전 고(구)리 조는 평양성과 마읍산이 붙어 있는 것으로 기록하고 있어 마읍(산)을 추적하던 중 마읍이라는 이름을 사용하는 산서성 삭주시와 진성시 심수현이 평양인지를 검토하고 있다. 2. 신당서는 친절하게 고(구)리는 부여의 별종이라고 기술해 놓고 있다. 이제 신당서 고(구)리조 앞부분을 보자. 新唐書卷二百二十 列傳 第一百四十五 東夷 高麗①(東夷 高麗) 高麗, 本扶餘別種也.高麗는 본래 扶餘의 別種이다. ②地東 跨 海 距新羅, 南 亦跨海 距百濟, 西北度遼水 與營州接, 北 靺鞨. 국토는
1. 들어가는 말1) 지난 두 편의 글에서 코리아한韓나라는 황하 서쪽 한韓성에서 출발하여 임분시로 옮기고 황하 남쪽 서주지역으로 옮겼다가 다시 임분시 보다 더 북쪽인 태원시로 옮기고 급기야 흉노와 연대하여 결국 차이나漢나라에게서 최후를 맞는 희한한 이야기를 소개했다. 2) 이 때 태원으로 발령받은 한신은 좀더 변방인 마읍馬邑으로 옮기겠다고 청하고 허락을 받아 옮겼다. 마읍馬邑은 어디일까?현재 필자가 파악한 마읍馬邑은 두 군데이다. 하나는 산서성 진성시 심수현 마읍馬邑촌이다. 다른 하나는 산서성 삭주시 이고 임분시 동남쪽으로 약 50
1. 들어가는 말코리아 韓한 字(자) 韓國(한국)의 왕 韓信(한신) (이하 ‘코리아한신’이라고 한다)이 살던 한(韓) (이하 ‘코리아한나라’라고 한다)은 낙양시에서 동남쪽으로 비정되고 있다. ’코리아한신‘은 낙양 동남 오백리 떨어진 영천에서 (지금의 우주시) 지금의 태원으로, 다시 태원의 북방 마읍 (지금의 삭주시)으로 이동한다. 승리의 공신인데 고향과 전혀 관계 없는 변방으로 보내는 것은 참으로 이상하다. 이동한 곳에서 흉노에 투항하고 도리어 차이나 漢(한)나라와 싸운다. 2. 지명비정2-1) 사기 한신노관열전韓信盧綰列傳 원문이다
1. 들어가는 말 ‘사기’ 등 차이나 역사에서 왜 유방 漢(한)나라가 강조되는지를 생각해 보자. 秦(진) 나라 때까지는 임금이 모두 하늘로부터 내려온 사람 즉 天子(천자) 임을 강조하였다. 진시황의 시조가 누구이며, 주나라 의 시조가 누구이며, 은나라의 시조가 누구인데 모두 ‘사기’ 제일 처음에 나오는 누런 황제의 씨족 혹은 친척이라고 기록하고 있는 것이다. 한나라 유방은 아무런 신화가 없다. 엄마의 태몽만이 있을 뿐이다. 평민이 최고 권력을 잡았음으로 더 이상 하늘의 자손임을 강조하지 않아도 된 것이다. 유방이 태어나고 권력기반을
1. 들어가는 말1) 본 연재물에서 특별히 인용된 서적이나 기록을 표시하지 않으면 사마천의 ‘사기’에서 인용한 것이다. 지난 번 글에서 서백西伯 (= 문왕. 주나라 무왕의 아버지)이 정복활동을 하고, 풍읍을 건설하여 기하岐下(섬서성 기산岐山현으로 비정)에서 풍豐으로 이사한 기록을 소개했다. 而作豐邑(이작풍읍),自 岐下 而 徙 都豐(자기 하 이 사 도풍) 2) 차이나에서는 풍豐을 섬서성 장안현( = 서안시 장안구)로 비정하는 견해와, 강소성 서주시 풍현으로 비정하는 견해 두 가지가 있음을 소개한 바 있다. 서안시 장안구와 서주시 풍현
1. 들어가는 말 1) 황제와 치우에게 제사를 지낸 漢(한)나라 유방의 고향 지금의 강소성 패현 江苏省 沛县, 옥갑이 출토된 안휘성 탕산현,安徽省 碭山县 진시황이 치우에게 제사지낸 하남성 상구시 수양구 河南省 商丘市 睢阳区. 성省이 다르고 하니 멀리 떨어진 것 같지만 탕산현 기준으로 반경 40㎞ 내의 지역이다. 2. 주나라 무왕은 은나라 침공시 풍읍豐邑에서 출발했나, 기산岐山에서 출발했나?1) 주나라는 당초 도읍인 현재 섬서성 기산현 인근에서 동쪽으로 세력을 확장하였다. 2) 주나라는 犬戎(견융), 密須(밀수),耆國(기국)을 정벌하
1. 들어가는 말1) 지난 글에서 사마천의 ‘사기 봉선서’에 “ 秦(진)시황이 명산대천과 팔신(八神)에게 제사를 올렸다. 天·地·兵·陰·陽·月·日·四時 팔신 중 천지병天·地·兵 세번째 병兵의 신이 치우다!” 라는 기록이 있음을 소개했다. 2) 치우의 기록이 위 봉선서 말고 또 한 군데 적나라하게 ‘사기’ 안에서 나온 곳이 있다. “ 한나라를 세운 유방이 ‘치우’에게 제사를 지낸 것이다. 싸움에 이기게 해 달라고. ‘치우’는 과연 누구의 할아버지인가? ” 2. 漢(한)나라 창업자 유방의 고향은 沛패현이다. 沛패현은 은나라 마지막 왕의
'기억'과 살다여자근로정신대와 일본군'위안부' 피해 생존자 강덕경 님의 일생이다. 도이 도시쿠니가 쓰고 윤명숙 번역가가 옮겼다. 도시쿠니는 53년 사가현 출생 저널리스트다. 다양한 다큐멘터리 영상을 만들었고 방사능에 대한 다큐멘터리도 다룬다. 팔레스타인과 유대인 등 국제사회문제에 대한 저서도 많다. 팔레스타인 문제를 다룬 다큐멘터리로 제9회 이시바시 탄잔 기념 와세다 저널리즘 대상을 수상했다. 그외 문화청 문화기록영화우수상도 받았다.윤명숙은 도쿄외국어대학 일본어학과를 졸업하고 히토츠바시대학 대학원에서 사회학연구과 석박사를 마친 정통