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창작 교실 5 윤한로점점기술만 부리고아, 시랄 것도 없는 시그저 끙끙굵고뜨겁게쓰고 싶다누고 싶다길동이나처럼시작 메모워즈워드가 말하길 시골 사람들 말은 힘이 있다. 시골 사람들 말은 시적이고 철학적이다. 시골 사람들 말은 꾸밈없고 소박하고 사치와 허영에 물들지 않아서 그렇다. 가녀리게 자꾸 졸렬하게 가다듬을 필요 없다. 나도 시골에 산다. 그러니 굵고 거칠게 가자.
종부 성사 윤한로곧 팔도 다리도 머리도마음까지 못 쓰는 시간이 오겠지옷도 못 입고 내 맘대로 밥도 못 먹고똥오줌 못 가리고시도 못 쓰고 못 읽고웬 안경을 밥 숟가락이라그걸로다 밥을 떠먹으려댁들은 뉘신가요사랑하는 아내도 아들도 친구도다 잃은 시간다 떨어져 나간 시간마지막 기도, 믿음도 다 떨어져 나갔구나죄도 고하지 못하는구나무엇이 어떤 죄인지조차 홀라당 알 배 없는데그래, 이제부터다 우리 영혼 그 누구보다 밑바닥맑고 착하고 자유롭다집도 절도 없지만 모든 곳이 다 집이어라버스도 타다가 전철도 타다가나도 타다가 바람도 타다가걸레 스님보다
습작 노트 4 윤한로얼마나 잘버려야 하는지얼마나 잘죽여야 하는지알고 나니내 바둑은 한층 세졌다 깊어졌다실패한시처럼망가진인생처럼 시작 메모요즘 내 발은 춤추는 것보다 걷는 게 좋더라. 맹숭맹숭하니 목적 없는 것들보다 조금이라도 목적 있는 것들이 좋더라. 순수보다 참여가, 실천이 훨씬 좋더라. 늬들! 이젠 속지 않는다.
귤 윤한로웃기는 짜장면들, 자꾸 씨팔이니조팔이니 찾지만검정 비닐봉다리 하나구슬프구나 그 속엔 막상작고 시금털털한 것들울퉁불퉁한 것들, 연약한 것들볼품없는 것들방구 냄새나는 몇 푼 안 되는 것들애오라지 허접스레한 것들뭐 굶어 죽거나 큰 아픔큰 불행 따위 있는 건 아니나어디 가서 쪽도 못 쓰는 것들오오냐, 얘들아, 이제 곧 가마끽해야 똥골목 한가운데 갈짓자휘젓고저 누비고저도대체 오늘 하루이보다 누가 더 진실하냐더 깨졌냐 지쳤냐누가 더 잘 쓰냐또 씨팔이니 조팔이니 찾을지언정저들 위하고픈 마음나 불쑥 성호를 긋네 시작 메모오늘도 내 화살기
가재골 편 윤한로낯도 뉘렇고입성도 헐렁하고시골 내려가서 산다니까 어쭈,시 많이 썼겠네요이런 말이 되게 듣기 싫었는데농사도 좀 짓겠고이런 말은 더욱 듣기 싫구나희희낙락, 시는 개도 소도 다 쓴다손농사는 워낙이개나 소나 다 짓는 게 아니잖냐쓰는 듯 쓰지 않는 듯있는 듯 없는 듯이들 속에 확, 썩을라 내려왔단 말이다그런데 아무래도 잘 먹고 잘 입고빌빌 그게, 언제나부끄럽단 말이다 시작 메모우아하게 보이려고 지혜를 감추지 마라. 얼마 전 성경 집회서에서 찾아낸 구절이다. 지혜는 단순하고 우직하고 거칠고 무뚝뚝하기까지 한 거로구나. 또한 눈
습작 노트 3 윤한로거울을 보면불현듯, 나두 그 누군가처럼귀를 자르고 싶다그리하여 불완전하게 아니 부조리하게나두 나를그리고 싶다 쓰고 싶다나를 살고 싶다이 귀 잘라도아,아프지만 않다면 말이다 시작 메모불완전, 읽을 수 있다. 완전, 읽을 수 없다. 불완전 시인, 그립고 그립다. 완전 시인, 하나도 그립지 않다. 불완전, 부조리, 불행, 불우 시인이여.
돌아온다 윤한로아, 그렇구나우리들이 사랑했던아니 우리를 사랑했던, 먹여살렸던일도, 일터도 돌아오고이 아픔 지나가면이 시간 이겨내면, 겪어내면하늘도 돌아오고새도 나무도 바람도 구름도덩달아 돌아오고낮과 밤, 아침과 노을, 어둠그러고 보니 우리를 덮었던 어둠은괴로움은 얼마나 깊고 그윽했던가그대도, 멀리서 그대들도 돌아오고이제 다시는 미워하지 않으리나 또한 어디선가 돌아오고맑아져선진실해져선겸손해져선한껏 낮아져선 시작 메모보라, 사람이 아프니 다 아프다. 식당도 아프고 철물점도 아프고, 이발소도 미용실도 통닭집도 농약집도 튀김집도 구멍가게도
습작 노트 2 윤한로이슬 시보다 더 이슬 같은개떡 시여꽃잎 시보다 더 꽃잎 같은똥차 시여, ㅠㅠ 시여우린앳된 시고운 시이슬 시꽃잎 시별 구름 시이런 것보다개떡 시똥차 시구린 시괴론 시파리 모기 거미 시ㅠㅠ 시쓴다배부르고등 따습고 한 것들쓰잖는다외려깨지거나금 가거나새가 파 먹거나그지 같거나 한 것들쓴다, 역부러 시작 메모벚꽃 활짝 피니 마치 눈이 온 듯하댄다. 그런데 이제 눈이 오면 또 벚꽃 같다고 할 게다. 그네들 쓰는 거 안 봐도 뻔하다. 말해 무삼하리요다. 1920년대, 간도로 쫓겨가 거지로 떠돌기까지 하며 살았던 최서해는 스스
습작 노트 윤한로못 쓴 시는감동적이다너무나 아프고 괴롭고적어도 나한테는그거야말로 진짜다짜가가 아닌그러나 그거야말로절망적이라서 감동적일 뿐절망적이라서 진실일 뿐못 쓴 시는못 쓴 시라기보다못난 시다눈에 넣어도 아프지 않을못난 시여 그러니 그대라리 한껏, 호박 들어밤하늘 별이나 우러르라 시작 메모절대로 잘 쓰려고 마라. 시를 가르칠 때 못 쓴 시를 쓰라고 한다. 기교가 꽝인 시를 쓰라고 한다. 잘 쓰려고 한 시들은 아픈 곳들이, 괴로운 곳들이 전혀 없다, 어디서 벌써부터 이 따위를 배웠느냐, 버리라고 한다. 태우라고 한다. 그러나 내 시
방 윤한로그밖에 것이라곤뒤틀어진나무 의자 두 개하나는 크고하나는 조금 작을 뿐가진 것 전혀 없는 영혼쓸쓸한 고동색 방이여코 끝이 찡하다그러구러제 귀를자른정말 착한 사람고흐 시작 메모제 귀를 자른 도 외롭지만, 또한 외롭다. 아무도 없는 방에 뒤틀린 침대 하나, 뒤틀린 식탁 하나, 뒤틀린 거울 하나, 뒤틀린 수건 하나, 뒤틀린 창문 하나, 그리고 뒤틀린 크고 작은 고동색 의자 두 개가, 그건 또 왜 둘일까, 너무 외롭다. 마치 서로를 서로에 견주는 듯. 그러나 은 더욱 외롭다. 얼마나 늦은 시간일까
다시 사순이 오고 윤한로우리는덜 먹고덜 자고덜 입고덜 웃고덜 떠들고덜 배부르게덜 재미있게덜 달게덜 꿀같이이제더 아파하고더 슬퍼하고더 낮게더 약하게더 춥게더 작게더 쓰게우리는 이제덜떨어진 꽃처럼덜떨어진 새처럼덜떨어진 마음처럼 시작 메모 이규보의 저 시 ‘칠호명’은 내가 참 좋아하는 시다. 마지막 구절은 엄청난 평범이다. 이규보는 스스로 성품이 본디 소박해서 괴상, 기이한 것들 그닥
여느 날 풀잎 윤한로저를 더 밟아 주세요저를 더 때려 주세요저를 더 깔아뭉개 주세요우리 같은 나부랭이들가난하게 무지하게 비굴하게 비겁하게철사처럼, 철사처럼휘어지며, 옆구리 미어지며이제 갑니다홀라당 암것두 없이슬픈 이들이여그대들에겐 우는 듯 웃으며기쁜 이들이여그대들에겐 웃는 듯 울며적은 이들이여그대들이겐 없는 듯 많이많은 이들이여그대들에겐 터질 듯, 그러나 더 많이저에게 칵, 침 뱉어 주세요저에게 더 비웃어 주세요저에게 더 지랄떨어 주세요 시작 메모오늘 아침 성무일도 청원 기도는 풀잎 기도. 정의와 평화가 땅에 가득 차도록, 온갖 조
역방향, 비문 읽기 윤한로지금 나는 비문을 읽습니다집과 나무들 나한테, 갑니다나는 그대한테, 옵니다그렇다면 내일은나는 나무들한테, 옵니다내 사랑은 나한테, 갑니다나한테로나는 뚫어져라 뒤만 봅니다나는 앞을 되돌아보지 않으렵니다이제나는 비문을 읽힙니다 시작 메모KTX를 탔다. 역방향인 줄 몰랐는데. 언짢았지만 좋게 마음먹기로 했다. 타고 가면서 진실과 존재의 표현 방식에 대해 생각해 봤다. 시인들은 빗대서 쓰지 않으면 진실을 표현할 방법이 없어서 비유를 쓴다 했다. 아이러니나 역설 또한 마찬가지다. 직설이나 정설, 오소독소로는 잡아낸
요즘 낮달 윤한로무녀리 마음은무녀리만 알아햐, 저바가지 낮달 각시랑 사는 이참좋겄네오줌누다 말고물끄러미물끄러미 시작 메모나라 전체가 아픔들이 너무 크다. 코로나19로 성당에서 미사들을 봉헌하지 못하게 됐다. 대신 집에서 기도와 성경을 읽고 묵상했다. 2독서 몇 줄이 와 닿는다. 이 세상 지혜의 어리석음, 지혜롭다는 자들의 생각의 허황됨. 우리는 지혜롭게 되기 위해서는 거꾸로 어리석은 이가 되어야 하는구나. 마을 황토 초가집을 지나다 멈춰 선다. 무너진 굴뚝 자리, 요강, 사발, 양재기, 부러진 곡괭이 자루, 뒷간, 뒤틀린 창문틀,
겨울나기 윤한로추운 하늘엔별 하나어두운 들판엔나무 한 그루내 마음엔, 원컨대음흉한 아니 사악한 나를 위해깊은 겸손 청하는 기도 한 줄이제 귀가 떨어져 나갈 듯한겨울 꼭대기달랑 잠바떼기 걸친 채우리 서 있을 곳은 여기였네 시작 메모인색, 시기, 분노, 음욕, 탐욕, 나태, 교만 이 일곱 가지 칠죄종은 모든 죄의 근원이다. 어떻게 보면 우리 말과 행동의 모든 것이다. 음흉하지 않으면 사악하고 사악하지 않으면 음탕하고 음탕하지 않으면 방탕하고 게을러터지고. 우리 내면이란 결국 이런 것들뿐. 그런데 어느 날 내 묵상으로는 죄의 근원인 칠죄
까마귀 윤한로나란원래가그렇게생겨먹은눔이올시다그렇게생겨먹은눔이올시다그렇게생겨먹은눔이올시다이제됐나 시작 메모못난 놈이, 못된 놈이, 추잡한 놈이, 추악한 놈이, 더러븐 놈이, 시건방진 놈이, 더럽게 때갈스런 놈이, 썩어문드러진 놈이, 거지발싸개 같은 놈이, 옛날옛적엔 발 세 개 달렸던 놈이, 쉬어터진 놈이, 연병딴병할 놈이, 하여튼 겸손 교양 지혜 지식 학식 학벌 독서 도덕 윤리라곤 눈 씻고 찾아봐도 찾아볼 수 없는 놈이.
눈 윤한로김홍도 얼마나 울적했으면양반이구 생원이구 총각이구 머슴이구 애덜이구 머구양반이구 신선이구 새구 벌레구 오리구 머구죄다 쌍눔 얼굴 쌍눔 코 쌍눔 귀 쌍눔 입 쌍눔 웃음쌍눔 눈 쌍눔 눈썹좁쌀처럼 쥐똥처럼 제기! 까끄라기처럼 찍찍 찍어 발랐네옴팍 눈 우묵 눈 둠벙 눈 뚫린 눈 파인 눈 패인 눔 밟힌 눈 깨진 눈 채인 눈 올갱이 눈 메기 눈 메뚜기 눈 잔챙이 눈 고무래 눈 개다리소반 눈 문고리 눈 동고리 눈 소두방 뚜껑 눈 망초 개망초 눈 아주까리 명아주 눈 이스라치 눈 앵도라지 눈 며느리밥풀 눈 꿩에비름 눈 얼기미 눈 굼벵이 눈
산티아고 윤한로1나여기이렇게오기 위해나거기그렇게멀리 갔네2노란 화살표 길바닥 위그대를 버리고그대를 찾고그대를 찾고그대를 뱉고나를 찾고나를 버리고나를 버리고나를 줍고넌더리 나도록, 너덜너덜하도록3아아,나 같은 새끼도거기갔다 왔네 시작 메모그 잘난 잘 걷는 법 다 때려치고 애오라지 못 걷고, 못 걷기 위해서 걷습니다. 그대에게서 떨어져, 나무에게로, 나무에게서 떨어져 바람에게로, 바람에게서 떨어져 그림자에게로, 그림자에게서 떨어져 나에게로, 다시 나를 버리고, 나를 줍고, 다시 나를 뱉고, 나를 버리고. 그러다가 문득 한하운 님 문둥이
종이컵 시인 2 윤한로늑대나 할켜 갈!나두오줌 쌀만큼영혼을 울리는그런 시쓰고 싶다 그런데시를 살지도 않았고시에 죽지도 않았고시인스레 먹고시인스레 마시고또 시인스레 싸지도않았으니, ㅠㅠ오늘도 종이컵 벤치 위그지 발싸개 같은 마음한 줄이여진즉접었어야 했건만구겼어야, 묻었어야 옳았건만 시작 메모구지비 누가 나더러 시를 써달라칸 건 아니잖나. 내가 시를 안 쓴다 해서 세상이 눈 하나 까딱이나 하는 건 아니잖나. 여기저기 시인으로 등단한 제자들 소식과 인사가 들린다. 세상 다 가진 것 같지만, 이제 그네들도 쓰는 일 때문에 외로움과 괴로움,
이세돌 - 이세돌 9단 은퇴에 부쳐어째서큰 자들은, 정말 큰 그릇들은저래 작고 비리비리하고 오종종하고꾀죄죄할까, 그게 더 멋지다 거기에 엄청 긴 손톱한 돌 두 돌 세 돌부드럽게 비틀어 가는 데야마치 노래처럼실바람처럼 꺾더라, 밟아 버리더라왜, 또 중국 구리를 깨러 갈 때는어린 딸내미까지 등에 업고시장 보러 가듯동네 목욕탕 가듯 건너가지 않았냐'나는 그 누구한테도 자신이 없습니다질 자신이, 아,'그 목소리까지도영락없는 아줌마 목소리가 흘러나오는 데야우리 같은 똥파리들께는세계 최강 그대가 언제나 기쁘다더구나 갑자기 다 때려치고 은퇴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