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떤 자서(自序)이젠다 글렀지만, 텄지만그래도 끙끙굵고 뜨겁게쓰고 싶다누고 싶다내 친구 문달이처럼기술 하나 부리잖고퉤퉤,때 빼고광 내잖고 시작 메모두 번째 시집 『퉤퉤』를 준비하면서 그 시작을 이렇게 하기로 했다. 제목과 자서로 쓸 게 이것저것 참 많았는데 시간이 지나면서 다 버리고 말았다. 기술 하나 부리잖고 쓴다는 게, 자칫 껍적거리지 않는다는 게 얼마나 애려운가. 지성의 중산층화, 감성의 중산층화, 감정의 중산층화, 영혼의 중산층화, 윤리의 중산층화, 신앙 하다못해 가난의 중산층화까지, 싫고 구역질 난다. 모르면 몰라도 내가
쓰는 사람들 조심해야 한다철물점 주인아저씨처럼 착하다가도술만 먹으면 난폭해진다푸에헤, 웃다가 울다가어느새 소주잔을 아그작아그작 씹으며아무 여자들한테나 욕을 하고술판을 쓸어 버리고여늬 화단에나, 차에나 오줌을 갈기고백미러를 잡아 꺾는다도무지 가리는 것이라곤 없으니물귀신 같아라, 그 작자들한테 엮여 쓸려가는광풍노도의 밤은 생각만 해도 지긋지긋하다밤새나 뺑이 친다, 얼척없어딴엔 나름 세상 가장 속된 소재속된 사유, 속된 본질이며 방법 기술 따위속된 삶을 사랑한다는 얘기려나여인숙 방, 공중변소, 다릿간 기둥에난무하는 떠블류엑스와이들처럼 느
촛불 5밥 먹다 말고저개눔새끼또나왔네라 하시두마밥숟가락까지 내동댕이 치시두마그렇게도 선량한 형님이그렇게도 너그럽고 정직하신 형님이크게 배운 것도 없어가진 것도 없어떵떵거리면서 사는 것도 아닌 형님이배에 기름기 낀 것도 아닌 형님이집도 절도 없는 분이평생을 땀 뻘뻘 흘리며뺑이치며 살아온 분이, 고생 고생개떡 먹고 꿀꿀이죽 먹고 자란 분이질통도 잘 지던 분이염생이도 잘 먹이던 분이보일러도 잘 고치던 분이이제 귀도 안 좋고 눈도 안 좋고이빨도 가신 분인데무릎도 가신 분인데거기에다 유난히 오줌발도 짜른 분이신데재미라곤 하나 없는 아주 심심
종이컵 시인비웃지는 마시라나는야종이컵에 시를 쓰는종이컵 시인소공원 벤치 위에구겨질 대로 구겨져한 줄 또는끽해야 두 줄저 꾀죄죄, 일상생활남몰래 찌그린다오파리, 모과, 구두, 말번지, 촌충 따위지각, 조퇴, 염소선생발가락이닮았다 따위혹 누군가 볼세, ㅠㅠ얼굴 불콰히 노래한다오고달파라 내 영혼그러구러 별처럼 구름처럼 흐르니언젠가 뉘렇게 짠 손그득 한 번은 맑게 읽히리‘무신무신 눔’소리 들어가매 다시금 구겨질 대로 구겨젼나는야 종이컵 시인그러니 가자,더 작고 여리게시시껄렁,우리 정작 아픈 얘기들은 빼고 시작 메모종이컵 동시, 종이컵 마음
겨울나기꿀꿀이죽 먹고타마구 주워다 불 때면등 따습고 배 불렀네빵에 갔던 형도 나오고누나들 와리바시 깎으며‘내 빤스 이 두 마리’이딴 노래 부르며 즐거웠네말번지 날망 바람에 훨훨루핑 지붕 날아가던 밤단칸짜리 뜯긴 하늘엔 맨몸 들키듯화들짝 놀란 별들, 천장이여귀때기가 떨어져 나가는 줄 알았네억수로 아름다웠지라 그러구러땡전 한 푼 못 건지곤그해 긴 겨울 가고 말아우린 학교를 꿇었네그깟 것 국 끓여 먹었제그나저나 저 겨울나기 모습도인도에다 대면 새 발에 피로다 거긴없는 사람들, 말께나 하는 놈들뻑하면 끌어다 고환 뽑고엉기지 말라, 불붙은
첫눈쑥대머리맑은종이컵동시몇 줄찌그리고 싶습니다날리고 싶습니다퉤퉤,오형!나두이제그깟이십만원꿔줄수있소
청람(淸覽)접때는 이우지 여든 살 할머니 한 분애걔걔, 내 시집 좀 달란다일주일에 둬 번 읍내 나가 시를 밴다는데좋잖은 내 시들 어쩐댜전혀 볼거리란 없단데두대이구 달라는데야떨립디다 낯 뜨겁습디다뻣뻣하고 질긴 말도 아니요풀잎에 슬리고나뭇가지에 긁히고새들한테 파먹힌 말도 아니요바람에 트고볕에 탄 말도 아니요덧정 없이, 맛대가리 하나 없이, 뚱하니속 터지는 말도 아니요그저 메스껍고 야들야들한저 대처것들 말뽄새뿐그러나 어쩔 수 없어 시집을 드릴라커니나 이렇게 써 줬습죠‘여기 할매요,부디 좋게도 맑게도보아 주지 마소 그러구러돼도 안 한 내
풀 니들은 꼴찌다아니다갸들 머리 나쁘잖다외려좋다그러므로 니들 맨날맨날꼴찌에서 둘째꼴찌에서 셋째꼴찌에서 넷째다아갸, 꼴찌도 못하공진실하기만 하면 다냐 마음순수하기만 하면 다냐 시작 메모꼴찌 하는 애들은 풀이 아닙니다. 즤가 하고저 하면 꼴찌를 안 할 수 있는데도 즤가 자꾸 꼴찌를 하기 때문입니다. 그러므로 아무리 해도, 하고 또 해도 꼴찌에서 둘째, 꼴지에서 셋째, 꼴찌에서 넷째 하는 애들이 정말 풀입니다. 갸들이야말로 이슬이, 하늘이, 아름이랍니다. 갸들이야말로 둥근잎꿩에비름이랍니다.
우리말 바로 쓰기 윤한로언젠가 양주탈춤 읽는데왜, 묵중들 수작에 ‘월려?’ 하는 대목이 나오네이건 또 뭐여, 시방 뭐라케소, 어쭈,쯤으로 알아먹을란다아무튼 고릿적 시골구석에서나 쓰던참으로 귀한 말이라 내 얼마나 반갑더냐이런 말 요즘 국어원국어사전이나다음, 네이버 사전 들엔 눈 씻고찾아봐도 절대 나오지 않지나빌레라, 아름따다, 하릴없이, 시나브로,따위 아름다운 우리말 많이 찾아 쓴다지만이게 ‘월려’ 같진 않네쟁그랍고 정겹고 그립고 큼큼하고우리 동네에도 무슨 월려 씨라고 있는데아마 그 옛날 태어날 때 얼굴이나 울음소리영낙없이 고추라 허
시창작 교실 7 윤한로내 스물서넛 살 대학 때 등단하공고등학교 문학 선생질 36년 만에겨우 낸 첫 번째 시집'메추라기 사랑노래’ 그걸 또 읽공시 쓰는 대학 동기 하나가 문자를 보냈는데오합지졸천방지축시러베 잡놈들먼먼 변방 것들이니들로 구들 깔고주추 놓고 기둥 세우고 지붕 얹고월려, 거기 추임새까지 넣어어엿한 집 한 채순한 목수처럼 뚜딱 지었으니여라고맙고나 다른 것도 아니고나,나를 목수라 하다니너무 고마워 몸둘 바를 모르겄구나 시작 메모그때 여기저기서 내 시는 전혀 시적 긴장이 없다, 발상이 밋밋하다, 비유, 상징, 메타포 따위가 약하
수푸루지 호프 윤한로미카엘라와 아들내미 우리 셋저번에 식구들꺼정 술 마시니미주알고주알 맛있다트집 잡힐 일 없고도망갈 사람 없고누가 내든 술값 머리 안 쓰고쟁그랑쟁그렁 좀 좋으냐아들내미한테 들려주는 옛날 얘기군대 얘기, 학교 때 얘기, 인생의 훈계그 구라 어디가면 누가 들어주냐, 존경해 주냐피식 피식, 곁에서 아낸 연방 콧방귀 뀌지만왜, 것두 다 음악 소리 같잖냐자식은 모자라서 대학도 떨어지고우린 다니는 직장에, 살림에 갈수록 쪼들시고그래 우리 셋, 호프가 떠나가라코가 삐뚤어지도록혀가 꼬부라지도록 마신 게다그러구러 나도 모르게 뒤로
사랑법 윤한로용산으로 밀양 현장으로 강정마을로 삼보일배로투사로 애국자로 농사꾼으로 살았으니뱃놈으로 사제로 머슴으로 내던져졌으니맨날맨날 싸우기 위해 사랑하기 위해아니다, 밑바닥에 깔리기 위해이름마저 구들장으로 바꿨으니, 방구들장 신부님안중근 도마 의사를 존경해서엄청 존경한 나머지왜적 이토 히로부미를 권총으로 쏘는 동상까지 세웠으니우리나라 곳곳, 골골을 짯짯이 사랑해서너무 사랑한 나머지본적마저 경기도에서 저 전라도 장성 땅으로 파 갔으니그러나 하느님께도이 세상 것 본인이 좋아하는 걸루 하나쯤희생 봉헌해 드려야 했기, 회로다 하자!그러구
개떡 윤한로수도국산이나 개건너 살 때똥구멍이 찢어져라가난하고 어렵던 시절에도개떡 인심은 좋았으니그 누가 개떡 먹는 걸뚫어지게 쳐다보고 있을라 치면즈이도 그것밖에 먹을 게 없지만별 도리 없어라한 쪼가리 떼어 주고 말았으니꺼끌꺼끌 말라붙어양중엔 차돌멩이만큼이나 딱딱한 개떡그 한 쪼가리를 또 애꼈다간미웁고도 싫어라마침내 막내 모개한테까지 떼어 주니어린 마음에도 묘리 없어라개떡은 본디 떼어 주고 또 떼어 주란 것인가감출 수도, 숨길 수도 없는 것이던가이 구석 저 구석 굴러다니며 발로 채이기까지나누고 나누어도 왜 그렇게 남는 것이냐이따금 그
신변잡기 윤한로마누라도 작고나도 작고애들도 작고그러니 집도 작고아픔이며 눈물, 콧물, 기쁨시까지 작을 수밖에그래! 우린 늘 쫄며 산다그런데 이렇게 사는 것도나쁘잖습디다, 굳이가난을 배우잖아도 가난하니까선을 배우잖아도 선량하니까겸손을 배우잖아도 겸손하니까, 게다크고 힘센 사람들 여벌로우리 숫제 건드리지 않고 지나치니까이 작은 존재들, 약한 존재들만일 먼저 건드린다면, 깔아뭉갠다면?그땐 불같이 일어서리라타오르리라 사라지리라 찌그러지리라, 궤짝같이흑흑, 늘상상 속에서 벌어지는 일이지만 시작 메모상상은 아픔의 이불이다. 절망의 우물이다.
나무의 시간 윤한로나 그대에게옵니다그대 나에게갑니다그대 나보다더 빨리 늦습니다나 그대보다더 늦게 빠릅니다이제야 그대, 말할 줄모르는 법을 압니다이제야 나, 들을 줄모르는 법을 압니다나 그대 그립지않습니다그대 또한 내가 그립지않습니다 시작 메모김득신은 워낙 노둔하여 10세에야 글을 깨쳤다. 웬만한 글은 수십 번, 수백 번은 읽어야 했다. 옆에서들 아예 학문을 때려치라고까지 했다. 그러나 천성이 성실하여 이곳저곳 책상을 지고 떠돌며 공부를 놓지 않았고 마침내 문과에 합격한다. 그때 나이 59세이다. 그리곤 바로 벼슬 따위에는 뜻을 버리
윤직원 윤한로(‘직원’이라 함은 거의 옛날 시골 훈장님쯤 되려나)우리 문학 가운데 보물 같은 소설이 있는데바로 채만식「태평천하」입지요거기 주인공 이름하여 윤두꺼비 윤두섭은한때 노름꾼 아버지가 물려준 집과 재산을억착같이 불리고 늘리고 닥닥 긁어모은 덕으루다그 잘난 만석꾼이 됐으며 그러구러이제 한창 구한말 나라가 무너져 가고탐관오리, 화적패가 날뛰던 개판 시절이 ‘직원’을 돈으로 삽니다만아무 날 느닷없이 화적을 맞은지라저 피 같은 재산과 재물몽조리 불타고 빼앗기고 맙니다요그리하여 우리 주인공 윤직원 영감님땅을 치며 이렇게 부르짖습니다오
백치 윤한로들창 두 개 난 오막살이에늙은 어머니와 단 둘맨발에 너덜너덜한 옷백치 청년 므이쉬낀이 사랑한백치보다 훨씬 더 어리석고더 가난하고 더 못난훨씬 더 백치인 마리남에 집 빨래하고 소 치고겨우겨우 밥 빌어먹지만어느 날 사기꾼 놈팡이한테 엮여 따라갔다간바로 채였지만나는 이 세상에서 가장 보잘 것 없다라고 생각하는그것으로도 큰 은혜라 생각하는백치보다 훨씬 더 고결한 아가씨 마리니까짓 것들이 뭐냐, 니까짓 것들이 뭐냐애시당초 이런 마음은 손톱만큼도 먹질 않아마침내 애들이 좋아하고우리 주인공 백치 청년이 사랑했네새들이 좋아하고풀 나무
시창작 교실 6 윤한로마음이 개 같으니차라리 시가 깊고 어둡고짧다그런데 마음이 깊고어둡고 절실하니오히려 시 개 같구나역겹다 길다 진즉 알았어야 했건만알면서도 그건 내가 나한테자꾸 속는 거다 속이는 거다만지면 만질수록 덧나는 게다 시작 메모앞으로 고요니 고민이니 진실이니 진지함이니 그리움이니 외로움이니 따위 없이 이것저것 개 같은 마음먹어야겠다. 우리는 왜 쉽게 보지 못할까. 쉽게 듣지 못할까. 쉽게 느끼고 생각하지 못할까. 지금 우리가 뭔지 자기 자신한테 크게 잘못하고 있지나 않을까.
가난을 위하여 윤한로골방 들창에 비 구죽죽 내리고이런 날은 죽치며사타구니 쓸며 쓸며 또다시도스토옙스키 그 가난 음울 음미한다어떤 선도어떤 진실도어떤 아름다움도가난을 이기지 못한다당할 수 없다무슨 무슨 대사상도무슨 무슨 대지혜도무슨 무슨 대문학도가난을 이기지 못한다누르지 못한다 감히이겨서는 안 된다썩어 문드러진 세상에유일하게 깨끗한, 거룩한 가난거기에 폐를 쥐어짜는 병까지 곁들이다니도스토옙스키, 비참 그 앞에 서면장황한 사변 그만 다 내팽개치곤감상 감정 격정에 빠져 버리고 만다찌질해지고 만다가난한 사람들은 언제나 옳구나구죽죽, 영원히
녀석 윤한로구죽죽 비는 오고마루 밑창 속죽치는 날이로구나컹컹 짖을 염도 없이저 고뇌에 빠진고민에 가득 찬그리움에 사무친진지한 절실한 열렬한 치열한실의에 빠진허랑방탕한 모조리 탕진한 듯한수염 난 녀석이여시인 박사 교수 기사님 같고농부 어부 술꾼 투사 배달부 같고사무원 약초꾼 양봉업자 같고중학생 대학원생 문학지망생도 같고연인 노숙자 큰처남 작은처남도 같고진종일 뺑이 친 듯한실연당한 듯한빵에 갔다 온 듯한좀 불완전한 듯이좀 부도덕한 듯이다 털어먹은 듯이 말아먹은 듯이보면 볼수록 나 같다가 나 같잖고너 같고 그눔 같다가너 같잖고 그눔 같잖