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침 그믐달 윤 한 로가시 끝밤새도록 맺힌이슬 한 방울뾰족한 가시도 저렇게 우는구나나이 먹고 추레하니나 이제야 보이네푸르스름한 아침 그믐달 눈 뜨네시작 메모아카시아 이파리 속 뾰족한 가시 끝에 맺힌 이슬을 본다. 밤새 내린 빗방울일지도 모른다. 늘 풀잎 위에 맺힌 진주 이슬만 읽거나 알고 있었지 가시 끝 눈물은 생각한 바 없었다. 가시란 존재는 남들에겐 아픔이지만 정작 자신에겐 깊은 슬픔이리라. 나 또한 나이 먹으며 점점 가시 같아지니. 오늘도 찔러보는 바지 주머니 속엔 삼만칠천원 무겁구나, 한 시간은 족히 가는 긴 생각거리 만났다
스타가 되기 전에 엮어두는 게 필요해 복권 1등 당첨 후의 자신의 행적에 대해 갖은 상상을 다하고 있는 우리의 40대 동영상제작자 남자는 마침내 `미나`라는 신인 여배우와 저녁약속을 잡는 데까지 이르렀고, 이제 그녀를 만나러 약속장소로 가고 있는 중이었다. 지하철 3번 출구라든가 엘지 편의점 앞이라든가 우리은행 정문 앞에서 보자는 등 그러한 약속은 사내들끼리 즉 만나자마자 한 잔 하러 가야 하는, 촌각을 다투는 사내들끼리, 혹은 찻값따위 아깝게 왜 낭비하느냐고 생각하는 오래된 연인이나 부부끼리나 하는 것으로, 아무래도 예의를 지키거
여배우를 만나기 전에 복권에 당첨된 환상을 가진 40대 동영상 제작자가 당첨 이후의 자신의 행적에 대해 꾸는 꿈은 아무리 길고 아무리 자세해도 질리지가 않았다. 아니 자세할수록 길수록 사내는 구체적인 행복감을 맛보며 그 황홀한 도취 속에서 깨어나고 싶어 하지 않았다. 주머니에 돈을 잔뜩 챙긴 그가 머리에 떠오르는 순서대로 전화를 해보자 미나라는 아이가 받았고 이 신인 여배우의 도착을 기다리며 잠시 전시장에서 그림 감상을 하고 있었는 바, 배우의 도착이 가까워지면서 더 이상 여기서 눈 아프게 그림을 들여다봐야 할 이유가 없어졌다. 물
까치 택배 윤 한 로빨강 얼굴 빨강 코웬 사내헐럭하니 망사조끼엔 ‘까치 택배’ 새겼다(까치가 울면 반가운 손님 온다는 게로군)근사하다오늘도 반지하 우리게 저벅저벅 걸어들어완박스 하나 휙 뿌리고 간다빨강 팔뚝 빨강 다리 대낮부터 삭힌 홍어 냄새 풍기며어드메 먼 친척이나 되드키시작 메모장마철 반지하 사무실은 훅훅 찐다. 노트북 잡무 속에 머리를 붙들고 앉아있자니 짜증스럽다. 언제부터 택배가 너무 많이 온다. 하루에 십여 차례도 더 온다. 쓸데없는 책자니 유인물이 거지반이지만. 거칠게 들이닥치는 붉은 얼굴 택배 사내들, 이따금 그 모습이
부자의 심정을 알아가며 복권에 당첨된 꿈을 꾼 40대의 동영상 제작자가 당첨된 이후의 자신의 행적에 대해 구체적으로 떠올리고 있는 바 그 내용은 아래와 같았다. 아침부터 구두를 닦고 아점으로 양평 해장국을 먹고 편의점에 가 복권 두 장을 구입하고 슬슬 거닐다 업계 사람 하나를 만나 자금사정이 절박한 그와는 달리 한가한 마음으로 그의 지루한 이야기를 들은 다음 찻값을 내주고 헤어져 이제는 저녁을 함께 할 사람을 구하는 바 상대는 남자나 여자나 여대생이나 상관없다고 하였다. 그렇게 해서 복권에 당첨된 남자는 요 근래 머리에 잔상이 지워
벤치 윤 한 로아 아 문리대니 예대니 계집애들은왜 그렇게 깔깔거리는지스모르에 백구두에꾀죄죄, 시 나부랭이 좀 써보겠다고대학물 한번 먹겠다고 나 같은 놈팽이연천에서 올라와 나무 벤치 위외롭고도 마냥 쪽팔리더라청자 한 대 꿀리곤 신문지 한 장 뒤집어썼지스물둘 초여름파란 하늘에 흰 구름 한 덩어리천천히 천천히 흘러가도록시작 메모문학을 하겠다고 대학물 좀 먹겠다고 삼수하고 연천에서 올라왔는데, 스물두 살 내가 타던 84번은 지금도 아프게 한다. 대지 극장을 지나 미아리를 거쳐 창경원을 스쳐 화신 앞을 흘러 서울역을 나와 용산을 넘어 한강
복권에 당첨되는 사람은 소수다. 6등짜리야 수도 없이 많지만 십만 원대는 드물고 백만 원대는 가뭄에 콩 나듯 하며 2등이라 일컫는 천만 원대는 감히 꿈꾸기 힘들며 적게는 수억에서 많게는 수십억에 이르는 소위 1등 당첨은 과연 이승에서 가능할까 하는 의문이 드는 대박 행운인 것이다. 그런데 당첨을 꿈꾸는 건 손쉬운 일이어서, 특히 복권 한 장을 사둔 상태에서는 그 꿈은 대단히 구체적인 양감을 가지고 파노라마처럼 눈앞에 펼쳐지게 된다. 40대의 동영상 제작자는 복권 당첨에 대한 꿈뿐 아니라 당첨금을 어떻게 써야 할지 매우 구체적으로 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