누군가 배게 밑에 태엽을 숨겼길래 진득해지는 버릇은 어렵지항상 반 쯤 펼친 책을 뒤집어 쓰던 동생처럼내게 반성문 쓰는 방법을 알려달라 말했던 장난들 중에나를 위한 게 없던 것처럼고장난 시계를 수리하느냐는 질문에네, 라고 대답했던 게 후회되냐고 물었지나는 누굴 위해 사는 게 좋았고올바른 엄마가 되고 싶진 않았지만토다는 사람이 부러웠다고 말하지 않았어내 일기를 몰래 읽어줄 동생이 필요했지남들은 안 먹는 과자를 가방에 넣고방에 숨겨 놓으면 그게 내 글자가 되어가끔씩 너를 찾지,이 많은 걸 누굴 주지시계 바늘이 고장나면 나를 찾아줘잠들 시
개와 축구공- 마혜경 누군가 축구공을 세게 찼다 개 한 마리가 달려간다축구공이 굴러가자기를 쓰고 달려간다어느 지점에서 공이 멈추자 개도 멈춘다 개가 본 것은 축구공이 아니다굴러가는 걸 본 것이다세상의 둥근 등을 본 것이다 누군가 축구공을 세게 찼다또 개 한 마리가 달려간다자전의 멀미를 꼬리에 매달고 굴러가고 있다
별, 그리고 고독저 많은 불빛은 누굴 위한 것일까?불빛마다 빛나는 까닭을내가 다 알아야 하는 이유는 없지만그렇게 많은 불빛 속에서조차소외된 외로움이야...폭염 특보라고코로나 19 팬데믹에2.5단계라고겁을 팍팍 주는데25도를 넘는 잠 못이루는 밤 집을 나섰다.사회적 거리두기 실천을 핑계로검단산 자락을 올랐다.수많은 별들이 아래에서 내게로 솟아 오른다.인생에서 단 한 번도 조명받아보지 못한 나지만잠시 빛의 환영에 취해 본다.그래도 어쩔 수 없는 외로움이야...아무것도 할 수 없는 시간에아니 아무것도 하지 않아도 되는 시간에산 아래를 바
마스크를 써도- 마혜경 얼굴로 표정을 만들지 않는다눈빛만으로 표정이 된다얼굴 반을 가려도말을 하지 않아도눈으로 마음의 깊이를 잴 수 있다가까이더 가까이멀어질 수도 없지만 이제사라지긴 더욱 어렵다
적폐들의 난동이 이어진다법과 상식은 실종되고진실을 왜곡하는 언어들이 허공으로 흩어진다코로나19 비말을 품고 마구 떠다닌다김구보다 이승만이 훌륭하다는북한을 포용하는 것보다 일본과 친해야 한다는식민지가 분명한데도 끊을 수없는 한미동맹이라는허무맹랑한 무식한 편견이 사람들을 끌어모을 때교육이 잘못되어 역사를 이해하지 못한가련한 사람들이악폐로 변한 적폐들의 유혹에 빠져들고헌금 위에서 춤추는 이탈한 목회자들예수가 그들의 손을 잡고 눈물 흘릴 때이기주의를 벗어나지 못한 의사들 때문에히포크라테스 또한 예수와 함께 눈물 흘린
하늘 바다 하늘은 바다납작 돌 움켜쥐고물수제비 던지면퐁퐁퐁 튀다가빠질 것 같은 바다 구름은 파도바람이 불어와먹구름 바위에 부딪히고하얀 물보라 만들어출렁이는 파도 하늘을 나는 새는바닷속 물고기퍼득퍼득 날개짓짹짹짹 헤엄치는하늘나라 물고기 하늘 향해 쭈욱 쭉손을 뻗으면물살을 가르는 소리풍 !덩 !들릴 것 같아요
글쎄내가 천인단애의 절박한 외로움을 끌어안고 죽는다면죽어서도 외로울까?내가 지금의 아픔을 가지고죽는다면나 죽은 사후 세상에서도 여전히 아픔을 지니고 있을까?만약에 그렇다면죽기 전에 외로움을 나누고 아픔을 치료하고 죽어야 하지 않을까?외로움을 나누면 외로움은 사라질까?사후라는 도솔천 너머에는뱃나루에 먼저 가신 내 엄마가 나를 기다릴까?요단강 건너서 내 보고 싶은 아버지가 마중 나와 계실까?글쎄, 글쎄, 그러게 말이지낸들 아나?
침묵이 하는 일 - 마 혜 경 수원 영통구 단오어린이공원에 있는 33.4m 높이의 느티나무지난여름 장맛비에 허리가 부러져 속살이 드러났다시청 직원들이 발을 동동 구르며 돌아갔다 아이들이 모여 술래잡기를 한다텅 빈 공간 바람이 문병을 오고햇살이 조용히 왕진을 다녀간 뒤저기 저 눈에 띄지 않는, 그늘진 곳 초록 가지가 오백 년의 손가락을 펴고.다시 살아날 수 있을까 멀리서 보는 사람들은 생살 찢긴 가지 한쪽을 보며 혀를 차다가 제 머리나 가슴을 쓸어보고 그 누구도 상처에 다가가 말 걸지 않았다 얼마 뒤에 사람들이 와서 시멘트로 사이를
시창작 교실 6 윤한로마음이 개 같으니차라리 시가 깊고 어둡고짧다그런데 마음이 깊고어둡고 절실하니오히려 시 개 같구나역겹다 길다 진즉 알았어야 했건만알면서도 그건 내가 나한테자꾸 속는 거다 속이는 거다만지면 만질수록 덧나는 게다 시작 메모앞으로 고요니 고민이니 진실이니 진지함이니 그리움이니 외로움이니 따위 없이 이것저것 개 같은 마음먹어야겠다. 우리는 왜 쉽게 보지 못할까. 쉽게 듣지 못할까. 쉽게 느끼고 생각하지 못할까. 지금 우리가 뭔지 자기 자신한테 크게 잘못하고 있지나 않을까.
시간사람마다 손에 쥔 시간은 서로 다릅니다.시간이 너무 천천히 흘러갈 때는외로움과 슬픔과 괴로움이 함께하고시간이 빠르게 흘러갈 때는행복함과 웃음과 즐거움이 함께합니다.잠에서 깨어나야 하는데알람 시계는 울고베갯니를 부여잡고오분만 오분만 하면서 숫자를 셉니다.맛집에 긴 줄을 서서 기다리는데날씨는 덥고 순서는 더디 옵니다.그녀와 함께 있는 시간좋아하는 스포츠 중계시간 친구랑 쉼 없이 수다하는 시간은 쏜살같이 지나고하기 싫은 공부시간 아버지 약주 드시고 장광설을 펼치는 시간기차가 연착된 시간은 아주 천천히 흐릅니다.마음속에 똑같이 간직한
속리(俗離)인연이란 무엇일까?인간의 만남을불가에서는 억겁의 연이라 한다.오늘 내가 만난 모든 분들이겁의 인연과 관련이 있다니내 걸어온 발자국을 뒤돌아 본다.보이지 않는 인연의 질긴 줄을 끊는 일은 쉽지 않다. '속리' 세상의 인연을 끊고부처님 세상으로 귀속된다는 그곳부처님과의 연은 또 다른 연의 시작인가?부처님의 삶을 여덟로 나누고면면의 행적을 되새겨불자들에게 가르침을 주신 팔상전이 보인다.동양 최대라는 금동미륵대불이 우뚝하다.족히 35미터는 되어 보인다.미륵불은 용화정토에 이르러 깨달음의 법을 설파하시는 미래불이라는데과연 사후 세
하늘에 무슨 노여움이 저리 많아무슨 분노가 저리 커서쏟아붓듯 퍼붓는단 말이냐적폐가 청산되지 않은 것에 대한 화풀이더냐촛불의 꿈 망각한 우유부단한 정권에 대한 경고이더냐야속하게 쳐다보는 하늘엔 검은 구름만 몰려들고단단하게 굳어진 눈물 향해우르르쾅쾅 번개 천둥 몰아치니망연자실 쓰라린 가슴들 맥없이 무너져 내리는구나어디에 하소연할까수몰된 마음들 갈피잡지 못하고흙탕물에 섞여 나뒹굴 때숭숭 구멍뚫린 하늘은 또다시 노여움과 분노를 쏟아내고어리석은 인간들 4대강 보 찬반 떠들 때노여움과 분노 넘어 억장 무너지는 소리메마른 가슴 굳어진
눈 감으면 - 마혜경 풀 냄새가 난다풀의 살냄새가 난다새들이 풀을 뜯으면바람이 뒷정리를 한다 눈을 감으면 숲이 된다풀이 풀 다울 수 있고나무가 오롯이 나무로 인정받는살 냄새가 가장 질서정연한 곳. 눈 감으면 숲이 되고숲으로 모든 걸 볼 수 있기에 나는 오래 눈을 감고 숲이 된다
바람 불면흔들리는 것은 나뭇가지만이 아니다거대한 숲도 흔들리나니흔들리지 않는 인간 어디 있으랴슬픔에 젖고 기쁨에 춤추며술잔 앞에 쓰러져 눈물 흘리다보면세월은 흘러가는 것착취 아닌 시간이 있었던가빼앗겼다고 슬퍼 말아라주다보면 알게 되리라받는 것보다 더 행복하다는 것을흐르는 것이 어디 눈물뿐이랴바위틈에서 솟아난 샘이냇물 되고 강이 되고 마침내 바다 되듯이그렇게 흘러가는 것지금 비록 보잘것 없다고 슬퍼 말아라살다보면 목적한 곳에 다다를 수 있나니혹시 뜻대로 이루지 못한들노여워 말라흐르고 있는 지금보다 행복한 시간은
매미 소리칠월 스무하루동창이 훤하게 빛나고어제 오던 비마저 그쳤다.바람도 시원한데바람에 올라탄매미 소리가 시원하다.엄혹했던 근대사를 떠 올린다.70년대 유신과 80년대 군부 독재...518 소식을 대학 졸업한 봄에 겪었다.매미가 굼벵이로 땅속에 있었을...나에게 오는 바람 한줌은지구를 반쯤 돌아온 고마움은 아닐까?내 귓가를 시원하게 울리는매미의 청량함도 땅속 엄혹했던 7~8년의 세월의 고마움이듯이...간도특설대 왜놈 장교가해방후 한국군 장교가 되고6•25전쟁에서 민간인을 학살하고조족지혈의 공을 세워평생을 호의호식한 그가 국립묘지에
구해주소 - 마혜경 전남 구례에서 폭우로 떠내려가던 소들이간신히 양철 지붕 위에 올랐다이틀 동안 굶은 소들이 비를 맞고 서 있다 물에 잠긴 지붕에서 어미와 새끼가주인 남례 씨를 부르며 울고 있다
이런 남자 저런 여자 - 마혜경 아버지는 뭐하세요스테이크를 단정하게 자른 은행원 그녀아, 사업하십니다고물상도 사업이라는 아버지 말이 떠올랐다 참, 연봉은 얼마죠와인을 마신 그녀의 어깨가 삐딱하다그는 계약직에 어울리지 않은 데이트가 어색할뿐 집은 어딘가요아파트 추종자 콘크리트 그녀그녀를 뚫어지게 바라본다저런 여자는 처음이야 어머, 이런 남자도 처음이거든요의자에서 튕겨나간 총총걸음 그녀바삐 뒤따르는 건 12개월 할부 명품백 그가 꺼낸 무기는 이렇다저기요, 계산은 각자 하시죠
가난을 위하여 윤한로골방 들창에 비 구죽죽 내리고이런 날은 죽치며사타구니 쓸며 쓸며 또다시도스토옙스키 그 가난 음울 음미한다어떤 선도어떤 진실도어떤 아름다움도가난을 이기지 못한다당할 수 없다무슨 무슨 대사상도무슨 무슨 대지혜도무슨 무슨 대문학도가난을 이기지 못한다누르지 못한다 감히이겨서는 안 된다썩어 문드러진 세상에유일하게 깨끗한, 거룩한 가난거기에 폐를 쥐어짜는 병까지 곁들이다니도스토옙스키, 비참 그 앞에 서면장황한 사변 그만 다 내팽개치곤감상 감정 격정에 빠져 버리고 만다찌질해지고 만다가난한 사람들은 언제나 옳구나구죽죽, 영원히
인생 치대다. 한여름 무더위에열무국수가 먹고 싶다.쒈쒈 끓는 솥에마른국수를 넣는다.부르르 끓어 넘을 때 찬물 한 대접 붓고세 번째 끓어오르면냉수에 서너 번 헹군다.마지막엔 얼음물에 국수를 치댄다.냉면이나 국수도얼음냉수에 벅벅 치대야면이 쫄깃쫄깃 해진다.잘 헹궈진 국수를 말아대접에 담고특별한 고명 없이 열무김치를 얹는다.참깨 솔솔 쳐서 먹으면어지간한 더위는 잠깐 잊는다.우리네 인생도 힘든 일, 가슴 아픈 일행복한 일 즐거운 일들이 어우러져부비고 치대며 살아온 것이다.자!이제는 사랑을 버무려 치대보자.
태양수마의 발톱이 크기도 하다.충청도 북부를 핥고경기 남부를 핥더니 경기 북부에 강원 영서를 핥는다.수확을 앞둔 감곡 햇사래 복숭아 나무가뿌리째 뽑히고한창 자라는 닭 칠만 마리를 휩쓸리더니어머니를 구하려던 따님과 사위도 떠내려갔다.다 큰곰 발톱이나 호랑이 발톱이 어른 손가락만하다는데수마의 발톱은 비할 바 아니다.어릴 적엔 수재민돕기 성금도 잘 냈는데나이만 먹었지 어린 나보다 못함을 스스로 꾸짖다. 일간 모금이 시작되면 작은 성의라도 보태야겠다.아직도 비구름이 한창이다.저 두터운 구름 위에는밝은 태양이 있다는 것은 모두가 아는 일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