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경상수지적자 (수출입,여행 등으로 외국으로 나가는 돈이 들어오는 돈보다 많다는 표현) 당장의 생활고로 지쳐 있다. 코로나 19는 풀렸다지만 주머니 사정은 절대 풀리지 않았다. 더 어려워졌다. 로봇, 챗지피티 (인공지능이 질문에 대답해주고 논문도 써 주는 것) 등이 사람들의 미래를 더욱 어둡게 만든다. 당장 미국 중국의 대립 등으로 한국은 경상수지적자 (수출입,여행 등으로 외국으로 나가는 돈이 들어오는 돈보다 많다는 표현이다.)시대에 들어섰다. 기업이 적자 즉 손실을 계속 보면 결국 문을 닫게 된다. 가계가 계속 돈을 못 벌어
1. 사마천의 ‘사기’ 하거서(河渠書)는 사서삼경중 하나인 서경 하서 (夏書 하나라역사)에 나오는 ‘우임금이 홍수를 다스리는 이야기’로 시작한다. 지금의 학벽시 준현에서 황하는 북쪽과 남쪽 2개의 물줄기로 나누어지고 북쪽 황하는 강수라는 이름으로 동북으로 흐르다가 대륙택에 다다른다. 대륙택은 지금도 존재하는 호수와 습지다. 해석의 문제가 나온다. 北載之高地,過降水,至于大陸,播為九河,同為逆河,入于勃海 九川既疏,九澤既灑, [ ‘사기 하거서(河渠書)’ ] ① 대륙택에 들어가기 전에 9갈래 였는데 대륙택에서 한 갈래로 모여져 흐르다가 (逆
1. 한서 한무제 본기 漢書 武帝紀 원광 元光 3년 (기원전 132년) 봄에 하수(황하)가 흐름을 옮겨 元光 三年春 河水 徙 (사)*돈구(頓丘)에서 동남쪽으로 흘러 발해(勃海)로 들어갔다. 從*頓丘 東南 流入 勃海。〔一〕 사고가 말하기를 ‘돈구는 언덕 이름으로서 현 이름이 되었다. 본래 위나라 땅이다. 지리지에서는 동군에 속한다. 지금은 (당나라) 위주에 속한다. 〔一〕 師古曰:「頓丘,丘名,因以為縣,本 衛地 也。地理志 屬 東郡,今則 在魏州界也。」 (부록 참조) 2. 돈구를 추적하면 발해를 찾을 수 있다. 우선 한서지리지 동군을 보자
1. 들어가는 말1) 코리아의 역사를 차이나 대륙에서 찾을 때 중요한 지명이 발(해)와 갈(석)이다. 2) 사마천이 ‘사기’에서 기원전 108년 한나라가 발해를 건너 ‘조선 왕험’을 점령하고 5제후국을 두었다고 기록하고 있다. 그로부터 약 200년 후인 반고의 ‘한서’는 조선에 낙랑·진번·임둔·현도 4군을 설치했다고 기록했다. ‘사기’ 이후 약 400년 이후에 나온 많은 역사서들이 조선 왕험이 낙랑군 조선현이고, 고구리(려) 평양이라고 기록하고 있다. 조선 왕험 = 낙랑군 조선현 = 고구리(려) 평양, 과연 ‘조선 왕험’ 이 ‘고구
1. 들어가는 말1) 일제가 코리아 한국사(민족사)를 훼손한 것은 이루 말할 수가 없다. 그보다 더 나쁜 사람들이 역사 매국노 들이다. 손자가 서울대총장을 하고 문화재청장을 한 이병도. 그는 일제 ‘조선사편수회“에 들어가서 광복후 처단되지 않고 문교부 장관까지 지내며 코리아 한국사(민족사)를 한반도에 가두어 버렸다. 북으로는 차이나의 식민지 (한사군), 남으로는 일제의 식민지 (임나일본부)로서 ’살기 위해서‘는 사대(큰 나라에 빌붙음)하는 것을 전통으로 가져왔다고 은근히 반민족주의를 부추겼다. 2) 일제가 한반도를 침략한지, 187
1. 들어가는 말1) ‘부여’를 추적하면서 ‘연’을 추적하게 되었고, 이제 ‘발해(군)’을 같이 추적한다. 2) 사기 화식열전은 “ 夫 燕 亦 勃、碣之閒 一都會也。燕 은 발해와 갈석 사이의 한 도시이다. 南 通 齊、趙,남으로는 제나라 조나라와 통하고 (중략) 北鄰烏桓、夫餘, 북으로는 오환, 부여와 붙어 있다. 東綰 穢貉、朝鮮、真番之利。 동으로는 예맥, 조선, 진번과 남북으로 줄을 이어 붙어 있다.”고 서술하고 있다. 여기서 勃、碣之閒 발갈지간 즉 발(해)와 갈(석) 사이는 어디인가? 2. 발 勃1) 한나라 시대에는 발해군이 있었다.
1. 들어가는 말1) 연燕 에 대한 추적은 잠시 중단하자. 원래 이 글은 삼국지 위서 오환선비동이전부여조에 나오는 공손 탁(度도) 웅雄을 추적하는 것이다. 2) 삼국지 이외 다른 차이나 역사서에는 공손탁(度도)는 ‘웅雄’이 생략되고 한나라의 요동태수로 나온다. 3) 먼저 한나라의 역사를 빠르게 보자. 왕망이 만든 신新나라가 유방이 만든 한나라를 없애는데 그 때 유방이 만든 한나라는 문을 제대로 닫았다. 그리하여 이를 전한 혹은 서쪽에 있었다고 서한이라고 한다. * 전한(前漢: 기원전 202년~기원후 8년)은 고조(高祖) 유방(劉邦)
1. 들어가는 말1) 차이나의 정사라는 ‘삼국지’를 보자. 흔히 아는 소설 ‘삼국지연의’는 정사 ‘삼국지’에 허구의 세계를 넣은 것이다. 2) 삼국지 위서 오환선비동이전 부여조 (이하 ‘부여조’라 한다)를 보자. 夫餘는 長城의 북쪽에 있는데, 玄菟에서 천 리 떨어져 있다. 남쪽은 高句驪 (우리가 아는 麗(려) 옆에 말 馬(마) 가 있다)와, 동쪽은 挹婁와, 서쪽은 鮮卑와 접해 있고, 3) “夫餘本屬玄菟. 漢末, 公孫度雄張海東, 威服外夷, 夫餘王 尉仇台更屬遼東. 時 句麗·鮮卑彊, 度以夫餘在二虜之間, 妻以宗女. ”夫餘는 본래 玄菟에 속
1. 들어가는 말모든 역사책들이 원래 편찬된 때 그대로 전해져 왔다는 보장은 ‘절대’ 없다. 아래는 부여 관련 차이나 역사책 요약표이다. 삼국지 위서 동이전(이하 삼국지라 한다)가 285년 경에 편찬되었으나 450년경 수정되었음으로 후한서 동이전 (이하 후한서라 한다)와 비슷한 시기에 편찬되었다고 볼 수 있다. 삼국지가 그래도 덜 수정되었을 것이라는 기대로 삼국지 기록을 중심으로 살펴보고자 한다. 세 역사서를 공통하는 것은 현도의 북쪽에 부여가 있고 부여의 북쪽에 약수 (弱水)가 있다는 점이다. 이 글은 매우 중요한 漢字(한자) 및
1. 들어가는 말 모든 역사책들이 원래 편찬된 때 그대로 전해져 왔다는 보장은 ‘절대’ 없다. ‘北史(북사)’ 백제조는 “ 索離國 [‘치’나라]에서 남으로 엄수와 대(체)수를 건너온 동명은 부여의 왕이 되었다. 동명의 후손 구태仇台가 대방고지帶方故地에 만든 나라가 백제” 라고 기록하고 있다. 北史(북사)’ 고구리(려)조는 “ 高句麗는 그 先祖가 夫餘에서 나왔다. (중략) 朱蒙은 이에 焉違 등 두 사람과 함께 동남쪽으로 달아났다. (중략) 朱蒙과 함께 紇升骨城에 이르러 마침내 정착하고 살았다. 나라 이름을 高句麗라 하고 인하여 姓을
1. 들어가는 말 모든 역사책들이 원래 편찬된 때 그대로 전해져 왔다는 보장은 ‘절대’ 없다. ‘北史(북사)’ 백제조는 “ 索離國 [‘치’나라]에서 남으로 엄수와 대수를 건너온 동명은 부여의 왕이 되었다. 동명의 후손 구태仇台가 대방고지帶方故地에 만든 나라가 백제” 라고 기록하고 있다. 대방고지, 대방 옛 땅이라는 표현은 ‘北史(북사)’가 편찬된 때 대방이라는 지명은 없어졌거나 있어도 크지 않으리라는 추측을 가능하게 한다. 대방고지를 부여의 땅으로 추정하기에 충분하다. 부여의 땅 대방고지에서 백제가 만들어졌고, 백제의 시조 구태仇台
1. 들어가는 말모든 역사책들이 원래 편찬된 때 그대로 전해져 왔다는 보장은 ‘절대’ 없다. ‘北史(북사)’ 백제조는 索離國 [‘치’나라]에서 남으로 엄수와 대수를 건너 동명은 부여의 왕이 되었다. 동명의 후손 仇台가 대방고지帶方故地에 만든 나라가 백제라고 기록하고 있다. 대방고지는 부여의 땅으로 추정하기에 충분하다. 부여의 땅에서 백제가 만들어졌고, 백제의 시조 仇台 는 부여왕 동명의 후손이니 부여가 백제라고 해도 틀린 말은 아니다. 索離國에서 남하한 동명을 부여 사람들이 “어서 옵쇼, 왕이 되어 주세요‘ 하여서 원래 있던 부여왕
1. 들어가는 말모든 역사책들이 원래 편찬된 때 그대로 전해져 왔다는 보장은 ‘절대’ 없다. ‘北史(북사)’는 코리안이 배우기를 고구려와 백제가 망하기 전인 659년 이전에 편찬되었다. ‘北史(북사)’는 386년부터 618년 사이의 차이나 양자강 이북 지역의 역사이다. 지난 글에서 ‘北史(북사)’ 고리 (고구려)조를 보았다. 내친 걸음에 ‘北史(북사)’ 에 나오는 다른 나라들의 위치를 보자. 2. 百濟1) ‘北史(북사)’ 백제조 원문과 국사편찬위원회의 번역이다.①百濟之國, 蓋 馬韓之屬 也, 出自 ②索離國 (중략)百濟國은 [그 先代가
1. 들어가는 말1) 원래 편찬된 때 그대로 전해 왔다는 보장은 ‘절대’ 없다. ‘北史(북사)’는 코리안이 배우기를 고구려와 백제가 망하기 전인 659년 이전에 편찬되었다. ‘北史(북사)’는 386년부터 618년 사이의 차이나 양자강 이북 지역의 역사이다. 北史 : 唐 太宗 貞觀 元年~高宗 顯慶 4년(627~659) 사이에 李延壽가 私撰한 北朝(北魏·齊·周·隋) 233年間(386~618)의 通史. 本紀 12·列傳 88, 總 100卷.『北史』도『南史』와 마찬가지로 李延壽가 夫 李大師의 뜻에 따라 완성하였다. 특히 李延壽의 家系가 대대
1. 지금의 산동성 황하 이남 혹은 이서 (지금의 산동성) 에서 서쪽으로 흐르는 강을 찾아 보자.(1) 황하의 지류로서 서에서 동으로 흘러 황하로 들어가는 강은 제법 있다. 현대에 운하로 연결하기 전에는 황하와 합쳐지는 지류가 더 많았다. 대표적으로 김제하 (金提河) 이다. 아래는 김제하에 대한 바이두 설명이다. 동북으로 흘러 황하로 들어간다. 发源 于 河南省 新乡县(一说 滑县 耿二庄处 [1] )境,流向 东北,经豫、鲁两省,至 河南省 台前县 张庄 附近 穿临黄堤 入 黄河 (2) 서쪽으로 흘러 황하로 들어가는 강으로 대문하大汶河가 있다.
1. 들어가는 말 지난 호 글 “ 신당서新唐書 고려 高麗(고려)(리) 열전, “고(구)려(리)는 동으로는 바다를 건너 新羅에 이르고, 남으로는 역시 바다를 건너 百濟에 이른다.” 차라리 차이나의 신당서를 가짜 책이라고 해라! 그럼 고(구)려(리)는 어디인가? 차이나 대륙 황하유역인가? 북만주 일대인가? 부일사학 국사편찬위원회 (30)“ 의 계속이다. 2. 고(구)려(리) 평양의 위치1) 신당서 동이열전 고리(려) 조에서 평양성은 한나라때 낙랑군이라고 했다. ③其君 居 平壤城, 亦謂 長安城, 漢 樂浪郡 也, 去 京師 五千里而 贏, 그
1. 들어가는 말 지난 글의 연속이다. 신당서 동이열전 고(구)리 조는 평양성과 마읍산이 붙어 있는 것으로 기록하고 있어 마읍(산)을 추적하던 중 마읍이라는 이름을 사용하는 산서성 삭주시와 진성시 심수현이 평양인지를 검토하고 있다. 2. 신당서는 친절하게 고(구)리는 부여의 별종이라고 기술해 놓고 있다. 이제 신당서 고(구)리조 앞부분을 보자. 新唐書卷二百二十 列傳 第一百四十五 東夷 高麗①(東夷 高麗) 高麗, 本扶餘別種也.高麗는 본래 扶餘의 別種이다. ②地東 跨 海 距新羅, 南 亦跨海 距百濟, 西北度遼水 與營州接, 北 靺鞨. 국토는
1. 들어가는 말1) 지난 두 편의 글에서 코리아한韓나라는 황하 서쪽 한韓성에서 출발하여 임분시로 옮기고 황하 남쪽 서주지역으로 옮겼다가 다시 임분시 보다 더 북쪽인 태원시로 옮기고 급기야 흉노와 연대하여 결국 차이나漢나라에게서 최후를 맞는 희한한 이야기를 소개했다. 2) 이 때 태원으로 발령받은 한신은 좀더 변방인 마읍馬邑으로 옮기겠다고 청하고 허락을 받아 옮겼다. 마읍馬邑은 어디일까?현재 필자가 파악한 마읍馬邑은 두 군데이다. 하나는 산서성 진성시 심수현 마읍馬邑촌이다. 다른 하나는 산서성 삭주시 이고 임분시 동남쪽으로 약 50
「수질 및 수생태계 보전에 관한 법률」 (약칭: 수질수생태계법 필자는 수질법이라고 더욱 줄여서 쓴다) 제2조 제4호는 '폐수'는 물에 액체성 또는 고체성의 수질오염물질이 섞여 있어 그대로는 사용할 수 없는 물을 말한다. 수질법 제2조 제7호는 “수질오염물질”이란 수질오염의 요인이 되는 물질로서 환경부령으로 정하는 것을 말한다. 수질법 제2조 제8호는 “특정수질유해물질”이란 사람의 건강, 재산이나 동식물의 생육(生育)에 직접 또는 간접으로 위해를 줄 우려가 있는 수질오염물질로서 환경부령으로 정하는 것을 말한다. 고 규정하고 있다. ‘
1. 들어가는 말코리아 韓한 字(자) 韓國(한국)의 왕 韓信(한신) (이하 ‘코리아한신’이라고 한다)이 살던 한(韓) (이하 ‘코리아한나라’라고 한다)은 낙양시에서 동남쪽으로 비정되고 있다. ’코리아한신‘은 낙양 동남 오백리 떨어진 영천에서 (지금의 우주시) 지금의 태원으로, 다시 태원의 북방 마읍 (지금의 삭주시)으로 이동한다. 승리의 공신인데 고향과 전혀 관계 없는 변방으로 보내는 것은 참으로 이상하다. 이동한 곳에서 흉노에 투항하고 도리어 차이나 漢(한)나라와 싸운다. 2. 지명비정2-1) 사기 한신노관열전韓信盧綰列傳 원문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