파리채 내가 네 집에 들어왔기로 서니내가 네 피부를 건드렸기로 서니내가 네 몸의 액즙을 조금 빨았기로 서니그리 무자비하게 모기채도 아닌파리채로 나를 쳐? 그런데 네가 부럽다.나도 어느 날 갑자기너처럼 죽고 싶다.
가을 문턱 아침, 저녁으로 찬바람 일고귀뚜라미 뚤뚤 뚜루루알았어요. 알았어.가을이 오고 있다고요. 하늘색이 달라지고알곡은 영글어 가고어느새 밤톨은 떨어지고글쎄, 알았다니까요.
소나무 굽으면 굽은 대로풍광과 어울려 가지를 뻗고비슷하거나 똑같은 것 없이하늘이 뿌려 준 햇살과 빗물에 고마워하며욕심 없이 자라난 너는자연에 순응하며 도를 닦는노스님의 모습이다. 인간은 자신의 노력과 타고난 운명으로자신의 인생을 살아간다.스스로의 업보로 복을 받거나 화를 자초하기도 한다.자연에 순응하며 살아가는 인간은 듬성듬성 보일 뿐이다. 땅 밑 뿌리도 바위가 걸리면 바위를 보듬고가지가 걸리면 옆뎅이 공간으로 손을 내민다.껍질이며 자태가 여간 고결해 보이지 않는다.못난 소나무가 산소를 지킨다는데잘난 소나무는 인간들 손을 타고야 만
김소월이 숙모 계희영의 무릎을 베고 들었던 노래가 「진달래꽃」이 되고 「산유화」가 되었다. 임화의 단편 서사시 「우리 오빠와 화로」, 「네거리의 순이」가 우렁차게 낭송됐을 때 파업 노동자들의 함성이 종로 거리를 헤집었다. 백석이 자야 손에 쥐어 주었던 종이 뭉치에 「나와 나타샤와 흰당나귀」가 숨 쉬고 있었다. 모두 사람 사이에 오갔던 시의 역사이다. 이 시집은 사람을 건너 뛰어 대화형 인공 지능인 챗GPT와 시를 이야기하고 있다. 그것도 사랑을 담은 시를 챗GPT에게 들려주고 감상이 어떤지 묻는다. 그렇게 시의 새로운 역사를 쓰기
6부 언눔이 (1) 달에 백오십쯤이면 되지 뭘점점 재미도 적고여보, 나 이제 그만둘라오단 둘이 보은 같은 데나 가서텃밭이나 하나 하고 삽시다좀 덜 먹고 덜 입고덜 쓰면 되지 뭘그럽시다자식이고 뭐고 필요 없이 귀촌 안양은 다 접고 접자마자떴지요우리겐 여기가 딱이구료길쭉하고 비스듬한 가재골 집강아지 두 마리 머루랑 다래랑 이름 붙이고읍내 철물점 농약상회 들러낫 호미 괭이 삽 등속 갖추랴배롱 매실 앵자두 석류 연산홍서껀사다 심으랴, 오명가명봄빛에 원, 쑥스럽구료 하나부터 열까지이 동네 분들 가르침 되우 좋아하시니가지 심다 혼나고 열무 심
바다는 그 너른 바다는 바다는 비에 젖지 않는다.폭우에도 소나기에도그저 묵묵하게 침묵할 뿐이다. 바다는 물을 가리지 않는다.찬물이나 더운물, 혹은 더러운 물이나 흙탕물일지라도그저 넉넉하게 품을 뿐이다. 말수가 적은 착한 사람이다른 사람들을 대할 때그저 사람 좋은 웃음을 웃는 것처럼... 바다는 생명을 잉태하고만물이 살아가는 소금도 말없이무한정 내어 줄 뿐이다. 이런 바다에반감기 20000년 이라는방사능 가득한 핵 오염수를 쏟아내는인류의 암덩어리들이 있다.바로 이웃한 우리나라에는 그자들 행위를인정하고 용인하고 홍보해 주는 자들도 있다
부재구중 (斧在口中) 비가 내립니다.비님이 내리는 소리는 다양합니다. 초록 나뭇잎에 닿는 소리는 싱그럽습니다.장독대에 닿는 소리는 둔탁합니다. 사람의 목소리 색도 다양합니다.사람의 입속에는 도끼가 들어있다 합니다.입속의 도끼를 잘 다루어야 합니다. 어떤 이는 도끼가 날카로운 무기가 되기도 합니다.어떤 이는 도끼로 땔감을 만들기도 합니다. 비가 상대를 만나 이야기하는 소리가 사뭇 다르듯이사람들도 상대를 만나 도끼 날을 무디게 하면 좋겠습니다. 말에도 향기가 나는 까닭입니다.
세시 십오 분 열대야 여름밤새벽잠이 깬 시각다시 잠들려고 두 눈을 꼭저 멀리서 달구들이 홰치고창 뜰에서는 귀뚜라미 뚤뚤뚤 더위가 채 가시지 않은 한 낮세시 십오 분엊저녁 놓친 잠 때문인지까무락 까무락고개 떨구고
물길이 막혀 버린 날구름도 갈 길을 멈추고새들도 울지 않았다나는 그 날어머니가 삶은 가난한 감자 한 알 먹고 있었다청아하던 강물소리 더이상 들리지 않았다눈물에 젖은 감자 한덩이 보물처럼 빛났다물길은 점점 차올라마당을 묻고 마루를 묻고 마침내 지붕까지 묻었다묻힘의 아픔이 차올라가족과 이웃 친구들 모두 울었다산 목숨은 살아야지이삿짐 싸는 아버지의 굽은 등 위에슬픔이 무겁게 내려앉았다떠나는 사람들의 귓가에 뻐꾸기 울음소리 구슬펐다묻힘의 아픔, 떠남의 슬픔이먼지나는 신작로에서 울었다
덕분에 왜 사냐고 묻지 말아라.살다 보니 그냥 살아지더라. 왜 좋아하냐고도 묻지 말아라.나도 왜 좋아하는지 모르고그냥 좋아지더라. 왜 사랑하냐고, 사랑했냐고제발 묻지 말아라.묻는 사람도 사랑했던 추억이 있지 않느냐?사랑에 무슨 이유가 있더냐?살다보니 그냥 사랑했지 무슨 까닭이 있겠냐? 세월이 지나 보니 그냥 살았고그냥 살다보니 좋아했고누가 먼저랄 것 없이 그냥 사랑하지 않았느냐? 그러나 잊지 말아라.그냥 살아는 지겠지만 모두는 모두의 덕분에 살았고모두의 덕분으로 살아질 것이다.덕분이란 덕을 나누는 것 아니겠느냐?
5부, 미카엘라 (2) 땀 뻘뻘 흘리며 일만 알 뿐기계처럼 돈이나 벌 뿐입때껏 눈물 콧물도 모르고막살았구나, 헛살았구나, 그대 아버지들 우리 셋 동네 싸구려 호프집에우리 셋나와 마누라와 작은눔귀때기가 떨어져 나갈 듯 추운 밤나도 한 잔고생이 많구먼 당신도 한 잔자, 대학도 떨어졌으니니놈도 한 잔오리털 파카 속 자꾸만 삐져나오는깃털 풀풀 날리며옛날 얘기, 군대 얘기, 학교 때 얘기,식구꺼정 술 마시면 미주알고주알 맛있구나트집 잡힐 일 없고, 도망갈 사람 없고술값 때문에 머리 안 쓰고 좀 좋으냐대학이 다가 아녀라 공부가 최고 아녀라착하
밥 어려웠던 시절 한 끼를 해결할 때마다어머니께서는 이렇게 말씀하셨다.'아이고, 잘 넘어갔다 '라고도대체 어딜 넘어간다는 것인가 했다. 밥을 먹고 때를 잇는 것을 끼니라 한다.밥을 먹는 것이 아니라 밥을 잇는 것이다.명줄이 이어져야 생명을 잇는다는 말일 것이다. 어머니 말씀의 '잘 넘어갔다'는살아가는 고개가 그리 녹록치 않았다는 말씀이리라.유월 난리 후에 태어난 많은 자식들 호구에 밥 밀어 넣는 일이 그리 힘드셨으리라. 우리네들에게 밥은 생명이요, 삶인 것이다.가장이 한 순간에 직장을 잃고 목숨을 끊는 것도 밥 때문이리라.밥멕일 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