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작은 글씨 보충의견]으로 나오는 백제가 처음 도읍했다는 [미추홀 : 패수(浿水)와 대수(帶水)를 건너 미추홀에 와서 살았다.]를 찾다가 삼국사기 권 제37 잡지 제6 지리(地理)四 고구려(高句麗) 평양성과 장안성(427년) 부분에 달린 주(석) 35를 보게 되었다. (전략) 또한 《고려사(高麗史)》에서 백제 시조가 북으로 패강(浿江)을 경계로 삼았고, 당(唐) 황제가 패강(浿江) 서쪽 포구(西浦)에 정박하여 엽전을 깔고 내려 송악군(松岳郡)에 이르렀다고 하였으니, (후략) 이를 [구글]에서 그대로 검색하여 "조선후기 패수관련
백제의 첫 왕은 온조 (삼국사기 주된 견해), 혹은 비류 (삼국사기 보충 견해), 혹은 [구대仇台] (차이나 역사책) 이다. [교과서]를 소설로 만든 국사편찬위원회. (4) 거대한 음모(25) 일본을 편드는 국사편찬위원회 (99) 1. [삼국사기 백제본기 온조왕 ]은 ① 주된 의견으로 백제의 첫 왕(시조)는 [온조]이고 ② 보충의견으로 백제의 첫 왕(시조)는 [비류]이며, [비류]의 아버지는 북부여 해부루의 서손 [우대優台]라고 하고, ③ 연이어 “ 차이나 역사책 [북서]와 [수서]에는 [구대仇台] 가 백제의 첫 왕(시조)이라고 기
1. 海(해)를 바다(=sea)로 번역하여 코리아 역사를 한반도로 옮기는데 결정적인 근거를 부여한 것이 이병도·신석호 이래 일본 편드는 [친일 국사편찬위원회]이다. 후한서와 삼국지에 “ 고조선의 왕 [준]이 [위만]에게 패하여 [해海] 지방으로 들어가 走入海, [해海] 지방에 살던 코리아 韓(한)의 왕이 되었다.” 는 기록이 있다. 1) 그들은 [走入海 주입해] 중 海해 를 바다(=sea)로 번역한 것이다. 기원전 2세기에 황해 바다를 수천명을 데리고 건너왔다는 것이다. [走入海 주입해] 그대로 해석하면 [달려서 (급히 走) 들어갔
1. 삼국사기 백제 본기에서는 주몽이 고구려왕이 되지 않고 부여왕이 된 것이 주류의 견해이고(큰 글씨, [코리아 기록]) 주몽이 부여왕을 거치지 않고 고구려왕이 된 것이 첨부된 견해이다. (작은 글씨, [교과서 기록]) 그런데 [삼국사기 고구려 본기]에서는 반대이다. 주몽이 부여왕을 거치지 않고 바로 고구려왕이 된 것이 큰 글씨이다. [교과서기록]이다. 어느 것이 더 맞는 기록인지 현재로서는 판단할 수 없다. 모순된 두 가지 역사를 같이 기록하는 방법을 거추장스럽다거나 우습다고 여기지 말자. [삼국사기 백제본기]는 백제의 기원에 대
1. 최근 [책보고] 가 출판한 [백제서기·백제왕기] 에 [코리아 삼국사기·삼국유사]나 [차이나 삼국지] 등 역사책에는 없는 기록이 다수 실려 있다. 코리아 삼국사기는 1145년에 출간되었으나 지금 전해지는 것은 조선시대 이후인 14세기 말부터 16세기에 기록된 것들이다. 몇 백년 동안 전해오면서 고의든 과실이든 원본과 다르게 위·변조되었을 가능성이 있다. 삼국사기 편찬자 (대표 김부식)들이 참조한 차이나 역사책은 삼국지, 한서, 수서, 구당서 등 최소 22권 이상으로 지금도 전해져 오고 있다. 참조한 코리아 역사책은 고기, 삼한고
1. 지난 글의 계속이다.이어지는 문장을 보면 신라국新羅國 은 [새로운 나라] 라는 형용사 + 보통명사가 아니라 [신라= 새나라] 라는 고유명사 (이름)이다. [신라]는 왕이 [김진평](진평왕)일 때 [수나라]의 고조가 [신라 진평왕]을 낙랑군공, 신라왕이라는 벼슬을 내렸다.拜 1) [신라]가 [낙랑군]이라는 결과가 된다. 차이나 고대에는 벼슬(작위)의 순서가 공·후·백·자·남(작) 이라고 하는데 차이나 왕 다음으로 높은 벼슬을 받은 것이다. [신라]가 [낙랑군]이라는 설명은 코리아 국사편찬위원회 교육을 받은 사람으로서는 기록을 의
1. 을지문덕 장군이 격파했다는 수隋나라 정부 역사책 [수서隋書] 는 당나라 때 수정(변조)되었다고 보는 것이 적절할 것이다. (부록1) 어느 부분이 어떻게 수정(변조) 되었는지는 지금은 알 수 없다. 다른 역사 기록보다 [코리아]에 좀더 유리하게 쓰여져 있는 부분이 있다면 이를 적극적으로 채택하는 것이 바람직한 태도이다. 수서 동이열전 신라 조를 보자. 코리아 국사편찬위원회 원문은 차이나 국사도항 사이트 원문과 같았다. [수서 권81, 열전 46 동이전. ] 국사편찬위원회는 목록을 표시하지 않았다. 新羅 新羅國,在高麗東南,居漢時樂
사단법인 고구려역사문화보전회와 사단법인 한배달/ 역사의병대 가 4차 고구려 역사 강연회를 9월 2일 토요일 오후 1시 30분부터 5시 30분까지 가졌다. 이일걸 정치학박사이자 한국간도학회 회장이 ‘요하문명론을 비판한다’를 주제로 첫 번째 발제를 했다. “살수대첩지는 어디인가?” 라는 주제로 성헌식 고구려역사문화보전회 학술위원장 겸 사무국장이 두 번째 발제를 했다. 두 번째 강연이 끝나고 시민역사연구가 양봉환 님이 성헌식 국장의 이론에 대해 날카롭게 비판했다. 결국 황하 만곡부 (북남으로 흐르다가 서동으로 흐르는 굽이)를 직접 보아야
日本(일본)을 가리키는 大和(대화)를 ‘다이와’가 아니라 ‘야마토’라 읽는다. ‘야마토’를 한자로 야마 대 만 邪馬 臺 灣(만) 으로 쓰는 것에서 지금의 ‘일본’은 지금의 ‘대만 섬’에서 살던 倭(왜)에서 시작했다는 것을 알 수 있다. ‘대만 섬’은 후한서 동이열전 코리아 韓(한) 지역에 있었던 倭(왜) 중에서 가장 큰 倭(왜)인 ‘대왜大倭’ 였다. 大倭 王居 邪馬 臺國。 1. 기원전부터 현재의 대만섬과 대만섬 주위에 살던 彎(만) 부족의 바다가 ‘灣만’이고, 彎(만) 부족이 세운 나라 혹은 살던 마을이 대국臺國 이다. 두 글자가
1. 차이나 역사책이 코리아 민족의 역사를 숨기기 위해서 위조·변조 하는데 공통적인 패턴이 있다. 역사책 문장 내에서 전체 흐름이나 취지와 전혀 관계없는 문장들이 나오는 것이다. 열심히 찾아보면 관계 없는 문장들이 아니다. 꼭 기록해야할 만한 가치가 있는 것이고, 그 이전에 어디에선가 기록이 있던 것이다. 즉 베껴도 흔적을 남겨 놓은 것이다. 2. 후한서 권 85 동이열전은 문단의 구분이 없이 계속 漢字(한자)로 이어져 있다. 당시에 그 책을 썼거나 그 책을 읽어본 사람이 가르쳐 주지 않으면 알아보기가 참 어렵다. 이를 한국사데이터
(지난 호 대만은 倭國왜국인가? (1) 에피소드7 의 계속이다) 5. 코리아 역사책 [고려사 열전 26 제신 최영 부분] 에 의하면, 1380년 경 고려의 충신 최영은 왜구들과 차이나 대륙 泗水(사수) 와 淮安(회안)에서 왜구와 싸웠다. 지금의 淮安회안시는 지금의 차이나 양자강 변에 있는 남경시 북북동쪽 약 150㎞ 지역에 있다. 이 기록만으로는 왜인들은 지금의 차이나 남경시보다 더 남쪽에 있었다고 보는 것이 타당하다. 1) 조선후기 문신 김수홍이 1666년에 그린 천하고금대총편람도(天下古今大總便覽圖) 에 의하면 지금의 회하淮河에
[국사편찬위원회] 웹사이트에서 찾은 ‘남당유고’는 6건 뿐이다. 이마저도 로딩(화면에 나오는 것)되지 않는 것이 있으며, 로딩 된 것중 역사 관련 기록은 없다. [국사편찬위원회]의 “목구멍이 포도청이라 공개할 수 없어요.” 라는 말이 들리는 듯 하다. [국사편찬위원회]가 황급히 감춘 ‘남당유고’ 백제 편, [백제서기·백제왕기] 가 책으로 출간되었다. 약 6만명의 구독자가 열심히 보는 한국고대, 중세사 전문 유튜버 '책보고' 가 설립한 ‘시민혁명출판사’에서 ‘하진규’의 번역으로 [국사편찬위원회]가 감춘 [백제서기,백제왕기] 를 세상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