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 번역 문학은 문제가 많다. 번역을 잘못하면 문학과 멀어진다. 독일 작품이면 독일어 전공자가 바로 한국어로 해야 하는데 미국에서 번역한 걸 영어 전공자가 한글로 이중 번역을 하는 경우가 있다.원작과 멀어지고 작품성도 떨어진다. 전집을 내는 곳은 하나만 망해도 다 망하니 단행본보다는 잘한 번역이 많다.몽테뉴 수상록도 버전마다 감동이 다르고 개선문도 시처럼 느껴질 정도로 유려한 번역본이 있는가 하면 읽기도 싫은 번역도 있다. 외국 시 번역도 전혀 문학적으로 느껴지지 않는다. 딱딱한 영어책에 불과하다. 좋은 번역은 좋은 작품과 마찬가
2023.10.18.22:38.나는 약점이 있는 사람이 좋다. 치명적인 약점은 약점이 아니라 결함에 가깝겠지만, 완벽하지 못한 부분이라든가 남보다 부족한 부분이 있는 사람을 좋아한다.그래서 내 주위엔 주류보다 비주류가 더 많다. 때로는 남들이 뭘 좋아하는지 몰라서 서툰 행동을 하는 사람도 있고 분위기 파악을 못하고 주책 부리는 사람도 있다. 말을 많이 하는 사람도 있다. 목소리가 큰사람도, 자기주장이 가끔 지나친 사람도 있다. 그러면 주변의 사람들이 수군거리기 시작한다. 혹은 그렇지 않더라도 그런 약점을 가진 사람과 거리를 두고 한
2023.10.13. 12:14.제1회 남도 영화제, 순천에서 남도 영화제 첫 포문을 열었다. 그동안의 영화제와 다른 점이 있다면 시즌마다 지역을 옮기며 남도의 많은 지역을 두루 볼 수 있다는 것이다. 다음에는 남도의 어디에서 영화제를 할지 기대도 되고, 개막식날 좋았던 날씨와 바람, 하늘, 구름, 아름다움이 마치 우주의 일부분을 느낄 수 있는 것 같이 다가와서 기분 좋게 한다.나는 장편 와 단편 로 영화제에 왔다. 작품을 들고 오는 것만으로도 기분 좋은 일인데 두 작품을 상영할 수 있어서 더욱 유쾌하다. 나는 내
2021년 데뷔한 배우리 가수의 새 앨범이 나왔다.인디와 발라드를 넘나들며 신비로운 목소리를 장점으로 하는 가수다.2021년 11월에 싱글앨범 '시간은 또'로 데뷔했고 로빈엔터테인먼트 소속이다.맑고 참신한 목소리에 신비로운 감성까지 더해 가을 날 듣기 좋은 음색이다.MZ 시대에 맞춰 4명의 작사가가 참여했다. 요즘 대세인 공동작사다. 최은미, 윤철희, 김정은, 잔야 작사가가 협업했다.서로의 장점을 살려 경험을 녹아냈고 사계절이 다 들어간 가사가 독특하다. 잔야 작사가는 수 많은 경쟁률을 뚫고 렛어스 뮤직에서 공모전 대상을 탄 신예
오늘 12시 정오 배우리 신곡 어느 날 사전 영상이다. 로빈 엔터테인먼트 소속 배우리 가수의 7번 째 음원이 나온다.귀엽고 예쁘고 상큼한 외모에 놀라운 가창력을 지닌 가수다.작사에 최은미, 윤철희, 김정은, 잔야가 참여했다.요즘 많은 작사가들의 공동 작사가 대세라 그에 맞는 가요다.섬세하고 순수한 보이스에 가사 내용이 애절하고 가슴 아프며 가수와 가장 잘 어울리는 곡이다.12시가 기다려진다.
2023.10.02. 23:09. 한국나이 38세. 만 37세의 추석에 빼놓을 수 없는 부모님의 눈치 주기는 연애와 결혼이다. 연휴의 마무리에도 그 뉘앙스는 그냥 지나치지 않는다. 만나는 사람 없는지 그렇게 궁금하실까. 허나 내 멋대로 인생 커리어를 가진 나에게 그런 눈칫밥은 밥 측에도 못 낀다. 씨알도 안 먹힐 말이라는 것은 30년의 마이웨이로, 이미 기대치가 없을 테니까. 그럼에도 불구하고 나는 내심 생각하곤 한다. 연애와 결혼관에 대하여. 오늘은 연휴임에도 아침에 수업을 했는데 상상에 관한 이야기를 하며 수업을 듣는 이에게 지
2023.09.25.02:01요즘에는 대본리딩을 할 때에도 아이패드 같은 전자기기를 쓴다. 수업을 할 때에도 노트필기가 아닌 아이패드 필기를 종종 보곤 한다. 돈이 없어서 안 사는 것이 아님에도 뭔가 초라한 것만 같은, 내 종이로 된 노트 구석을 만지작 거린다.나는 종이가 좋다. 아직도 내 가방 안에는 수많은 대본과 독백들이 들어가 있다. 연습하다가 휙 집어던질 수 있는 편리성에서 오는 일종의 쉬운 태도도 좋다. 비싼 기계는 뭔가 앙칼진 여자친구 같아서 공주대접 하다가 내가 내 풀에 지칠 것만 같다.요즘 보드게임 모임에 나가는데 보
2023.09.18.00:52.굿바이 책누나 프로젝트. 금요일에 영남이가 운영하는 가게에서 책누나프로젝트 마지막 파티를 했다. 책과 아이들을 좋아하는 사람들이 모여서 아이들에게 책을 읽어주는 모임이었던 책누나 프로젝트는, 이제 여기까지 하게 되었다. 아마도 코로나가 가장 큰 타격을 주고 그 여파가 학교에 어떤 변화를 주었던 것이 영향이 있던 것 같다.카톡을 뒤져보니 2016년부터 했던 모임이다. 건강을 유지하기 위해 작품을 쉬면서 배우로써 쓰임이 없던 시간이 있었다. 그 시간에 '나는 쓸모 있는 존재인가'라는 질문에 답을 찾기 위해
수레바퀴 꼬마 도둑 / 김주선 엄마의 지갑에서 동전 한 닢 손댄 적 없던 내가 이종사촌 오빠의 책장에 손을 댄 적이 있었다. 중학생일 무렵 여름방학 때 원주에 사는 이모네 집에 놀러 갔다가 맘껏 책을 읽을 수 있는 오빠가 부러웠다. 소아마비를 앓고 있어 책 읽는 일로 소일하던 오빠였다. 아마도 내가 앙큼한 책 도둑인 걸 알았을 것이다. 돌려줘야지 생각은 했지만, 물놀이 사고를 당해 이모의 가슴에 묻히는 바람에 책은 본의 아니게 유품이 되었다. 헤르만 헤세의 『수레바퀴 밑에서』를 볼 적마다 술에 취한 채 강가를 걷다가 물에 빠져 의문
2023.09.12.01:29.마음이 괴로운 날엔 좋은 날을 생각하자. 근 며칠 몸도 마음도 피곤스럽고 고달프다 생각이 들었다. 집안에는 혓바늘이 돋아나고 눈 밑은 자꾸 떨리고 안색도 피곤해 보였다. 혼자 있으면 좀 낫겠지 싶었지만, 집에서 자꾸 깨는 마음을 엿보니 혼자 있으면 안 되겠더라. 촬영이 끝나고 영남이네 가게에 가서 혼밥 혼술 독서를 했다. 잘 살기만 하는 줄 알았던 그 녀석도 보기완 다르게 고충을 앓고 있었다. 남들 눈에 나도 그렇겠지. 단단해 보일 수도 있겠다.나는 앞으로 나아가고 싶다. 그런데 지금을 살지 않으면 내
블로그를 지우며 / 김주선 단풍나무 이파리가 파닥거리는 소리에 잠에서 깼다. 비가 제법 내리는 주말, 꿀맛 같은 낮잠이었다. 그동안 미루어 두었던 개인 웹 사이트를 정리하고자 컴퓨터를 켰다. ‘나도 너처럼 장미였노라’ 블로그 대문을 장식하는 헤드라인 문구에 먼지가 낀 듯 침침하게 보였다. 돋보기를 꺼냈다. ‘나도 장미였던 시절이 있었노라. 누군가의 가슴에 선홍빛으로 핀 장미였던 시절이.’ 블로그에 적힌 한 줄 소개 글이 무색하리만치 온기를 잃은 방은 적막이 가득했다.나는 블로거였다. 초창기에는 주로 라이프, 요리, 여행을 다루었다.
2023.09.05.01:47.이혼을 연기하는 것. 또는 이혼한 뒤에 살아가는 삶을 연기하는 것. 나라는 사람은 멜로나 로맨스 장르의 역할이 잘 들어오지 않는 편이다. 비슷한 인물을 연기하게 되었는데 이혼한 뒤에 전 부인을 괴롭히는 역할이다. 대본을 연신 읽으며 인물의 심정이 어떨지 계속 상상한다.거슬러 올라가 본다. 이혼하는 마음이 어떤 것인지 머리로만 아는 느낌. 하기사 결혼 생활도 안 해본 내가 이혼하는 마음이 무엇인지 얼마나 가늠하겠어. 쉬운 작업은 아니다. 결혼도 결혼 준비도 연애도 깊게 생각해 본 적 없으니 말이다. 상상
바둑 두는 여자/김주선 한때 프로 바둑이 인기였던 시절이 있었다. 재능이 보이는 진득한 남자애들은 학원까지 보내주었지만, 언감생심 여자애들은 꿈도 못 꿀 일이었다. 어깨너머로 한 수 배운 아이들은 사랑방 전용 반상을 펴고 어설프게 집 짓기 놀이를 했다. 고만고만한 실력인데도 또래들은 행마의 규칙을 알려주는 훈수를 뒀다. 귀(귀퉁이)부터 돌을 놓는 애들은 초가집 정도는 지을 줄 아는 편이고 정중앙부터 포석을 치는 아이는 바둑을 1도 모르는 아이다. 바둑 좀 두는 집안에서는 아이들의 실력과 흥미를 키워주느라 화점 위에 9점을 깔아주고
2023.08.25. 20:04.부유하는 생활. 잠원 한강 야외수영장을 3주 내내 다닌 것도 모자라서 제주도를 왔다. 현준이가 제주도에 아스론가라는 술집을 냈다길래 가봐야지 하고 생각하던 차에 잘됐다 싶었다. 사실 더 큰 동기는 바다 수영을 하고 싶었기 때문이다. 거의 매일 수영장에 갔으면서 또 여기서 수영을 하겠다니. 나도 내 마음이 궁금했다.머리를 물속에 반정도 담그고 팔과 다리에 힘을 풀고 물 밑을 본다. 파도에 살랑이며 모래가 퍼졌다가 가라앉았다. 두둥실 떠있는 이 기분이 정말 좋다. 발가락 사이에 닿는 모래가 폭신하고 상쾌
2023.08.23. 23:58꽃을 받는 마음이란 이런 것이구나. 며칠 전에 수업의 일환으로 관극을 하러 갔다. 혜화역 2번 출구에서 만나기로 한 그 친구는 작은 꽃다발 두 개를 들고 있었다. 하나를 나에게 주길래 공연 보고 서로 하나씩 배우에게 주자는 뜻인 줄 알았다.그런데 그게 아니라 나한테 주는 꽃이라고 한다. 왜냐고 물었더니 제천 가서 영화도 틀고 레드카펫도 밟았으니 주는 것이라고 했다. 나는 너무 놀란 마음에 한 손으로 벌어지는 입을 막고 크게 뜬 작은 눈으로 꽃과 그 친구를 번갈아왔다. 아무 말도 할 수 없던 탓이 입을
2023. 08.11. 11:45.제천 국제 음악 영화제에 태희형과 함께한 가 피칭 선정되어 제천에 오게 됐다. 오기 전부터 무슨 옷을 입어야 적당할까 즐거운 상상들을 했다. 예전부터 갖고 싶던 넥타이 하나를 사서 목에 두르고 가벼운 셔츠를 입고 구김 하나 없는 새 신발을 샀다. 그리고 시간에 맞춰 식순을 기다리다가 레드카펫에 섰다.어쩔 줄 모르겠는데 어떻게든 떠밀려서 단상 같은 곳에 선다. 큰 화면에 내가 나오는 게 신기하다. 내가 웃으면 화면 속에 레드카펫을 걷는 나도 웃는다. 예전부터 같이 작품 하면 너무 좋겠다고 생
2023.07.31. 02:52옷에 대해 감각이 별로 없는 사람에게 옷 고르는 일이란 정말 곤란한 경우가 있다. 그냥 동네 돌아만 다녀봤지 결혼식이나 예를 갖추는 TPO를 고려하는 정도 이상의 뭔가를 떠올리려니 막막하다는 생각이 든다. 편하게 입고 가도 될 거라고 예상했던 레드카펫 행사는, 작년의 영상을 보니 그래도 자신이 좋아하는 옷 정도는 다를 입고 등장했다. 멋지게 입은 사람도 있었고, 그래도 셔츠와 자켓을 기본적으로 입고 갔다.내가 좋아하는 옷은 뭘까 하며 옷장을 보는데 연기 수업하기 편한 옷과 그냥 깔끔한 캐주얼 의상뿐이다
2023.07.26. 19:32 집에 오자마자 간단하게 정리를 하고 좁은 방문을 통과하여 침대 앞으로 간다. 바닥에 침대 베이스도 없고 프레임도 없는 매트리스에 몸을 던진다. 에어컨도 켜고 프로젝트로 켜서 누워있는 꼴로 천장에 쏘이는 빔을 본다. 본다는 것은 형식이고 그냥 하루에 생각한 것이 너무 많아 아무 생각도 안 한다. 왜 흔히들 되는 게 아무것도 없다고 하는 날이 있지 않은가. 어제가 딱 그랬다. 맘처럼 되는 게 별로 없었다.누워서 이렇게 천장을 보는데 너무 행복했다. 내 맘 같이 되는 게 없는 어느 날에 비해서 내방은, 내
2023.07.18.00:47오디션 하나를 끝내면 기진맥진이다. 그렇다고 오디션을 체력으로 준비하는 것은 아니나, 일종의 긴장감이 나를 피로하게 하는 구석이 있다. 금요일에 오디션이 끝났는데 조금만 쉬어야지 하고 정신을 차려보니 월요일이다. 나는 말하는 대로 이뤄진다고 믿는 것들 중에 하나가, '저 감독님과 작품 하고 싶어.'였다. 우연한 계기로 그것들을 이뤄왔고 작은 역할이지만 함께 했음에 감사하곤 했다. 이번 오디션도 마찬가지다. 이 감독님의 초기 작품과 독립영화부터 익히 봐왔었고 그 작품에서 독백을 발췌하여 오디션을 봤었다.
2023.01.12. 02:25. 사람이 가지고 있는 출발선은 저마다 다르다. 일기를 쓸 틈도 없이 하루를 보내고 '오늘은 꼭 일기를 써야지'하고 집에 와서는 빨래 넣어둔 것을 걷고 있다. 그리고 설거지를 하고 화장실 바닥을 보니 못 보던 때를 본 것 같은 기분에 찬물을 뿌린다. 청소솔로 박박 닦아서 하수구에 더러운 때들을 흘려보내니 묘한 쾌감이 든다. '일기를 써야지 이제' 하면서 앉았지만 바로 쓰지 못하고 자잘한 정리를 한다. 왜 이렇게 나만 바쁜 것 같은지, 내가 영리하지 못한 탓인지 책망한다. 쓸데없이 자꾸 남이랑 비교하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