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가 나에게 베개를 이리 굴고 저리 굴리며 뒤척인다.댐배 한 대 하지?좋지.요즘 왜 잠을 못자나?몰라. 아니 알어.뭔데?억울해서 잠이 안 와.어지간한 것에 잘 참는 자네가 뭐시 그리 억울한가?한창 피어나던, 아니 피지도 못한 아이들의 영혼국가는 없었고 모든 것을 감추려고만 했던이천십사년에 만날 울던 기억이요즘 다시 또 그런 일이...영정사진도, 위패도 없는 분향소를나흘간 찾는 머저리 같은 놈에사과 한마디 없이 거짓과 책임회피만 하려는 놈들근조나 추모 글자가 없는 검은 리본을 달라고?니미럴, 테스형한테 말할 수도 없고...그래도 자야
불 잘 마른 나무는 듣기에도 맑은 소리를 내며 탄다.타닥 타다닥 마치 콩 볶는 소리 같기도 하다.타오르는 불꽃을 보면 영혼이 춤을 추고 있는듯 하기도 하고그 화려함에 불 속으로 뛰어들고 싶은 욕망이 일기도 한다. 어제 밤열 두시 뉴스 속보가 나왔다.이태원 골목에서 커다란 압사사고가 일어났고 사상자가 엄청나단다. 오늘 아침150명, 오후 153명이게 도대체 무슨일이 일어난 것이냐.분노에 일손이 잡히질 않는다.21세기를 살아가는 지구촌 선진국이라는 내 나라에서...마른 나무 타오르는 불길을 보며 목숨을 잃은 젊은 영혼들에게 슬픔에 겨운
낮달과 국향 뜨거운 여름 햇볕을 듬뿍 담았다가햇기 식으면 해 닮은 노란 꽃대를 올린다.가까이 다가가 향을 맡으면오래된 그리운 향이 난다.시리도록 푸른 하늘에낮달이 국향처럼 그윽하다. 어릴 적 넉넉찮은 집안 형편으로학업을 잇지 못하고 객지에 나가공장에 취직한 누나가 많이 보고 싶었다.매년 꽃대를 올리는 자그마한 감국을 보면그시절 그리던 누님이 떠오른다. 낮달은 애잔하게 보일 때도 있지만국향에 어우러지면아련한 그리움으로 보이기도 한다. 오늘 낮달과 국화를 만났으니참 호사스런 하루가 되었다.
구절초 하얀 날개가 동그란 모양으로노란 꽃들을 감싸고 있어요. 햐얀 날개는 노란 꽃에게벌이며 나비를 부르는 도우미 가꽃 중양절에 수줍은 꽃 활짝 피우는아홉 마디 구절초 어머니 사랑을 담고 있는구절초가 지면 가을도 간다는 꽃 깊어가는 가을날에어머니께서는 구절초 전채를 채취해 오셨고가마솥에 푹 과서 환을 지으셨지요. 구절초 환은 누나들에게만 먹게 하셨고나이 들어 알게 된 사실은그 환은 여자들에게 약효가 크다는 것을요. 그래서 꽃말이 어머니 사랑이 아닐까 생각이 듭니다.어머니가 생각납니다.
용각산 아프지 않은 사랑이 있을까? 누군가는 아파도 사랑하고누군가는 사랑하며 아프고... 당신께서는 기침의 속이 그리도 깊은데늘 곰방대를 잡으셨다.어머니는 늘 성화셨고 예순이 훌쩍 넘긴 나도기침을 하면서 권련을 들고 있다.평행이론을 말하는 것이 아니다.나는 감기때문에 일시적으로 기침을 한다. 몸에 좋지 않은 담배는 아버지 평생의 사랑이셨다.객지에 나간 큰 누나는 용각산을 끊기지 않게 뒤를 댔다.깊은 기침에도 당신의 담배연기는 피어올랐다.아마도 기침과 담배는 당신의 흔적이었을 것이다. 사람들은 사랑하며 아파하고아파하면서도 어쩔 수 없
낙엽 2 스스로 교만해지지 않기란 참 어려운 일이다.스스로 제 한 몸 비우기란 또한 쉽지 않은 일이다.아무것도 아닌 양 바람 부는 대로 뒹구는 일은 더욱 어려운 일이다.비 오면 비 맞고 밟으면 밟히는 너는 도대체 누구란 말이냐?이 모든 것을 너는 아무렇지도 않게 해 낸단 말이냐?
낙엽 1 운명이다.애당초 떨어지게 되어 있었다.쓸쓸함이 떨어지고 고독이 밟힌다.나는 낙엽을 밟고 있다. 가을 떨어진 자리에는또 다른 운명이 기다린다.낙엽을 밟고 있는 나는겨울로 가는 시간에몸을 맡길 뿐이다. 늘 일어나는 일이지만깊어 가는 가을밤에는교교히 내리는 달빛이 제격이다.나는 달빛 아래에서가을에서 겨울로 걸어가고 있다.
가을 색 가을은 바람으로 다가온다.습기 잔뜩 머금은 고온의 바람이어느새 물기를 죄다 말려 버리고온도를 낮춘 채 그것도 조용히 불어 온다. 가을은 풍요로 다가온다.오곡백과가 익어가고토실토실 과실에 살이 오른다.바라보는 것만으로도 넉넉함이다. 가을은 볕으로 다가온다.우중충했던 햇살이 습기 떨구고따끈한 볕으로 내리쬔다.따끈한 볕 줄기는 가을 색을 만든다. 가을은 색으로 다가온다.빛 고운 한복의 파스텔톤 색 같은코스모스가 바람에 한들거리고만산엔 황엽과 홍엽이 수 놓는다. 가을은 추억을 적시는 계절이다.햇살에 눈 부신 노오란 은행잎처럼아름다
능이 냄새는 추억이다. 세상의 내가 경험한 모든 냄새는내 삶의 궤적과 함께한다. 하나뿐인 여동생이오래비 먹으라고 능이랑 송이 몇 송이를 보내왔다.그 귀한 것을... 능이 향이 그윽하다.코를 한번 벌름거리면아버지 냄새가 난다.퀘퀘하면서도 정겨운 그리움 또 한 번 벌름거리면어릴 적 초가집 윗목에 있는네모난 궤짝 냄새가 난다.기억할 수 없이 오래된엄마 손때 묻은엄마 품안의 젖 냄새 같은 아련함 세상을 살아가는 것은그리움에 젖은 냄새를 맡는 일이다.그 안에 네가 있고 내가 있다. 냄새는 추억으로 만드는 역사다.
민초 별 볼 일 없을 것 같지만대단한 아무것도 아닌 것 같은 사람이지만아무것인 훅하면 금방 날아갈 것 같지만질긴 함부로 밟으면 사라질 것 같지만되살아 나는 아무 말이나 해도 괜찮을 것 같지만절대 조심해야 하는 이 사람들이야말로역사를 만들어 가는진실로 두려워해야 하는개××하면 안되는 민초는 그런 분들입니다.
가을 하늘 유난히 푸르른 가을 하늘을 봅니다.해님이 남쪽에 있으면 북쪽 하늘을 보세요.북녘 하늘이 더욱 푸르러 보입니다.그쪽 사람들도 이 푸른 하늘을 보고 있겠지요. 유난히 푸르른 가을 하늘가에 유난히 하얀 구름이 흐릅니다.구름 속에는 동화 속 이야기가 가득 할 것 같습니다.하얀 구름을 타면 저쪽 사람을 만날 수 있을까요? 바람이 불고 구름이 흐르듯 시간도 흐릅니다.유난히 푸르렀던 하늘이유난히 하얗던 구름이유난히 붉은 빛을 띱니다.황혼이 펼쳐진 하늘에 마음을 담아봅니다.그토록 그리워한 긴 시간이 담긴 노을에편지 몇 자 써봅니다. 우
우리 말 오순도순의좋게 서로 이야기하거나 지내는 모양을 나타내는 말너랑 단둘이 오순도순 살고 싶어. 도란도란나직한 목소리로 서로 정답게 이야기를 주고받는 소리를 나타내는 말오순도순 살면서 서로의 말은 도란도란 이야기하면 좋겠어. 소곤소곤남이 알아듣지 못하도록 작은 목소리로 조용히 이야기하는 소리남들이 들으면 안되는 말은 소곤소곤 이야기하자. 소복소복담기거나 쌓여 있는 것들이 볼록하게 많은 모양을 나타내는 말그렇게 지낸다면 우리의 사랑도 소복소복 쌓이겠지. 이 얼마나 아름답고 위대한 말인가!
욕심 당신이 떠난 자리욕실에 갔습니다.칫솔통에 칫솔이 두 개 꽂혀 있더군요 당신이 아니었으면칫솔통에 두 개의 칫솔이 꽂힐 수 있었을까요? 혼자 먹는 끼니는목숨을 유지하려는 몸짓일진데당신이 아니었으면퍼덕이는 날갯짓 식사만 했겠지요.누군가를 기다리며누군가를 위해 준비하는 요리는마냥 행복입니다. 당신이 아니었다면구름처럼 몽실몽실한그리운 그림을 그릴 수 있었을까요? 나는 오늘도 텅 빈 하늘외로움을 못 이겨 쏟아지는 빗줄기 속에서나를 향한 당신의 사랑을 찾는답니다. 이것이 저의 지나친 제 욕심일까요?
물난리 하늘도 무심하시지어떻게 그런 인간을 지도자로 내셨을까?나랏님이 덕이 없어서 큰 비가 내렸을까? 사람과 사람이 만나고 소통하는데가장 필요한 것이 공감이다.아무렇지도 않게 내뱉는 말들은칼보다 예리하게 다른 사람을 찌른다. 반지하 방에 살다가수재로 목숨을 잃은 신림동에서어떻게 구조가 안됐냐고?세월호 7시간만에 나타나서구명조끼 안 입었어요?랑무엇이 다른가?서초동 언덕에 지어진 아크로비스타 아파트도 침수되었다고? 말도 아까워 말이 안나온다.서민을 모르고손에 흙 한 번 묻혀보지 않고자신의 영달을 위해9년 동안 법공부만 하던애비도 한일수
던져! 마음이 아프다 하니마음을 내놓으라 하신다. 아픔을 이겨내는 방법은아픔에서 멀어져야 한다. 무엇인가 내게서 멀어지게 하는 길은내가 가지고 있는 것을 던져야 한다. 고민, 걱정, 아픔, 쓰라림, 번뇌달콤함, 사랑, 아지랑이처럼 피어오르는 욕망까지도던질 수 있겠는가? 던지는 연습을 하자.나는 그 자리에 늘 있을 뿐이다.내게 오는 모든 것을 던질 수 있다면원초의 나는 행복하리라. 참 어려운 일이다.
상사화 그리움이 지나치면 만나지 못하나 보다. 서로를 애타도록 그리워하다죽음에 이른 자리에 꽃이 피었다는 이야기봄녁에 잎이 올라오고 잎 진 자리에꽃대를 올려 여름을 알리는 꽃 사랑이 지나치면 안되는 것일까?그리움도 지나치면 목숨까지 잃는 것일까?그립다고 죽기까지 한다면세월가면 잊힌다는 말은 거짓인가? 논어에 과유불급이라는 말이 있다.무엇이든 적당히 하라는 말은 아닐 것이다.공자는 그래서 중용을 말씀하셨나 보다. 그래도 사랑하고 그래도 그리워하자.그리움과 사랑이 없으면 인생이 재미없지 않겠나.
빗소리 누구는 자박자박 이랍디다.누구는 빈대떡 지지는 소리랍디다.빗소리는 저주파라 마음을 가라앉힌다는 말도 합디다. 비가 내리는 어둠 속에 있습니다.사위가 어두운 곳에서는 누구나 겸손해질 것 같습니다. 골짜기 물소리가 조금씩 크게 들립니다.스스로 마음을 내려놓는 연습을 해봅니다. 어둠 안에 갇히는 행운은 그리 흔한 경험이 아닙니다.혹여 날이 맑았으면 별을 보았을 수 있을 거라는쓸데없는 바램도 해봅니다. 비가 내리면 마음이 내려앉아 차분해지는 건빗소리가 내 마음에 내려앉기 때문일 것입니다.나팔꽃, 유홍초가 꽃눈을 닫았지만당신을 향한
허무 빌 허, 없을 무아무것도 존재하지 않는 빈 공간빈 곳이라면 공간이 존재하지만죽음은 공간조차 존재하지 않는 곳이지요. 오늘 오랜 친구 상을 당해 문상을 했습니다.여럿 친구들이 왔다지만 그 무슨 소용이랍니까?소용없는 일이지요.그래도 먼 길 떠나는 녀석친구들 배웅이 외로움을 덜 수 있을런지요. 언젠가는 떠나는 것이세상 이치라지만그놈의 언제가 언제인지 모를 아쉬움이 남습니다.그 언제를 위해 짧은 순간도 나 아닌 이에게 최선을 다해야 한다는 생각입니다. 죽음은 허무입니다.움도 싹도 나지 않는 곳이지요.시공을 초월한 허무의 세상이랍니다.
향연 가을의 문턱이 멀지 않았나 봅니다.아직 낮에는 햇살이 뜨겁습니다만해만 너머가면 찬바람이 솔솔 붑니다. 아직은 뜨거운 한낮에 숲에는 잔치가 벌어집니다.어떤 놈은 맴맴맴또 다른 놈은 찌르르르 찌찌르그 옆 녀석은 오앵오앵 왱왱왱소리진치가 벌어집니다.멀어지는 여름을 붙잡으려 힘차게 웁니다. 찬바람이 시작되는 저녁입니다.그녀석들이 절기 오가는 것도 아는가 봅니다.말복을 기다렸다는 듯이 밤의 잔치를 엽니다.어떤 놈은 귀뚜루루 뚜루루또 다른 놈은 뚤뚤뚤 뚜루루축대 밑에 다른 녀석은 갸갸갸 을을을? 가을?가을이 어서 오라 자기들 만의 잔치가
노을 무슨 사연이 그리 많은가?온통 한스런 삶을 살아서일까?마지막 불꽃을 천지사방에 토해내고그렇게 잠들어가는가? 너의 하루는 나의 일생가슴 속에 남긴 말 못할 곡절일랑바닷바람에 훌훌 털어 봄이 어떠한가?붉은 노을에 실어 보냄이 어떠한가? 생과 사는 종이 한 장보다 얇은 간극살았다 산 게 아니요죽었다 죽은 게 아님을이 한밤 지나면 태양은 다시 떠오르지 않던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