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트는 새벽에 눈이 떠졌다. 마을에 나가 여기저기 어슬렁거렸다. 네팔의 일람 쪽으로 통하는 골목길에는 새벽부터 옥수수단을 머리에 인 남자들이 지나갔다. 마을의 한 노파는 향로에 숯불을 피워 창 밖에 걸어 놓고 향나무를 올려 연기를 피웠다. 자못 경건한 모습이었다. 뭉클뭉클 피어나는 향연에서 새로운 하루가 느껴졌다. 8시 조바리 마을을 출발, 40분 정도 걸어 갈리바스(2621m) 언덕에 도착했다. ‘갈리바스’란 ‘대나무골’의 뜻이라는데 대나무는 보이지 않았다. 길가에 서너 채의 찻집이 늘어서 있었다. 맨 끝 찻집 마당에서 두 여인이
동포들도 트레킹을 떠난 그 날은 온종일 싱숭생숭했다. 그들 청춘남녀와 함께 떠나지 못한 것이 못내 아쉬웠다. 지금이라도 마니반장으로 가서 부지런히 걸으면 조만간 합류할 수 있을 것 같았다. 그러나 그들은 나를 반기지 않을지도 몰랐다. 나는 개밥에 도토리가 되기 십상이었다. 나는 사흘 쯤 뒤에 출발하기로 작정하고 초우라스타 광장에 가서 트레킹에 필요한 지도와 판초 우의를 샀다. 사흘 후, 침낭과 우모복과 판초 우의를 배낭에 쑤셔넣었다. 사전과 회화 책, 일기장, 영양제, 안 입을 옷 등 알리멘트에 맡길 짐은 따로 보자기에 쌌다. 양철
그 날 오후, 유스호스텔의 임시 종업원 락바 라마는 다르질링을 떠났다. 그는 시킴의 수도 갱톡으로 가서 칸첸중가 트레킹 팀의 쿡으로 합류한다고 했다. 그가 손을 흔들고 사라진 언덕에서 사람들이 나타났다. 머리부터 쑥쑥 차례로 올라와 내 앞으로 걸어오는 그들은 몹시 지쳐 보이는 배낭여행자들이었다. "택시 탈 걸 그랬나 봐.""슬슬 나올 때가 됐어.""지도 다시 볼게."그들 중 하나가 걸음을 멈추고 손에 든 지도를 펼쳐보며 말했다."유스호스텔 ...... 이쯤 어디에 있을 텐데...." 그들 넷은 물어보지 않아도 동포였다. 오랜만에 듣
두릅 따러 뒷산에 올랐다가 비탈에서 엎어졌는데 가시덤불 속이라서 금방 일어설 수 없었다. 잠시 그냥 엎드려 있자니 앞장섰던 개가 내려와 저만치 앉아서 근심스러운 눈으로 꼬리를 살랑살랑 흔들었다. 위로라는 건 이렇게 넘어져 다친 사람에게 다가가 가만히 앉아서 그가 일어나기를 기다려 주는 것만으로도 가능하다. 내가 일어나 손을 털자 개는 기쁨이 역력한 얼굴이 되어 다시 앞장섰다. 개가 사람보다 낫다는 이야기는 개가 어떤 종류의 사람들보다는 훨씬 더 사람의 감정을 이해하고 공감하는 능력이 크기 때문일 것이다.
새벽꿈에 찾아갔던 곳오래 전에 사라진 사람들이하나 둘 나타났던 곳누군가 말하기를여기가 원래 우리 고향이라고
죽어 가는 붕어가 더러운 웅덩이의 수면 위로 떠오르듯 혼곤한 잠에서 깨어나고 있을 때 새소리가 들렸다. 처음 듣는 것처럼 새삼스러운 새소리였다. 애틋하고 귀여웠다. 잘 들어보니 한 마리가 우는 게 아니고 두 마리가 운다는 것을 알 수 있었다. 둘은 나무 가지에 앉아서 혹은 이리저리 하늘을 날아오르며 운다는 것도 알았다. 종달새일지도 모른다고 생각했다. 그러자 푸른 보리밭을 짓누른 끝없이 푸른 하늘이 떠올랐고 눈이 저절로 떠졌다. 폐유와 해조류가 뒤덮여 빛을 차단한 컴컴한 수면, 즉 합숙방 천장이 거기 있었다. 깨진 유리창과 그 창턱
날마다 운무 속을 돌아다니다가도 밥 때가 되면 알리멘트에 가서 밥을 먹었다. 점심은 길거리에서 군것질로 때운 적도 있었다. 하지만 아침저녁은 알리멘트의 식탁에 앉아 제대로 먹었다. 알리멘트는 유스호스텔의 부속 식당과는 달리 차림이 다양했고 맛도 그만하면 좋았다. 주문한 음식이 빨리 나왔다. 또한 타파 구릉과 그의 부인과 어린 딸 모두가 친절했다. 이따금씩 흘러나오는 옛날 팝송이 좋았다. 저녁 식사를 마치고 나서도 그냥 눌러 앉아 식당 카운터 옆 책장에 수북이 쌓여 있는 오래된 비망록들을 들추곤 했다. 비망록에는 여러 나라 여행자들의
월출산 서쪽 기슭도갑리 민박집 마당에 들어섰을 때뒷동산 대숲에서 뻐꾹새가 울더니밤에는 무논에서 악머구리가 울었다 오라는 잠은 안 오고비바람이 와서 대숲을 흔드는 중에소피 볼 겸 마당에 나와 서성이는데구름 속에서 달이 나왔다크고 둥글고 환한 달이 나왔다 도깨비 같고 장승같고 한울님 같은월출산 바위 봉우리들그 위로 솟은 달이 이 동네 형님처럼 말했다동생 왔는가?그렇게 문득 영암 사람이고 싶었다
2020년 6월 20일 토요일 오전 10시 30분, 포천 약사봉 밑에서 '장준하 의문사'에 관한 초청 강연이 있었다. 100분 동안 이어진 이 강연에 초청된 강사는 김대중 대통령 재임시 '대통령소속 의문사 진상 규명 위원회' 조사관으로 장준하 의문사를 조사한 인권운동가 고상만 씨. 현재 국가인권위원회 군인권포럼 위원인 그는 2012년에 돌베개 출판사에서 출판한 [장준하, 묻지 못한 진실]의 저자이다. (맨 아래 책 소개 사진 있음)강연은 경기도의 후원으로 포천교육문화 사회적협동조합(이사장 김준권)에서 진행한 민주시민 교육 2020년
우리 스님 어려서 처음 절에 가는 길에일주문이 멀지 않은 개울에서 사람 말하는 산새들을 만났더랍니다- 참 맑기도 하대이 떠 이고 싶구마- 떠 인다 카드니 와 그냥 오노산새들은 까르르 웃기도 하더랍니다 우리 스님 수좌 돼서 동안거 하안거이 절 저 절 수십 안거 마치고 옛 절에 돌아오는데일주문 앞 개울에서 산새들을 또 만났더랍니다개울 속 바위 위에 백동 비녀 하나씩 빼놓고서파뿌리 같은 머리 감는 산새들을 보아하니아무래도 옛날 그 산새들이지 싶더랍니다
2월이 다 가도록 다르질링의 운무는 걷히지 않았다. 정말 지독한 운무였다. 하루라도 벽난로에 장작을 때지 않으면 침낭이 눅눅해져 버렸다. 벽난로가 식어버리는 새벽이면 기침이 났고 뼈마디들이 쑤셨다. 그런 새벽이면 침대에 누워 있기보다는 차라리 밖에 나가 걷는 게 편했다. 거의 날마다 운무 속을 걸어 다녔다. 새벽에는 광장과 순환도로와 티베탄 마을을 어슬렁거렸고, 낮에는 좀 멀리 떨어진 차밭이나 묘지나 곰파寺院에 다녀오기도 했다. 그러느라고 다르질링 일대의 그 무수한 산비탈 골목들을 샅샅이 헤치고 다녔다. 오죽했으면 티브이 타워 언덕
- 어디서 불어오는 바람이냐바람을 칭찬하며 뚝방 위에 앉아 쉬는 노파좀 있다 또 한마디 바람 같은 음성으로- 착하기도 하지 그늘도 만들어 주네과연 그 언덕엔 오월 꽃구름 그늘이소복이 드리워져 있었는데단오 굿마당 당골네들은 알았을라나땀 한 방울 안 흘리고 앉았다 간 노파사는 데가 영 넘어 오대산이라는 것을
골목은 광장으로 이어졌다. 바람이 불어와 운무를 헤칠 때마다 광장에 늘어선 영국식 건물들이 드러났다. 대영제국 시대의 유물인 그 위압적인 건물들은 유령들이 사는 집처럼 보였다. 광장에 들어서자 광객들과 조우했다. 그들은 좁은 선실이 갑갑해서 바람 쐬러 갑판에 나온 선객船客들 같았다. 신혼부부도 있었고, 일가족도 있었다. 커다란 눈과 가무잡잡한 피부, 다소 수다스런 태도, 그리고 유난히 추위를 타는 것으로 보아 캘커타를 비롯한 벵골 지방 사람들이지 싶었다. 그들은 두꺼운 털옷에 털모자까지 쓰고도 덜덜 떨고 있었는데, 정말 추워하는 게
11 가을 하늘 잠자리 날개 날렵하더니해 기울자 눅이 차서 몸보다 무겁구나앞산 그림자 밀물 들듯이 몰려와 밤이 되리니싸리 울타리 끝에 그대 잠들면못 보던 별이 돋고 이슬이 비처럼 쏟아지리라 12 엊그제 그리 곱던 복사꽃오늘은 안쓰러워 못 보겠네흐린 골목 어귀 담벼락 따라먼지바람에 휩싸여 굴러가네낯선 골목 서성이던 날들이오늘 따라 목 메는데외상 주던 술집 문은 잠겨있구나 13 어제 부음을 들었더니 오늘 동트자마자 뻐꾸기가 운다앞산 뒷산에 아직 자는 새들을 하나하나 깨운다차곡차곡 죽었지만 뒤죽박죽이 된 과거에서 화창했던 날들을 불러낸다
룽따 風馬 설산 칸첸중가를 처음 봤던 그 날 아침에 다르질링에서의 첫 산책을 나섰다. 들뜬 마음과는 달리 유스호스텔을 나와서 백 미터쯤 걸었을 때 다리가 휘청거렸다. 운무는 몇 걸음 앞이 안 보일 만큼 점점 짙어지고 있었다. 다시 숙소로 돌아갈까, 이대로 더 걸어볼까, 망설일 때 운무 속 저만치 밝으레한 불빛이 퍼져 나오는 창문이 보였다. 불빛을 향해 무거운 걸음을 간신히 옮겼다.불켜진 창이 있는 건물은 식당을 겸한 게스트하우스였다. 반가웠다. 들어가서 아침도 먹고 쉬고 싶었다. 현관문을 당겼다가 흠칫 놀랐다. 식당 안에는 뜻밖에도
9 소주만 마신다는 게 자랑이었을까젊어 한 때는 맑고 독한 것명백한 것에 끌렸다맑고 독한 정신을 벼린답시고 칼을 갈듯 이를 갈며 마셨다신들린 무당 작두 타듯 술잔을 물어뜯으며아슬아슬한 술상들을 징검다리 삼아 건너온 이곳은 어디인가언제나 그 자리아우성치는 격랑에 에워싸여 눈 못 뜨는 자리누구는 세상을 버리고누구는 술을 버린 자리꿇어앉아 두 손 모은 자도 있었느니 10 맑은 소주는 이제 겁이 나서 못 마시니라대신 마시는 탁주젖처럼 쌀뜨물처럼 고운 것을 어찌하여 탁주라 일렀는가막걸리라 부르기도 죄송한 이 귀한 술뜨뜻하게 데워서 마시는 것
7 다만 햇살이 고우니 더는 바라는 것 없어그렁그렁 눈물 매달아 방울방울 떨구는 고드름처럼처마 끝에 나란히 매달려 이 겨울을 살거니이런 날 우리는 안부를 묻는 일마저 잊기로 하자 8 추위는 매섭지만 햇살이 따스하다아무 생각 없다가 깜박 졸았는데옛날 집 처마에 매달린 고드름이툇마루 앞에 떨어져 깨졌다여기는 어딘가잠시 낯설었던 세상여전히 따순 햇살
락바 라마 유스호스텔의 늙은 종업원 이름은 락바 라마였다. 나이 오십이 넘어 보였는데 실은 사십이 채 안 된 사람이었다. 네팔의 동부 산악지방 출신, 18세에 인도 군에 지원 입대해 7년간 다르질링 인근에서 복무했다. 전역 후 트레킹 회사의 포터로 벌이를 하다가 독립했다. 최근 몇 년 동안은 다르질링 유스호스텔에 오는 외국인 여행자들을 상대로 벌이를 해왔다. 때로는 쿡, 때로는 가이드, 때로는 포터라고 했다. 락바 라마의 이력을 그만큼이나마 알게 된 것은 사흘 내리 심한 몸살을 앓고 난 후였다. 사흘 동안 락바는 아침저녁으로 벽난로
4 백년은 영원에 가까운 세월인 줄 알았는데반백 년 넘게 살고 보니 백년도 하루 같겠다어느 고단한 나들이 끝또는 부산한 잔치 끝 5 장마가 물러가니 바로 가을이다밤이면 찬바람 부는 가을 풀벌레 울고술꾼들에게 술이 더 많이 필요한 계절바보들의 얼굴에도 비애가 서리는 6 기세등등한 소나기가 쏟아진다마침내 기로에 섰다술상을 차버릴까 밥상을 차버릴까소나기는 밥상을 차라고 아우성친다
1 바보나 울보를 앉혀 놓고심한 소리 해대서 울리면서러운 울음 끝에 비가 온다하루 이틀 오는 게 아니라사흘 나흘 오고 닷새 엿새 오기도 한다아, 어느 동네 바보를 울렸기에 이토록 비가 오는가 2 일기 예보는 곳에 따라 소나기였지만 종일 부슬비가 내린다곳에 따라 벌어진 낮술 모임이 저녁까지 이어지는 중벗들이여, 기어이 나를 불러내겠거든 잔질하는 속도를 늦추라내가 가서 석잔 내리 마실 때까지 3 여러 날 큰 바람이 쓸고 간 하늘이 맑듯이사나흘 계속 통음한 뒷날에야 착한 마음이 돌아온다 * 허튼 소리는 4, 5, 6 으로 계속 이어질 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