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원후 440년 경 편찬된 후한서는 [기원전 200년 경 ‘위만’이 ‘원래 조선’에서 쿠데타를 일으켜 조선왕이 되고, ‘원래 조선왕 준’은 ‘코리아 韓(한)’ 지역으로 가 馬韓(마한)= 삼한 = 코리아辰(진) 나라의 왕이 되었다. ‘원래 조선왕 준’의 후손이 끊기어 원래 馬韓(마한) 종족 사람이 ‘코리아 韓(한)’의 왕이 되었다. 수도는 목지국이다.] 라고 기록하고 있다.馬韓在西, 辰韓在東, 弁辰在辰韓之南, (중략) 皆 古之 辰國也. 약 3천년 전인 기원전 1,050년 경 殷(은)나라 왕족 ‘기자’가 ‘조선’으로 간 것으로 사마천
14. 한국사데이터베이스(국사편찬위원회). 중국정사조선전 > 新唐書(1) > 東夷列傳 > 新羅 > 新羅, 弁韓苗裔也. 에 나오는 주 397이다.https://db.history.go.kr/item/compareViewer.do?levelId=jo_015_0020_0030_0010 1) 아래 註 397 新羅 弁韓苗裔也 는 굉장히 어렵게 쓰고 있다. 쉽게 써 보자. ‘신라’의 기원에 대하여 세 가지 다른 견해가 있다. ① 코리아 韓(한) 중 하나인 辰韓(진한)이 ‘신라’ [양서梁書· 남사南史· 북사北史· 한원翰苑 등] ② 기원후 250
한국시간 8월 4일 금요일 밤 11시경 로이터, BBC 등 외신은 일제히 약 4,000명 이상의 영국 스카우트 참가자들이 극심한 더위에 시달려 한국 전라북도 새만금 간척지에서 열리고 있는 세계 스카우트 잼버리 국제 행사장을 떠나 서울로 이동할 예정이라고 보도했다. 한국은 1991년 17회 세계 잼버리 대회를 강원도 고성군에서 처음 개최한 바 있고, 2023년 25회 세계 잼버리 대회가 전라북도 새만금에서 8월 1일부터 8월 12일까지 열리고 있다. 8월 2일 밤 윤석열 대통령과 김건희 여사는 스카우트 복장을 하고 행사장에 참석하였다
1. 들어가는 말1) 국사편찬위원회가 세금으로 운영하는 ‘한국사데이터베이스’ ‘중국정사조선전’은 사기·한서·후한서·삼국지·진서·송서·남제서·양서·위서·주서·남사·북사·수서·구당서·신당서·구오대사·신오대사... 로 이어지면서 코리아와 관련된 ‘동이열전’을 원문과 번역문, 주석을 게시하고 있다. 2) 필자는 이미 ‘중국정사조선전’ 에 나오는 번역이나 해석이 친일·부일·식민사학에 근거하고, 사대주의에 찌들어 차이나에 조공하는 코리아로만 해석하여 틀린 부분이 매우 많다는 것을 지적해 왔다. 3) 이제 ‘중국정사조선전’을 ‘한국사데이터베이스
1. 삼국지 위서 韓(한)조에 나오는 ‘위략’(이라는 역사책)의 ‘조선’에 대한 글을 계속 살펴 보자. “ 이후로 왜와 韓(한)은 비로소 대방에 속했다.” (이하 ‘200년 사건’이라 한다)桓·靈之末, 韓·濊 彊盛, 郡縣不能制, 民多流入 韓國. 建安中, 公孫康 分 屯有縣 以南荒地 爲 帶方郡, 遣 公孫模·張敞等 收集 遺民, 興兵 伐 韓·濊, 舊民 稍 出, 是後 倭·韓 遂屬 帶方. 2. 삼국지 위서 韓(한)조의 해당 부분 요약이다. 대방군은 한서지리지에서는 낙랑군 대방현이었다. ‘코리아 한韓’은 대방의 남쪽에 있는데, 동쪽과 서쪽은 海
1. 삼국지 魏(위)서 동이전 韓(한)조에 의하면, 기원전 200년 경 조선왕 준은 (위)만의 쿠데타로 쫓겨나 海(해) 지역에 있던 韓(한) 으로 들어갔다. 1) 將 其 左右宮人 走 入 海,居 韓地,自號 韓王。준왕은 그의 중요 대신들을 거느리고 도망하여 海해 지역으로 들어갔다. 코리아 한韓의 지역에 거주하면서 스스로 코리아 한왕韓王이라 칭하였다. 2) 漢時 屬 樂浪郡,四時朝謁。코리아 한韓은 차이나 한漢나라 때에는 낙랑군에 소속되어 사시사철 조공했다. 2. 위 기록에서 다음 사항을 알 수 있다. ① 조선은 언제 시작되었는지 기록이 없
1. ‘사마천’ 의 ‘사기 흉노열전’은 [秦진나라가 쌓은 장성은 임조에서 요동까지 만여리] 라고 했다. 起 臨洮 至 遼東 萬餘里。 1) 임조(臨洮)는 지금의 감숙성[甘肅省] 정서시[定西市] 민현[岷縣]]으로 비정하고 있다. 장성의 동쪽 끝인 요동을 지금의 천진시 서북쪽 진황도시라고 양보하고, 십리를 5㎞ 라고 늘려 주고, 직선이 아닌 구불구불 곡선으로 쌓아도, 임조에서 진황도시까지는 만여리의 절반인 5천여리다. 임조(臨洮) [지금의 간쑤성[甘肅省] 딩시시[定西市] 민현[岷縣]] 에서 유림시榆林市까지는 도로 기준으로 약 800㎞, 유
1. 지난 글의 계속이다. 삼국지 위서에 나오는 ‘위략’을 요약하면 다음과 같다. 1) 기원전 300년 경 서쪽 영토 약 1천㎞를 빼앗긴 ‘조선’과 빼앗은 ‘연나라’는 ‘만 번한滿 番汗’지역을 국경으로 대치했다. 2) 기원전 220년 경 ‘연나라’를 멸한 ‘진秦나라’가 ‘임조(臨洮도,조,요)’에서 ‘요동’까지 장성을 쌓았다. ‘만 번한’은 요동 지역에 있다. 3) 진秦나라는 ‘침바르기’로 ‘요동군’을 설치했다고 기록이 나온다. 조선이 망하기 전이다. 2. 원문과 번역을 보고 연燕나라와 조선의 경계인 ‘만번한滿番汗’을 추적해 보자.
1. 삼국지 위魏서 동이전 한조 =‘코리아 한韓 문단’ 에 나오는 ‘魏略(위략)’이라는 역사책 부분을 살펴보자. (1) ‘위략’의 문장을 줄이면 다음과 같다. 충격적이다.[ 기원전 200년 경 조선왕 준이 위만에게 왕을 빼앗기고 ‘海(해) 지역’에 속하는 코리아 韓(한) 지역에 들어가서 코리아 韓(한)나라 왕이 되었다. 코리아 韓(한)은 차이나 漢(한)나라 시대에 낙랑군에 속했다. ‘海(해) 지역’ 역시 낙랑군에 속하는 것으로 추정된다.] ‘반고’의 ‘漢書(한서)’는 우거왕의 (고)조선을 차이나 漢(한)이 정복하고 낙랑·진번·임둔·
1. 후한서 동이열전 韓(한)조에 나오는 낙랑군 염사읍(현), 삼국지 위서 동이전 韓韓(한)조가 ‘위략’이라는 역사서에서 인용한 이야기. “ 진한의 우거수右渠帥 ‘염사 치 廉斯 鑡’ 가 낙랑군으로 귀화했다. ” 2. 마한의 ‘염사 지역’이 낙랑군의 ‘염사 읍(현)’이 되었다. ‘마한의 일부= 낙랑의 일부’ 라는 말이 성립하는 것이다. 후한서 해당 부분 이다. 漢(한)나라 건무 20년( 기원후 44년, 백제 다루왕 多婁(누, 루, 리)王 17년) 에 마한韓의 염사廉斯사람인 소마시蘇馬諟 등이 낙랑樂浪에 와서 공물을 바쳤다. 漢(한)나라
1. 후한서 한韓조 끝부분을 최대한 한국사데이터베이스의 번역을 존중하여 필자 입장에서 의역하여 위치 비정에 중요한 부분을 게시하면 다음과 같다. 1) 조선왕 준朝鮮王 準이 위만衛滿 (위만조선의 그 ‘위만’이다) 에게 패하여, 자신의 남은 무리 수천명을 거느리고 발해군 (勃海郡. 漢(한)나라 103개 郡(군)중 하나이다)지역으로 도망했다. [당시 발해군勃海郡은 이름만 郡(군)이지 漢(한)나라가 실제 지배를 하지 못하던 곳이다. ] 2) 조선왕 준은 발해군 지역에 있던 마한을 공격하여 쳐부수고 스스로 마한의 왕 韓王이 되었다. 조선의
1. ‘삼국지 동이열전 한조’와 ‘후한서 동이열전 한조’ 에 廉斯 염사 가 같이 나온다. 삼국지와 후한서 두 책에 같이 나오는 기사가 많다. 삼국지가 285년에 편찬되었지만 600년 경 배구(557~627)가 증보하였고, 후한서는 440년 경 편찬된 것이다. 좋은 말로 ‘서로 참조’하였고, 서로 베낀 부분이 많을 수 밖에 없다. 1) [삼국지 위서 동이전 한조]에 염사廉斯 鑡착이 나온다. [후한서(後漢書) 동이열전(東夷列傳) 한(韓)조]에 염사인廉斯人 蘇馬諟소마제 가 나온다. 후한 시절에 郡(군) 밑에 邑(읍)이 있었다. ‘蘇馬諟소
1. 지난 호에 계속되는 글이다. 차이나 사서에 나온 소위 ‘동이’ 열전을 국사편찬위원회 한국사데이터베이스에 따라 살펴 보자 차이나 원문에는 ‘동이’에 속하는 것으로 기록되어 있는데, 한국사데이터베이스가 번역·게시하면서 올린 ‘동이’ 전에는 기록이 없는 경우(대부분 왜, 일본 관련 기록이다)와 해석을 ‘제멋대로’ 하면서 해석하지 않거나 틀리게 해석한 부분을 지적하고자 한다. 2. 기원후 285년 경 ‘진수’가 편찬한 삼국지에 비로소 ‘오환선비동이전’이라는 이름으로 오환·선비, 부여(夫餘)고구려(高句麗)동옥저(東沃沮)읍루(挹婁)예(濊
1. 일식으로 본 고구려·백제·신라의 서울1) 2000년 당시 서울대 천문학과 교수 박창범은 일식 최적 관측지로 삼국의 수도를 추정했다. 그가 제시한 지도를 보면 고구려는 바이칼호 동남쪽 지금의 부리야트 공화국과 내몽고 후룬베이얼시 (편의상 ‘부리야트 국 동남’이라 한다), 백제는 지금의 차이나 북경시·천진시 인근, 신라는 지금의 차이나 양자강 중류 지역 장사시·중경시 인근인 것으로 보인다. (“ 현존하는 최고의 역사서 800년논쟁 삼국사기의 진실은” [역사실험] KBS 2000.11.18. 방송 KBS 실험실 https://www
1. 海(해) 는 그때 그때 따라 뜻이 다르다. 그래서 “모른다” 의 ‘X’ 다. 海(해) 는 물을 가리킬 때도 있고 땅을 가리킬 때도 있다. 현대에도 차이나에는 감숙성 청해靑海 호수, 운남성云南省 대리大理의 이해(洱海, 얼하이) 호수 등이 호수가 아니라 바다 해海를 쓰고 있다. 한서지리지에는 103개 군국중 발해군勃海郡, 북해군北海郡, 동해군東海郡 3개 군이 바다 해海를 쓰고 있다. 그 군에 발해, 북해, 동해 가 있었는지 증명하기 쉽지 않다. 다만 우리가 알고 있기에 바다인지 황하인지 헷갈리는 渤海발해의 발渤 은 발해군勃海郡의
1. 들어가는 말1) 지난 글에서, [낙랑군이 있었다면], 요동군보다 서쪽에 있었을 것이라는 사실을 알게 되었다. 요동과 요서 글자에 집착하여 보면 ‘요’라는 지역이 있고 ‘요서’는 ‘요’의 서쪽에 있어야 한다. 한서지리지의 요서군은 낙랑군이거나 (요서군= 낙랑군), 요동군의 서쪽에 있는 낙랑군이, 요서군보다 북쪽이든 남쪽이든, 요서군과 같이 요동군의 서쪽에서 북남으로 위치해야 한다. 2) 요서군의 현이름이다. 遼西郡,戶七萬二千六百五十四,口三十五萬二千三百二十五。縣十四:且慮,海陽,新安平,柳城,令支,肥如,賓從,交黎,陽樂,狐蘇,徒河,文成
1. 들어가는 말1) 차이나 역사책의 공식적인 시작은 사마천의 ‘사기’다. 漢字(한자)를 통하여 ‘사기’의 주무대를 찾을 수 있다. 비밀코드인 셈이다. 어떤 글자는 발음으로 표시하거나 그 씨족 · 부족 이 거주하던 곳, 장의 이름 혹은 성씨, 근처의 큰 산이나 강 등 표시하기 쉬운 자연물 등을 한 글자로 나타낸다. 글자의 왼쪽에 삼수氵를 붙이면 근처의 江(강)이 되고, 글자의 오른쪽에 우부방阝(邑)을 붙이면 마을이 되어 씨족 · 부족의 고향이 된다. (2023년 3월 24일 필자가 쓴 “ 史記(사기)조선열전·漢書地理志(한서지리지)
유튜버 한자해례 (최규화)가 주목 받고 있다. 구독자는 3천3백여명에 불과하지만 한자해례의 전문성과 독창성으로 한자와 한민족 고대사에 관심 있는 분들에게는 매우 유명하다. 6월 10일 점심시간 12시 경에 업로드한 “제8강 겨레, 갈트, 케레이트... 族(겨레 족), 겨레의 새, 봉황~”는 한자해례 최규화의 전문성과 독창성을 더욱 돋보이게 하였다.https://www.youtube.com/watch?v=Jbe0fRmI1K8 사실 많은 사람들이 고구려 역사에서 알게 된 태양속의 새 삼족오가 다리 세 개 달린 ‘까마귀’라는 사실에 의문
먼저 필자의 고유한 이론을 옮겨 쓰고 싶은 분은 반드시 필자의 견해를 인용한 곳 (미디어피아 기사 작성연월일, 기사 제목, 필자 이원환)을 반드시 표시해 주기를 바랍니다. 침해자 자신이 ‘처음 발견했거나 고유한 착상인 것처럼 표현한 것’을 필자가 발견하면 적절한 법적 조치를 취할 예정입니다. 1) 사기 조선열전 “ ‘위 4군’은 변조되었다.” 등 기존 국사편찬위 해석과 필자가 다르게 해석하는 부분2) (위)만이 처음 거주한 ‘상하장’ 지역을 최초로 차이나 산서성에서 추적하고 있는 부분3) 한4군은 없으며, 있었다 해도 지금의 북경
1. 고조선 차이나 황하 유역설은 그 자리에 기원전 11세기부터 기원전 3세기까지 주나라, 춘추5패, 전국7웅이 있었다는 선입견 때문에 지지를 못 받고 있는 것이 현실이다. 한나라가 (위)만 조선을 멸하고 5제후국을 세운 ‘사기 조선열전’의 무대가 황하 유역임이 드러난 이상, ‘조선’이 있어야 할 자리에 있었던 것으로 차이나 역사가와 코리아의 역사가가 지목한 위魏나라, 조趙나라를 살펴보아야 한다. 사마천의 ‘사기’는 어느 나라의 역사를 그냥 쓴 경우는 그의 입장에서 외국 오랑캐 (만이)들이다. 조선열전, 흉노열전이다. 사마천이 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