멜로드라마-마혜경 주머니에서 핸드폰을 꺼낸다장갑을 벗고 눈을 비빈다소맷부리도 액정을 닦는다흐린 정경이 소매 끝에 붙는다 왼발 뒤꿈치에 나뭇잎이 붙어있다오른발로 밟고 왼발을 든다나뭇잎이 오른발에 붙는다집게로 누르고 오른발을 든다나뭇잎이 집게에 붙는다 넌 의지가 약한 게 흠이야뭐든 잡고 늘어지는 버릇, 나무를 꽤나 흔들었겠어얼마나 홀가분했을까 너의 추락을 모의하는 동안 나뭇잎은 말이 없다할 말을 달라붙는 일에 모두 소모했으므로나뭇잎은 손을 만나 추락한다발을 향한 추락은 추락이 아니다 흐린 정경이 눈동자에 붙는다핸드폰에 담아 주머니에 넣
고양이 모국어- 마혜경 눈동자는 말이 없다긴 수염이 남은 말들을 털어냈다그것이 발톱에 각인 되었다저리가, 멋대로 돌 던지는 사람들에게발은 발톱을 길게 뽑았다세상을 할퀴고 지나갔다그들의 언어는 정제되지 않아자주 숲에 숨는 버릇이 있다 적막한 길에서날카로운 발자국을 읽은 적이 있다눈동자에 오래 머물렀다
앞장서서 걸으며 생각해 보니, 스님과 내가 호텔 마리아 옥상에서 만났다가 다시 다르질링에서 만날 때까지 두 어 달 동안 스님이 어디에 있었는지를 들어본 일이 없었다. 내가 물어본 일도 없었다. 스님과 작별하기 전에, 그러니까 내가 버스에 오르기 전에, 스님에게 그것을 물어봐야 한다는 생각이 불현듯 스쳤다. 그러자 궁금한 것들이 두서 없이 떠올랐다. 림빅의 누구네 집에서 묵었는지, 며칠이나 체류했는지, 람만의 룸부네도 아는지, 까말라와 까말라에게 스웨터를 떠서 입힌 여행자를 아는지...... 마침내 질문의 핵심을 찾은 나는 걸음을 멈
글쓰기는....타인이 읽었을 때 이로운 글을 써야 한다. 자신의 감정에 취해 쓰는 글이 되지 않도록 해야 한다. 글이란 내가 경험한 사실을 기반으로 배우고, 느낀 점을 자유롭게 펼쳐 나가는 것이다. 좋은 글은 누가 봐도 쉽게 이해되고, 읽을 때 가슴이 따스해지는 글, 즉, 공감을 자아내야 한다. 있는 글대로 느끼고, 하고 싶은 것을 하며, 주체적으로 살고 있습니다. 이 모든 것은 글쓰기에서 시작될 수 있었습니다. 모두가 행복해지는 감성 글쓰기를 하게 되기를 간절히 희망합니다. 목차를 보면 1부 글은 나 자신, 2부 무엇을 어떻게 표
나로 인해 생겨난나를 따라 움직이는 너는분명 내가 백이라면너는 나의 혼일 게다. 볕을 등지고휴대폰 셔터를 누르다가나는 나의 혼을 보았다. 녀석은 검은 옷을 입었고나에게 들킬까 봐바닥에 납짝 엎드려 있었다. 혹시나 하는 마음에몸을 돌려 해를 바라보니녀석은 내 뒤로 숨더군. 바닥에 비친 녀석의 모습은내 생김과 흡사했는데키가 제멋대로 자라더군. 나 살아 있는 동안 늘 함께하다눈감고 잘 때면자유여행을 한다지? 나 죽어 없어지더라도녀석은 남는다 하니이제 내가 나를 사랑하자.
고스케 안에 있던 어떤 끈이 뚝 소리를 내며 끊겼다. 아마도 그건 아버지 어머니와 맞닿아 있기를 바라는 마지막 마음의 끈일 터였다. 그것이 뚝 끊겼다. 히가시노 게이고의 ‘나미야 잡화점의 기적’ 에 나오는 말이다. 사업에 실패한 가족과 야반도주를 하고 있던 아들 고스케가 아버지에게 느꼈던 끊어진 마음의 끈이다. 나도 그런 마음의 끈이 끊어졌었다. 말을 하는 건 화해를 할 수 있다는 거다. 동생과 대화하고 싶지 않다. 미안해하면 받아 줘야하기 때문에. 남 뒤통수를 치는 사람과 신의를 이어가고 싶지 않다. 끊어진 마음의 끈은 다시 붙지
세레나데가을의 끝자락에 서 있습니다.가을비에 떨어지는 낙엽에서또 다른 희망을 봅니다.그리움으로 물든 낙엽은 추억과 함께 떨어져 쌓입니다.다가오는 겨울을 기다립니다.아픔 없이 자란 사람은 타인의 고통을 모릅니다.가슴에 심어둔 그리움은 아픔입니다.긴 기다림의 시간을 견딘 자 만이따뜻한 계절을 만납니다.가을이 가고겨울이 오고그 겨울의 시간이 지나면사랑하는 당신을 만날 수 있을런지요.누구나 가슴 속에별 하나씩은 가지고 삽니다.내 가슴의 별이 반짝이는 날나는 노래하렵니다.당신을 위한 세레나데를...
버스 종점을 둘러싼 짙은 운무 속에서 확성기 소리가 들려왔다. 점점 가까이 들려오는 그 소리는 다음날부터 시작될 파업에 적극 동참하자는 선동이었다. 확성기 소리가 아주 가까워지자 운무 속에서 시위대가 나타났다. 피켓이나 플랜카드를 들고 나타난 시위대는 구호를 외치며 우리를 향해 육박해 오고 있었다. 무선 통신기를 든 경찰들이 맨 앞이었다. 경광등을 켠 경찰차들도 따랐다. 시위대의 거창한 행렬이 우리 앞을 지나서 시야에서 멀어지고 있을 때 나는 퍼뜩 정신을 차렸다. 취생과 몽사는 떠났지만 스님은 아직 내 옆에 서 있었다. 그리고 이제
우리는 그들을 달로 보냈다. 젊은 노동자는 바의 한쪽에 앉아 술잔을 기울인다. 그리고 그는 옆에 앉아있던 늙은 노동자를 바라보면서 입을 열었다.“인간을 달로 보냈다는 것은 사실 거짓말일지도 몰라요.”젊은 노동자의 말을 듣던 늙은 노동자는 피식 웃음을 흘렸다.“옛날부터 많이 듣던 헛소리로군. 지금은 그런 음모론이 사라졌지만 그 이야기를 듣는 것은 정말로 오랜만이야.”“제가 헛소리를 한다고 생각하세요?”“그럼 자네는 그게 말이 된다고 생각하나?”“저는 거의 맞다고 생각하고 있어요.”그의 말을 듣고 있던 늙은 노동자는 목을 축인 후에 한
화분 비가 내리는 소리가 들렸다.창문을 여니 물기를 머금은 공기가 넘실거리며 방안으로 들어왔다. 마치 풀냄새가 섞인 것 같은 진한 냄새가 사뭇 반가웠다. 고개를 돌려 방안에 걸려 있는 달력을 바라보았다. 오늘의 날짜에 붉은 색 사인펜으로 비뚤비뚤한 원이 하나 그려져 있다. 다시 창밖으로 시선을 두니 하늘에서 내리고 있는 굵은 빗방울들을 볼 수 있었다. 지금 내리는 소나기들은 그녀가 약속을 지켰음을 알려주는 일종의 편지와도 같았다.거실에 놓여 있는 화분들을 소중히 품에 안았다. 이 작은 공간이 그녀의 새로운 보금자리가 될 것 이다.
지프는 빈자리 하나를 채우지 않은 채 출발했다. 좌석을 채우려고 너무 오래 지체했다가는 우리 네 명을 포함한 이미 탔던 손님들까지 곧 출발할 다음 버스에게 빼앗길 것을 염려했으리라. 강물에 걸쳐진 큼직한 다리 이쪽에 체크 포스트가 있었다. 우리 네 명만 내려서 스탬프를 받았다. 지프는 다리를 건너 점점 운무가 자욱해지는 비탈길을 오르기 시작했다. 달리다 꺾고, 다시 달리다가 꺾으면서 계속 비탈길을 올랐다. 차창 밖은 온통 차밭이었다. 앞자리 승객 중 한 명이 차창을 열었을 때 내 눈은 차창으로 쏟아져 들어오는 운무를 보았고 내 코는
나와 생각이 같지 않으면 나의 적우리와 입장을 같이 하지 않으면 국민의 적국민은 그저 다소곳이 그냥 있는데너도나도 편리하게 마구 국민을 끌어들인다국민이 지켜보고 있다는 아전인수 주장이 하늘을 찌르고열사의 뜻을 받들자면서 열사의 생전 일자리를 파괴하는 모순확증 편향 혹은 편견에 갇혀 있는 단체조직에 충성하는 괴물 권력에 휘둘리는 선출 권력진실과 정의 팽개치는 패악과 함께하는 기득권합리적으로 생각하고 공정하게 판단할 겨를 없는 나라빨리빨리 얼른얼른 냄비 달궈지듯 팔팔 끓는 민심벌겋게 달아올랐다가 기억도 하기 전에 식어
우리가 탄 버스의 종점은 조레탕이었다. 조레탕에서 다르질링으로 가는 버스는 이미 떠나버렸고 10인 승 합승 지프가 대기하고 있었다. 지프에는 네 명의 승객이 앉아 있었다. 두 시간 후에 떠나는 다음 버스를 기다리느니 합승 지프를 타는 게 낫다고 판단했다. 우리 네 명이 올라가 앉으니 좌석은 두 개가 남았다. 차장은 '다르질링 다르질링'하고 행선지를 외치면서 손님을 부르고 있었고 운전사는 다르질링으로 갈 듯한 여행자가 보이면 금방 출발할 듯이 시동을 걸었다. 운전사가 또 한 번 시동을 켰다가 껐을 때 몽사와 나는 금방 온다고 말하고
만남 만남은 기쁨이다.아침에 햇살을 만나고눈부심에 고마움을 전하는하루의 시작이 기쁨이다. 만남은 행복이다.햇살 사이사이로바람 한줄기 불어와얼굴을 간지럽히는 것은살아있음을 느끼는 행복이다. 실개울이 만나고 만나서내가 되고 강을 이루듯과실 하나 익어갈 때많은 날 햇살이 채곡채곡 담기듯 오늘 우리에게는또 다른 만남이 기다린다.작은 인연을 소중히 채우면큰 인연의 정이 되겠다. 만남은 행복이요 기쁨이요 정이다.
관통 당하길 원하는 심장이 놓여 있다 당분간 하늘은 파랗게 물들지 않을 것이다 보조개가 예쁘다고 생각했다 스스로에게 칭찬을 할 때마다 열리지 않은 사과나무들이 흔들렸다 기생충처럼 누군가의 뿌리가 어금니에 씹혔다 베어내야 할 것들이 많아지는 계절이면 아비는 화살촉을 닦았다 지워지지 않는 핏빛 대신 깨끗한 물결무늬 자국, 아비는 화살촉을 닮았다 아무도 활이 어디에 있는지 묻지 않았다 사냥을 위해 몸을 움츠리듯이 빈 장독대에 숨어 한 계절이 지날 때까지, 내 몸에선 눅눅한 효모 냄새가 가시지 않았다 바람이 불면 허리 굽히는 밭에서여러 번
우연한 아침- 마혜경 산책 다녀온 연심 씨 손 위에민들레 한 송이 피었네요들판에 뿌리를 두고 홀로 왔다죠그녀가 쪼그려 앉자 발목에 닿은 꽃잎똑똑, 꺾이고도 이렇게 활짝일 수가연심 씨 손에 꽃물이 듭니다 연심 씨 아니 민들레는 노란 부처일까요민들레 아니 연심 씨는 꽃인 걸까요 흰 발우를 꺼내 창가로 갑니다민들레는 아니 연심 씨는 정말 꽃이 될까요
2020년의 절반이 빠르게 지나갔다. 자영업자였던 우리 아빠는 백수가 되었고 현재는 가끔 하는 잡다한 일 외에는 일을 쉬고 계신다. 뉴스에서 하루가 멀다 하고 떠들던 일이 어느 순간 나의 일이 아닐 수 없었다. 금방 지나갈 것 같던 태풍이 아예 집을 짓고 머물러 버리니 누군가는 포기해야 할 것이 생겼다. 반년이라는 시간 동안 일상의 사소한 부분에서부터 많은 것이 바뀌었고 당연했던 것이 가장 어려워졌다. 더군다나 나는 가장 가까운 곳에서 이 모든 것을 느끼며 하루 빨리 이 상황이 마무리되길 바래야했다. “몸에 손대지마세요.”, “저
아이와 코로나아이야 어른은 너희들이 참 걱정이다.새싹이 나고 잎이 푸르러져꽃대를 올리고 꽃이 피고그 꼭지에 열매가 맺어야 한 해가 가듯이 삼월에 진급하고 새 친구와 선생님을 만나고까르르 웃음도 굴리고운동장에서 구르는 웃음도 뻥뻥 차고친구랑 수다도 떨고여름이 지나 가을이 익을 때쯤어느새 이만큼 컸나? 작년 옷이 작아졌네 해야 하는데...어른님 걱정 마세요.단풍이 곱게 물드는 계절이지만나무에게 아무도 걱정하지 않았잖아요햇살을 먹고 비를 맞으며구름이 전해주는 세상 이야기와바람이 들려주는 노래가 열매 맺고 낙엽지게 했듯이불편은 했지만 가장
수푸루지 호프 윤한로미카엘라와 아들내미 우리 셋저번에 식구들꺼정 술 마시니미주알고주알 맛있다트집 잡힐 일 없고도망갈 사람 없고누가 내든 술값 머리 안 쓰고쟁그랑쟁그렁 좀 좋으냐아들내미한테 들려주는 옛날 얘기군대 얘기, 학교 때 얘기, 인생의 훈계그 구라 어디가면 누가 들어주냐, 존경해 주냐피식 피식, 곁에서 아낸 연방 콧방귀 뀌지만왜, 것두 다 음악 소리 같잖냐자식은 모자라서 대학도 떨어지고우린 다니는 직장에, 살림에 갈수록 쪼들시고그래 우리 셋, 호프가 떠나가라코가 삐뚤어지도록혀가 꼬부라지도록 마신 게다그러구러 나도 모르게 뒤로
시간이 흐르니 세월도 가고빈 손으로 왔다가 빈 손으로 가는 인생조금 더 가지기 위해 발버둥치는 삶비우고 내려놓지 못하는 마음 사이로채우지 못한 욕심이 발기하고비울 것이 있어야 비우지내려놓을 것이 있어야 내려놓지핑계대는 말들이 어지러운 시간하늘 아래 땅이 있고 땅 위에 있는 사람들전염병이 도져 괴로운 밤괴로움 커져 더욱 추운 겨울밤다함께 승리하자는 다짐 커질 때언뜻언뜻 달을 가리며 구름은 흘러가고각자의 소원 달 쪽으로 향하는데기운 없는 사내 달보고 소원도 빌지 못하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