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는 그들을 달로 보냈다. 젊은 노동자는 바의 한쪽에 앉아 술잔을 기울인다. 그리고 그는 옆에 앉아있던 늙은 노동자를 바라보면서 입을 열었다.“인간을 달로 보냈다는 것은 사실 거짓말일지도 몰라요.”젊은 노동자의 말을 듣던 늙은 노동자는 피식 웃음을 흘렸다.“옛날부터 많이 듣던 헛소리로군. 지금은 그런 음모론이 사라졌지만 그 이야기를 듣는 것은 정말로 오랜만이야.”“제가 헛소리를 한다고 생각하세요?”“그럼 자네는 그게 말이 된다고 생각하나?”“저는 거의 맞다고 생각하고 있어요.”그의 말을 듣고 있던 늙은 노동자는 목을 축인 후에 한
화분 비가 내리는 소리가 들렸다.창문을 여니 물기를 머금은 공기가 넘실거리며 방안으로 들어왔다. 마치 풀냄새가 섞인 것 같은 진한 냄새가 사뭇 반가웠다. 고개를 돌려 방안에 걸려 있는 달력을 바라보았다. 오늘의 날짜에 붉은 색 사인펜으로 비뚤비뚤한 원이 하나 그려져 있다. 다시 창밖으로 시선을 두니 하늘에서 내리고 있는 굵은 빗방울들을 볼 수 있었다. 지금 내리는 소나기들은 그녀가 약속을 지켰음을 알려주는 일종의 편지와도 같았다.거실에 놓여 있는 화분들을 소중히 품에 안았다. 이 작은 공간이 그녀의 새로운 보금자리가 될 것 이다.
지프는 빈자리 하나를 채우지 않은 채 출발했다. 좌석을 채우려고 너무 오래 지체했다가는 우리 네 명을 포함한 이미 탔던 손님들까지 곧 출발할 다음 버스에게 빼앗길 것을 염려했으리라. 강물에 걸쳐진 큼직한 다리 이쪽에 체크 포스트가 있었다. 우리 네 명만 내려서 스탬프를 받았다. 지프는 다리를 건너 점점 운무가 자욱해지는 비탈길을 오르기 시작했다. 달리다 꺾고, 다시 달리다가 꺾으면서 계속 비탈길을 올랐다. 차창 밖은 온통 차밭이었다. 앞자리 승객 중 한 명이 차창을 열었을 때 내 눈은 차창으로 쏟아져 들어오는 운무를 보았고 내 코는
우리가 탄 버스의 종점은 조레탕이었다. 조레탕에서 다르질링으로 가는 버스는 이미 떠나버렸고 10인 승 합승 지프가 대기하고 있었다. 지프에는 네 명의 승객이 앉아 있었다. 두 시간 후에 떠나는 다음 버스를 기다리느니 합승 지프를 타는 게 낫다고 판단했다. 우리 네 명이 올라가 앉으니 좌석은 두 개가 남았다. 차장은 '다르질링 다르질링'하고 행선지를 외치면서 손님을 부르고 있었고 운전사는 다르질링으로 갈 듯한 여행자가 보이면 금방 출발할 듯이 시동을 걸었다. 운전사가 또 한 번 시동을 켰다가 껐을 때 몽사와 나는 금방 온다고 말하고
*본 시리즈는 아마추어 작가들, 그 중에서도 대중문화 쪽 창작자들을 대상으로 집필되고 있습니다. 자신의 작품이 좋은 작품인지 알아보기 위한 가장 좋은 방법이 온 오프라인에서 피드백을 받는 것이라는 건 일전에 언급한 적이 있다. 앞서 말하지만 이 글에서 말하는 좋은 작품의 기준은 작품의 내적인 깊이, 순문학이 가질 수 있는 문학적 성취를 의미하는 것이 아니다. 그저 대중소설로서의 좋은 작품을 말하는 것이며 냉정히 말하자면 대중소설계에서 좋은 작품이란 다른 작품들에 비해서 더 잘 팔리는 작품이 해당된다. 다시 요점으로 돌아가서 사실 작
*본 시리즈는 아마추어 작가들, 그 중에서도 대중문화 쪽 창작자들을 대상으로 집필되고 있습니다. 오늘 이야기를 할 건 글의 전체적인 리메이크에 대한 부분이다. 리메이크라고 표현했지만 보통 흔히 생각하는 그 리메이크와는 조금 다르며 쉽게 말하자면 작품의 ‘대폭 수정’ 정도로 표현할 수 있다. 오탈자를 조금 잡거나 하는 수준의 수정이 아닌 ‘환골탈태’ 수준으로 작품을 뜯어 고치는 것을 의미한다. 현재 자유연재 게시판에 연재를 하고 있는 작품이 있을 때 스스로의 기준에서 보나 독자수로 보나 성과나 나쁘지는 않지만 더 이상 진척이 없거나
방현석의 신작 소설 ‘사파에서’가 도서출판 아시아에서 출간됐다. 방현석 작가의 문학적 원형이 담긴 아주 특별한 로맨스 소설이다. 일 년에 단 하루, 금기를 넘는 사랑이 허용되는 사파의 ‘사랑시장’을 찾아가는 사랑의 여정을 그렸다.소설의 무대인 사파는 베트남의 수도 하노이에서 북서쪽으로 약 300㎞ 떨어진 해발 1500m의 산악 지역이다. 소수민족의 도시인 사파에는 ‘사랑시장’이란 금기를 뛰어넘는 특별한 문화와 전통이 있다. 사랑시장이 열리는 매년 3월 27일, 이날은 누구나 자신의 사랑을 찾아 하룻밤을 보내는 것이 허용되고 이날의
*본 시리즈는 아마추어 작가들 그 중에서도 대중문화 쪽 창작자들을 대상으로 집필되고 있습니다. 저번 글에서는 자신의 글을 대중에게 공개하고 자신의 지인들에게 솔직한 피드백을 받는 것이 얼마나 중요한 일인지에 대해서 이야기를 해보았다.그에 대해서 독자 여러분들이 반면교사로 삼을 수 있도록 필자의 개인적인 경험을 이야기하려고 한다. 필자가 공모전에 본격적으로 뛰어든 것은 얼마 전이지만 가장 처음 도전했던 공모전은 지금으로부터 약 11년 전에 있었던 장편소설 공모전이었다. 미리 언급해 두지만 이 최초의 공모전 작품에 대한 이야기는 이후로
*본 시리즈는 아마추어 작가들 그 중에서도 대중문화 쪽 창작자들을 대상으로 집필되고 있습니다. 아마추어 작가 분들에게 자기 자신의 작품을 꼭꼭 숨겨 놓지 말 것을 권하고 싶다. 아마추어 작가들의 경우 자신의 작품을 완성한 뒤 그 작품을 아무에게도 보여주지 않는 경우가 생각보다 많다. 남들에게 공개되지 않는 글에 어떠한 의미가 있는지 의문스러운 사람들도 있겠지만 단지 글을 쓴 다는 행위 자체에 대해 자기만족을 즐기는 것에서 끝나는 경우는 그 자체로 존중받을 수 있는 자세일 것이다. 그러나 프로작가를 꿈꾸면서도 타인에게 자신의 작품을
운무는 가느다란 이슬비로 변했다. 이슬비가 아니라 무거운 운무였는지도 모르겠다. 노란 달맞이꽃이 형광 빛을 발하고 있었다. 아네이, 체링, 세따가 출렁다리 앞까지 따라왔다. 젖은 어깨에 걸쳐진 검은 머리칼에 이슬이 대롱대롱 맺혀있는 여자들의 입에서 하얀 입김이 피어났다. 바바에게 들리겠다고 먼저 떠났던 몽사는 출렁다리 앞에서 서성이고 있었다. 그는 내가 가까이 가자 바바가 안 보인다고 말했다. “어디 갔을까요?”“잠깐 출타했나 싶었죠. 그런데 앞마당이 평소 느낌과 달리 휑해서 굴에 들어가 보니 접어서 방석으로 쓰던 담요며 담요 위에
몽사는 미련을 버렸는지 몰라도 나는 바바를 따라 가고 싶은 미련이 남았다. 많은 생각이 꼬리를 물고 일어났다. ...... 배낭을 벗어 던지면 바바와 같이 걸을 수 있을 거다. 담요나 하나 장만하여 둘둘 말아서 어깨에 걸치고 걷는 거다. 바바가 자는 곳에서 자고, 바바 같은 깡통을 장만하여 바바와 함께 탁발을 할 수도 있다. 그렇게 한 달 만 고생하면 어느 정도 적응이 될 거다. 나머지 여정은 6개월이든 1년이든 큰 문제가 없을 거다. ...... 문제는 내가 물것을 잘 타기 때문에 벌레가 나만 문다는 데 있다. 그것도 견디다 보면
숙소에 돌아와 장 보따리를 풀어 놓고 우리는 언제 떠날 것인가를 의논했다. 내일 아니면 모레가 적당했다. 또한 모레보다는 내일이 안전하다는 결론을 내렸다. 결국 우리는 다음날 아침에 떠나기로 결정했다. 부탄 여성들은 몹시 서운해 했다. 특히 아네이가 그랬다. 아네이는 그새 정이 들어서 눈물을 글썽였다. 몽사는 바바에게 우리가 떠난다는 말을 전하러 갔다. 취생은 슬퍼하는 부탄 여성들을 위로하고 스님은 말없이 저녁을 준비했다. 나는 스님을 거들었다. 스님은 감자를 넣은 수제비를 끓였다. 홑이불 수제비라고 했던가? 밀가루 반죽을 홑이불처
몽사와 나는 영감네 가게에서 씨킴 위스키를 사다가 마시기도 했다. 그 와중에 취생과 몽사의 속사정을 어설프게나마 추리할 수 있게 되었다. 어느 날은 다 같이 앉아서 무상 스님의 인도 만행에 대해 들으면서 배를 잡고 웃기도 했다. 이에 대해서는 앞에서 이미 말했다. 스님은 남의 말을 잘 들어주었을 뿐만 아니라 남이 물어보는 말에도 성의 있게 대답했다. 그러나 불교에 대해서는 말을 아꼈다. 불교에 대해서는 질문을 해도 대답하지 않았다. 자기 자신도 잘 모르거나, 말로는 아무리 가르쳐도 소용이 없다고 생각하는지도 몰랐다. 따또바니의 온천
잠시 후 바위에서 아네이가 내려왔다. 아네이는 굿 모닝, 밝게 인사하고는 탕으로 쑥 들어와 앉았다. 속옷이 물에 젖자 살이 비쳤다. 흰 면내의가 감싸고 있는 크고 탱탱한 젖의 윤곽이 드러났다. 나는 머리를 쳐들고 짐짓 하늘을 바라보았지만 가슴이 두근거렸다.서른이 넘은 나이라면 사내를 모르지 않을 텐데 내외하는 기색이 전혀 없는 아네이가 콧노래를 흥얼거렸다. 가볍고 경쾌하면서도 어딘가 끈끈한 인도 가요였다. 나는 눈을 감았다. 풀주머니 같은 아네이의 살집이 감은 눈 속에 어른댔다. “코리아에도 이런 온천이 있나요?”콧노래는 언제 끝났
우리는 바바와 급속히 친해졌다. 바바의 섭생을 위해 마을에 가서 채소나 계란이나 우유를 구해 주기도 했는데 바바는 계란을 먹지 않았다. 바바는 계란을 감자처럼 모닥불에 구워서 우리에게 나누어 주었다. 몽사는 첫날부터 바바와 함께 살다시피 하더니 며칠 후에는 바바의 일상을 카메라에 담고 있었다. 모닥불을 지펴서 취사하고 탁발 나가는 모습도 촬영했다. 바바는 뼈만 남은 사람이지만 몸이 얼마나 부드러운지 사지를 자유자재로 비틀어서 꼬고 돌릴 수 있었다. 몸을 전혀 움직이지 않고 몸통을 비롯한 사지의 일정한 근육만 부분별로 움직이기도 했다
“몽사는 저에게 말했죠. 부인과 이혼하겠다고. 하지만 이혼하지 못했습니다. 그래서 이런 유랑 생활이 시작되었어요. 이 여행이 끝나면 몽사는 부인에게로, 저는 큰 이모에게로 돌아가야 합니다.” 말을 마치기 무섭게 돌아서는 취생의 눈에 이미 눈물이 맺혀 있었다. 내가 잘못 보았던 것일까? 눈물이 맺히는 순간 취생의 표정에 서릿발 같은 미소가 서렸었다. 슬픔이나 고통을 감추기 위해 일부러 만든 미소가 아니었다. 그녀의 내면에 있는 어떤 각오가 한 순간 빛처럼 반사된 미소였다. 이미 걷기 시작한 취생의 뒤를 따라 걸으며 내가 물었다. “스
“그렇게 야윈 몸으로 어떻게 그 먼 곳까지 갈 수 있을지 걱정된다.”나도 모르게 그런 말이 튀어 나왔다. 바바는 나를 한 번 흘낏 보더니 다시 불을 보며 대답했다. “걱정 마라. 가느다란 시냇물도 계속 흐르기만 하면 결국 바다에 이른다. 그리고 보다시피 이제부터는 조금씩 섭생을 시작할 것이다.”바바는 깡통을 가리키면서 희미하게 웃었다. 몽사가 놀란 표정으로 바바에게 물었다. “여태까지는 안 먹었냐?”“한 달 넘게 먹지 않았다.”“엥?” “단식했다는 말이군요. 그러니까 저렇게 갈빗대만 앙상한 거 아니겠어요?” 취생이 이 말에 무상 스
손님들이 왔는데 대접할 게 없으니 불이라도 쬐고 가라는 건지 바바는 깡통을 내려놓고는 즉시 불씨가 남아 있는 통나무 앞에 앉아 불을 살리기 시작했다. 가느다란 연기가 피어오르는 통나무 밑동에 검불을 모아 쑤셔 넣고 엎드려 후우우 후우우 몇 번 길게 불자 불꽃이 살아났다. 불 주변에 둘러앉은 우리 손님들은 다들 '거 참 신통하군' 하는 눈치였다. 불꽃을 살려 놓은 바바는 스적스적 마당 주변의 덤불 속으로 들어가더니 금방 삭정이들을 한 아름 안아다가 불 옆에 놓고 한 가지 한 가지 차곡차곡 불 위에 올렸다. 그리고는 다시 엎드려서 후우
큰 바위에서 내려섰을 때 운무 속에서 나타난 사람은 무상 스님이었다. 스님은 차곡차곡 접은 수건을 머리에 이고 있었다. 박쥐 바바처럼 혼자 목욕을 하고 명상을 하려는 걸까? 혼자 있는 스님을 본 것은 여러 날 만이었다. 스님은 늘 취생과 함께 있었다. 욕숨에서부터 따또바니까지 취생이 스님 곁을 떠나지 않았다. “스님, 상좌는 어디다 두고 혼자 오세요?”“취생은 내가 나온 것을 모를 겁니다. 온천욕 했으니 푹 쉬라고 깨우지 않았어요.”“스님도 어제 온천욕 하셨잖아요?”“저는 구경만 했어요.” “잘 하셨습니다. 지금은 온천에 아무도 없
그는 온천물이 빠지도록 모래주머니 하나를 치우고 그 앞에 앉아 머리 타래를 풀었다. 머리 타래는 한 발이나 되는 듯 길었다. 그는 그 긴 머리채를 둘둘 말아 쥐고 그것을 빨기 시작했다. 빨래 방망이로 빨래를 두드리듯이 주먹으로 머리채를 두드리며 ‘세탁’했다. 유난히 두드러져 보이는 갈빗대에서 오기 같은 게 느껴졌다. 많이 먹지 않는 바바, 사람이 없는 꼭두새벽에 목욕하러 나오는 바바, 말이 없는 바바 ……. 멋있었다. 시시한 사두 같지 않았다. 그는 머리채를 뒤집어서 두드리고, 다시 뒤집어서 두드리기를 두어 번 거듭한 뒤 물속에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