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 무술도장 머리에 흰 두건을 쓰고 검은색 장삼을 걸친 을두미가 정자 그늘에서 깃털 부채를 든 채 서 있었다. 더운 날씨가 아니었으므로 그는 그냥 멋으로 부채를 지니고 있는 모양이었다. 그는 가끔 부채를 펼쳤다 접었다 하면서 숲속 공터에서 무술 훈련을 하는 장정들을 바라보고 있었다.허리에 검은 띠를 두른 흰옷 입은 장정들이 질서정연한 가운데 마치 백조들의 군무처럼 춤을 연상시키는 무술 동작을 보여주었다. 연화와 추수가 앞에 나와 무술 시범을 보이면 장정들은 그 동작에 따라 움직였다.그때 왕자 이련이 무술도장의 정자를 향해 걸어왔다
불교를 전파한 최초의 인도통일 군주 알렉산드로스는 갠지스강을 눈앞에 두고 휘하 장수들의 말대로 인도 원정을 도중에 포기했지만, 찬드라굽타 마우리아로 하여금 인도 최초의 제국을 건설하는 데 촉매제 역할을 했다. 당시 젊은 모험가였던 찬드라굽타는 알렉산드로스를 만난 적이 있었고, 그의 카리스마 넘치는 강력한 리더십에서 남다른 감동을 받았다.후에 찬드라굽타는 펀자브 지역에서 그리스 군대를 물리치기 위해 반란군을 이끌었으며, 알렉산드로스의 뒤를 이어 헬라스 제국 동부 지역을 다스리던 셀레우코스의 군대를 크게
2. 굶주린 모정 천제를 끝낸 대왕 사유는 일단 동부욕살 하대곤에 대한 의심을 접어두기로 했다. 그의 아들 해평의 무술 실력을 높이 평가해, 앞으로 고구려를 이끌어갈 장재로 키우고 싶은 욕심이 앞섰다. 더구나 말을 1천 두 이상 기르는 종재 하대용과 여러 차례 담화를 주고받으면서, 그가 말을 기르는 것이 앞으로 고구려 군사력을 키우는데 보탬이 되게 하겠다는 목적을 갖고 있다는 말을 듣고 적이 안심이 되기도 했다.군사들을 이끌고 하가촌을 떠나 다시 국내성으로 가면서 대왕은 하대용에게 다음과 같이 당부했다.“하 대인, 왕자가 이곳에 머
1. 불안의 씨앗 숲속 별채에서 은은한 불빛이 새어나오고 있었다. 어디선가 뻐꾸기가 울었다. 아미(蛾眉) 같은 초승달이 소나무 가지 끝에 걸려 있었다. 나무 그늘의 어둠 속에서 한 사내가 별채의 들창을 주시하고 있었다. 그는 호흡을 안으로 삼켰다.별채는 환하게 황촉불이 켜져 있었고, 그 문 앞에 근위병들이 경계를 서고 있었다. 봄바람이 소나무 가지를 저울질할 때마다 초승달이 수줍은 듯 얼굴을 갸웃거렸다.잠시 후 별채의 문이 열리며 호롱불을 앞세운 여인이 나타났다. 소나무 그늘에 숨은 사내는 그 걸음걸이를 따라 시선을 움직였다. 그는
■ 힌두쿠시를 넘어서리더를 망치는 병, ‘자만과 과욕’ 페르시아를 점령한 이후 알렉산스로스는 점차 동양적 전제군주 통치에 맛을 들였다. 다리우스 3세를 죽인 박트리아 기병대장 베소스가 스스로 페르시아 왕을 칭하자, 알렉산드로스는 휘하 장수 프톨레마이오스를 보내 그를 추격토록 하였다. 그러자 베소스는 박트리아에서 피신해 옥수스강을 건너 소그디아나로 도망쳤으나 결국 추격하던 마케도니아 군대의 포로가 되고 말았다. 다리우스 3세의 장례식을 성대하게 치러준 알렉산드로스는, 프톨레마이오스가 생포해온 베소스를 페르시아의 관례에 따라 극형에 처
6. 교시(郊豕) 대왕 사유는 태백산 천지의 폭포 밑에서 유숙하며 목욕재계부터 했다. 천제에 참여하는 제주(祭主)인 대왕을 비롯하여 축관(祝官)·헌관(獻官)·집사(執事) 등 제관들은 모두 3일 동안 목욕재계를 통해 몸과 마음을 청결하게 하는 데 지극정성을 다하였다.물은 칼끝으로 찌르는 듯 차가웠다. 몸이 물을 거부했지만, 마음은 칼끝 같은 아픔도 인내로 받아들였다. 목욕재계를 하는 제관들은 모두 그저 묵묵히 웅덩이에 들어가 기도하는 마음으로 속세의 때를 벗겨냈다.마침내 삼월 삼짇날, 천제를 지내기 위해 대왕을 위시한 제관들과 전렵
■ 페르시아 원정‘아시아를 지배하는 왕’을 꿈꾸다 그리스 도시국가인 마케도니아의 알렉산드로스가 왕자(王者)의 재목으로 떠오른 것은 12세 때 부케팔로스라는 명마를 만나면서부터였다. 부왕 필리포스 2세는 테살리아의 말 장수 필로니쿠스에게 13탤런트를 주고 ‘소 대가리’라는 뜻을 가진 부케팔로스를 샀다. 숯 덩어리처럼 검은 말이었는데, 배에 소 대가리 모양의 흰 무늬가 있어 그런 이름이 붙은 것이었다. 당시 1탤런트는 육체노동자 20일치의 임금에 해당하므로 꽤 비싼 값에 구입했는데, 성질이 워낙 사나워 누구도 말 등에 올라타는 사람이
5. 멧돼지 사냥 태백산의 눈 녹은 물이 흘러내리면서 땅은 축축한 습기를 머금었고, 하늘에 그물을 친 듯한 나뭇가지마다 연초록의 이파리들이 피어나고 있었다. 이미 녹음 짙은 숲속에서는 새들이 잔치라도 벌이는 듯 짹짹거리며 암수끼리 다투는 소리들로 분주했다. 그 소리는 막 기지개를 켜고 깨어나는 숲의 수런거림 같았다. 그런 가운데 잎보다 먼저 피어난 봄꽃들로 인하여 숲은 나날이 화려하게 변신을 거듭하고 있었다.그런데 갑자기 태백산 기슭이 시끄러워졌다. 대왕 사유가 이끄는 고구려 군사들과 태백산 주변에 흩어져 사는 말갈족들이 참여한 전
4. 마상훈련 밤새워 기마대 1백 기를 이끌고 하가촌으로 달려간 하대곤은, 다음 날 이른 아침 종제 하대용의 저택에 당도했다. 동부의 기마병들은 일당백의 무술을 자랑하고 있었으며, 이 부대를 이끄는 젊은 장수는 해평이었다.“폐하! 동부욕살 하대곤이옵니다.”대문 안으로 들어서기 바쁘게 대왕 사유 앞에 나타난 하대곤은 덥석 무릎부터 꿇었다.“아니, 하 장군! 이른 아침부터 웬일이오?”대왕은 놀란 표정으로 물었다. 그도 그럴 것이 일부러 동부에는 자신의 전렵 출행을 알리지 않았던 것이다.“어제 저녁 무렵 전령병으로부터 보고를 받고 밤새워
3. 왕제 무(武) 날이 밝았다. 언제 폭우를 퍼부었느냐 싶게 하늘은 맑게 개어 있었다. 하대용은 일찌감치 일어나 수하 중에서 무술도장의 사범으로 있는 말 잘 타는 추수(秋手)를 불렀다. 상단의 장정들에게 무술을 가르치는 도장이 하가촌에서 조금 떨어진 압록강변에 있었는데, 간밤에 호자무를 시켜 몰래 그를 자택으로 불렀던 것이다. “너, 급히 책성에 좀 다녀와야겠다. 촌각을 다투는 일이니 쉬지 않고 달려야 한다. 될 수 있으면 아무도 눈치 채지 못하게 뒷문으로 빠져나가거라.”하대용은 새벽에 일어나 하대곤에게 쓴 서찰 하나를 추수에게
1장/천제(天祭) 갑자기 사방이 캄캄해졌다. 하늘에 구멍이라도 난 듯 세찬 빗줄기가 쏟아져 내리자, 뜰로 나온 하대용은 추녀 끝으로 들이치는 빗방울을 맞으면서 고개를 들어 하늘을 올려다보았다. 간밤의 꿈이 선명하게 떠올랐다. 황룡과 흑룡이 서로 뒤엉켜 싸우면서 먹장구름을 뚫고 하늘로 오르고 있었다. 그는 뇌성벽력이 치며 하늘이 갈라지고 용들의 꼬리가 구름 속으로 사라지는 것을 보면서 꿈에서 깨어났다.“심상찮은 날씨로군!”하대용은 양 소매 속에 손을 넣어 팔짱을 끼면서 부르르 진저리를 쳤다.그때 비를 흠뻑 뒤집어쓴 사내가 급히 대문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