호박꽃 우리네 인생에서 가장 가까운 이들에게 짜증이나 화를 참 많이 내고 살아갑니다. 내 뇌에 저장된 메시지는 그들은 나라고 인지하기 때문입니다.엄마에게, 자식에게, 가장 친한 친구에게 사소한 일로 화를 냈던 일들을 떠 올려 봅니다.믿거니 생각하며 함부로 대했던 지난 시간을 후회합니다. 며칠 동안 내리던 비가 그치고 햇살이 빛나는 아침에 호박꽃이 환하게 핀 것을 보았습니다.평소 같았으면 그냥 지나쳤겠는데 그날은 발길을 멈추고 꽃을 바라보았습니다. 크기며 모양이며 색깔이 참 곱고 예뻤습니다. 가장 가까운 사람들을 떠올렸습니다.그들도
4부 염소 선생(3) 별개미 컨테이너온종일 앉아착한 마음 구두를 닦는다허리 구부려늦은 밤 맑은 영혼열쇠를 깎고 도장을 판다진짜 선생이시구나반백의 흐트러진 머리 치켜들면카아, 어둠 뚫고 떠오른인생 한 모금 좋더라푸른 밤바다 얇은 다리 금방노 저어 갈지니삐걱이는 두 짝 잎새 다리여내가 만일 너를 잊는다 하면내 오른손 그 솜씨도 잊혀져라*14,15행은 『구약 성경』 「시편」 136장에 나오는 구절 내 일찍진짜 공부를 했어야 하는데좁은 컨테이너 박스 안에 진종일 틀어박혀구두를 닦고 열쇠를 깎고도장을 팠어야 하는데내 진즉 런닝구가 다 해지도
능선 아버지께서는 그 길을 장등이라 했다.내가 그 길을 걸었을 때는 유년기였다.열 살 남짓했던 나는 소 고삐를 쥐고 시내의 불빛을 내려다 보았다.산자락 아래 멀리 보이는 수 많은 불빛이 아름다웠다. 세월이 지나산악회를 따라 등산을 하면서여인의 부드러운 곡선처럼 펼쳐진 능선을 걸었다.어릴 적 장등은 기억에서 삭제된 채로.. 능선이 부드러운 여인의 맵시가 되는 동안은수없이 많은 세월이 지났으리라.셀 수 없이 많은 빗물과수많은 사람들의 발자국에제 몸을 내어 주었으리라. 나는 장등을 걸었고수많은 산자락을 밟았고산자락은 사람들의 발자국을 아
종기 배꼽 옆에 피부가 벌개지더니이내 종기가 되더군옷을 입을 때마다 가로부치며아프게 하더니 곪기 시작했어항생제 먹을 생각은 하지 않았고더 곪으면 짜낼 요량이었지 사나흘 지나니 누런 고름이 보이더라고알콜에 솜에 연고에 밴드를 준비하고아픔을 참아가며 새끼손톱 만하게 커진 종기를 짰어피고름이 꽤 나오더군아팠지, 아프다마다 살아가면서 아픈 일이 어디 한두 가지던가?아픔을 참아내는 수많은 공부를 해봤잖아.고름이 살 되던가?아픔을 견디다 짜내던가 도려내야 하지 않던가?잠깐은 참는 것보다 극심한 아픔이 오더라도 짜내며 살게도려내며 살게 세월 지
보살피고 어루만지는 일은 참 아름답습니다가꾸는 것은 더 행복합니다꽃이 아니라도 괜찮습니다작은 생명 하나 키워보세요나날이 변화하는 모습이 신비롭습니다날마다 민생은 파탄나고민주주의는 퇴보하고통일의 길은 멀어져도강물이 묵묵히 낮은 곳을 향해 흐르듯물질을 대하면 비우는 것을 꿈꾸고자연과 마주하면 겸손을 배우는 순간술 취한 멧돼지 한마리자유를 외치며 비탈길 내달립니다미국에 아첨하고 일본에 아부하며중국과 러시아를 적으로 돌려세워나라를 거덜내는 검찰독재 어떻게 부숴야할까고민하는 시간 마냥 괴로워도삶들은 평등과 평화를 기다리며 오
사랑 신께서 존재한다는 가정하에내가 신을 이해하지 못하면신께서도 나를 사랑하지 않을 것이다. 사람과 사람의 관계도 마찬가지다.내가 그 사람을 이해하지 못한다면그 사람도 나를 사랑하지 않을 것이다.이해할 수 없는 것을 사랑할 수는 없다. 이해한다는 것은온전히 그 사람을 알아 가는 과정이다.공유하는 시간은 서로를 이해하는 학습 과정이다.그 과정을 통하여 서로를 신뢰해야 한다. 인간이 관계를 만들어가는 초석은 믿음이기 때문이다.온전한 믿음 안에서만 이해와 사랑이 존재한다. 사랑은 관심을 먹고 자라는 나무이다.
아이와 분수 한여름아이와 분수는친구가 되지요. 분수가 하늘로 솟아오르면아이의 마음도 덩달아 오르고하늘로 뿜던 물줄기가 잠깐 쉬면아이들도 잠깐 쉬고 물줄기가 씩씩하게 소리를 내면아이들은 까르르 까르르아이들 발바닥을 분수가 간지르면이이들은 더욱 신나 소리 지르고 여름 한 철 분수는 아이들 동무여름 지나 분수가 쉬는 동안아이들은 또 그만큼 자라고...
비가(悲歌) 처연하게 내리는 빗줄기를 맞았습니다. 빗줄기는 맨살을 파고드는 칼날 같았습니다.귓가를 때리는 비가 나를 더욱 슬프게 합니다. '悲歌'는 이런 날에 들어야 제맛이지요.전축 위에서 돌아가는 늘어진 LP판 노래는 더더욱 슬프게 들립니다. 가슴을 도려내 보려 합니다.썩을 대로 썩었을 속내를 그여 보고 싶습니다.문드러진 그 가슴에는 당신이 남긴 자국도 남아있습니다. 모두 지난 일이라,잊으라, 잊어버려라 합디다만어찌 그리 쉽게 잊힐리야! 이슬비가 냉이 꽃씨에 오종종 매달립니다.냉이 씨앗이 하트모양인데 빗방울과 부조화로 어울립니다.
4부 염소 선생(2) 놔둡시다요, 걔네들 개판 오 분 전이라도잘 쓰잖아요 살아 있잖아요「구운몽」 속에 나오는양소유와 팔 선녀 그리고 구름,그건 이들이 속세에서 누린한바탕 꿈, 갖은 부귀영화를 상징하건만그러든 말든 어느 날 즤네들 열‘양팔구’를 만들곤그중 어리뻥뻥한 척한바탕 꿈인 구름이 가장 셌다제주도에서 올라온 구름은애초 공부랑은 담을 쌓았으며밥 먹듯 가출하고 담배 피고허구한 날 출석부로 얻어맞되근신 정학도 몇 개씩 먹되감성은 애렸는지라 놀아도시 하나만큼 기막히게 잘 썼더랬지쉬는 시간이면 양소유 등에 업고전 교실과 복도를 누비며두둥
기다림 때로는 안타깝고 더러는 힘들기도 합니다.간혹 설레고 행복하기도 합니다. 기다림에는 반드시 사람이나 사람으로 인한 상황이 있습니다.기다림에는 또한 물리적인 시간이 필요합니다.대상이 있기에 그 사람과의 관계가 만들어집니다. 조급함은 대상과의 관계를 잇지 못하게 합니다.조급함은 내가 살아왔던 끈을 놓거나 끊기게 합니다. 기다림의 지루한 시간에는 나를 되돌아보는 시간도 포함됩니다.내가 그 사람을 얼마나 내 안의 사람으로 여기며 살아왔는가를 성찰하는 시간입니다. 우리가 살아가는 세상은 얽히고설킨 관계의 연속입니다.기다리는 것 하나만으
꽃잎이 떨어진다고 슬퍼하지 말자떨어지는 것이 어디 꽃잎 뿐이랴너와 나의 가슴 속 응어리들도 절망 속을 헤메다견디고 또 견디다 결국은 떨어지나니세상은 버티는 사람들의 몫이 되고방향 잃은 정치 속에서 사대와 매국이 판치고연기 잘하는 사람들만 유능한 정치인이 되는 시절꽃봉오리로 맺지 못한 희망들이 어깨동무 하고 울 때선택적 수사가 칼춤을 추면진실과 정의가 댕겅댕겅 잘려나가고치미는 분노를 삭이고 또 삭이다가분신으로 항거하는 서글픈 꽃잎힘센 권력도 10년 버티기 힘들고아름다운 꽃도 10일 버티기 힘드나니꽃잎 떨어지는 나무
신록 모두 숨을 죽였어요.모두 죽은 줄만 알았었지요.죽음은 어둠에 갇혀있고어둠은 죽음을 늘 품고 있는 줄만 알았지요. 까맣게 죽은 줄만 알았던 가지에봄비가 내린 것은 얼마 되지 않은짧은 시간이었어요.아기가 손가락 오물짝거리듯가지 끝이 움직였어요. 세상에나!색깔이 연초록으로 변해갔어요.작은 몸짓이 이토록 세상을 바꿀 수 있다는 것은 기적이에요.나는 기적의 시작을 봤을 뿐이고요. 장엄하다는 말은 쓸 일이 많이 없잖아요.저는 잠깐 낮잠을 잤다고 생각했어요.어머나!그 짧은 시간에 세상이 바뀌었어요.베토벤 교향곡은 들리지 않았어요.어마어마한
산철쭉 어찌 이리도 곱단 말인가?그 많은 수줍음은 또 무슨 일인가?사알짝 건드리기만 해도 눈물을 떨굴 것 같은...
말의 온도 말에도 온도가 있습니다. 공기 중의 온도는 기온몸의 온도는 체온이라 합니다.말의 온도는 말온이 적당할 듯싶습니다. 위로가 필요한 사람에게 전하는 따뜻한 말은 그 사람의 인생을 바꿀 수 있습니다. 차가운 말 한마디가 어떤 이의 가슴에 꽂혀 평생을 원수로 살기도 합니다. 기왕이면 말의 온도를 높힐 필요가 있습니다. 시를 쓰며 '따뜻한' 이라는 낱말을 쓰니까 저의 손가락이 따뜻해지는 걸 느낍니다. 말이 따뜻해지려면 먼저 가슴의 온도를 높여야 합니다.가슴이 차가운 사람은 남을 이해하지 못합니다.잘못한 이는 본인인데 늘 무리에서
멈춰 있는 것 같지만 소리없이 흐르는 저 물길분노와 노여움 슬픔과 기쁨 행복과 불행수만의 감정을 녹여이리 엉키고 저리 설켜 모두 껴안고어~흑 어~흑 흐느끼며 흘러흘러흘러 세상 끝까지 가면평등과 평화의 안식은 그곳에 있을까네가 잘나봤자 얼마나 잘났느냐내가 못난들 얼마나 못났을까잘난 너와 못난 나도 함께 빠져 흘러그저 흘러가면 되는 것을못된 인간들아 거스르려 하지마라흐르는 대로 훌러 고요히 흘러바다에 닿으면 그 뿐산맥이 막아선다고 물길을 막을 수 있겠는가댐으로 막는다고 물길을 막을 수 있겠는가어떤 장애물도 저 물길을 막지
있다와 없다 나는 생각한다.고로 나는 존재한다.아무 생각 없이 고등핵교 윤리책에서 들은 이야기입니다. 맞다와 틀리다는 세상을 양분합니다.내가 옳으면 너는 옳지 않아야 합니다.인간 세상이 흑과 백으로 나뉩니다.하지만 세상은 그대로입니다.인간의 자로 세상을 본 까닭입니다. 인간사에서 일어나는 갈나무와 등나무의 생존 전략일 수 있습니다.내 모고치를 좀 더 가져와야 식솔들을 평안히 멕여 살리고내 어깨에 뽕을 조금 더 올릴 수 있는 기회이기도 합니다. 팡세는 사고를 깊게 했나 봅니다.철학을 했으니 밥 먹고 생각만 했을 법합니다.옳고 그름의
빗소리 나는 중력을 체험하고 있다. 아홉 시부터 비가 내린다는 예보를 믿었다.손에는 접이 우산이 들려있다.저녁나절에는 벚꽃잎이 바람에 날려 제멋대로 꽃비를 뿌리더니아홉 시 귀갓길엔 고맙고 고마운 봄비가 내린다. 우산을 쓰고 길을 걷다가빗소리가 고마워 우산을 거뒀다.빗방울이 머리에 닿을 때마다 고맙다고 말을 걸었다.봄철에 발생한 커다란 산불을 잠재워준 비님이 고마워서였다.빗소리가 참 감미롭다. 모든 떨어지는 것들에는 중력이 작용한다.내 탐욕도, 어리석은 마음도 중력에 의해 떨어졌으면 좋겠다.
로버트 브라우닝(Robert Browning)은 1812년 5월 7일 영국 런던 교외 캠버웰에서 태어나 1889년 12월 12일 이탈리아 베니스 아들 집에서 사망한다. 웨스트민스터 사원, 테니슨 묘지 옆에 묻힌다.고전문학을 즐겨 6천 권의 책을 모았던 부유한 은행가 아버지로부터 사색을, 음악가였던 어머니로부터 재능을 물려받아 다양한 편곡도 했다. 몇 군데 사립학교를 다녔으나 반감이 생겨 가정교사를 두어 천재 교육을 받았다.14살에 라틴어, 그리스어, 프랑스어, 이탈리아어에 능통했고 셸리, 바이런, 키츠를 읽었다. 셸리 추종자라 그를
4부 염소 선생(1) 나삼수를 했습니다만겨우 들어간 대학도시 쓴답시고술 먹고 놀며 어영부영한두 학년 다니다 그만 잘렸네나그래 다시 체력장에다 예비고사를 치곤딱히 갈 덴 없어라또 같은 대학 같은 과에다시금 들어갔습죠잔뜩 지쳐잔뜩 쳐져썩어 문드러진 시쓴답시고 나, 윤 머시기 물건도 아니었습니다괴물도 아니었습니다폐인도 못 됐습니다역사와 시대와 진실에한창 젊음에욕되지 않으려머리띠하고 꽃병 던지고그런 투사도 아니었습니다그러니 진정한 술꾼도 아니었습니다생각하면 부끄럽고 쑥스럽기이루 말할 수 없으니 그렇습니다그저 중간이나 가얐다학점이나 따고졸업
그냥 좋다 따뜻한 봄날에 내가 눈을 뜨고 세상을 볼 수 있어서 아침에 밝은 해가 환하게 웃어줘서 코끝에 묻어나는 바람이 가져오는 부드러운 냄새가 있어서 때가 되면 어김없이 꽃대를 올려 연보랏빛 미소로 반짝이는 제비꽃을 볼 수 있어서 상큼한 냉이랑 쌉싸롬한 쑥으로 콩가루 버무려 끓인 된장국을 맛볼 수 있어서 누가 뭐라 해도 가장 기분 좋은 것은 내 곁에 늘 네가 있어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