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더위가 기승을 부린 그해 여름, 대학교 2학년이었다. 나는 적음 형을 따라 청량산으로 들어갔다. 아프리카 우간다에나 있을 법한 어처구니없는 일들이 이 나라에서 일어났다. 이디 아민 다다처럼 군인이 독재자가 되어 광주에서 시민들을 죽였다. 저항하거나 항변하는 자들은 끌려가거나 입에 재갈이 물렸다.앞날의 희망이 사라지자 나는 적음의 바랑을 메고 그의 걸음을 따랐다. 청량리에서 완행열차를 타고 봉화역에서 내렸다. 버스를 갈아타고 나는 빨치산처럼 험한 산길을 걷고 또 걸었다. 나를 사랑한다는 여자 후배 B를 데리고 갔다. 일주일간 적음과
그는 쓰는 인간이다. 쓰는 인간이지만, 부르는 대로 받아쓰거나 남의 것을 베껴 쓰는 인간이 절대 아니다. 그는 소설을 쓴다. 그는 어려운 소설을 쉽게 쓰는 인간이 아니다. 작가에게 쉬운 소설은 없다. 누가 단편 하나를 하룻밤에 썼다는 거짓말을 풀면 갑자기 감자를 먹이고 싶어진다. 소설은 삶을 통찰하는 창이라고 믿는 그는 소설을 기록한다. 쉬운 소설은 애초에 없다고 믿기에 어렵게 쓴다.그의 두터운 뿔테 안경에는 사실주의자의 시선이 삶의 창을 넘어 꿈틀거린다. 구도자적인 자세로 쓴 소설에는 철학적 사고와 끈질긴 집념이 있다. 그는 소설
나는 맞는 일이 좋다. 그냥 헛발질이나 허공을 가르는 주먹질이 아니라 제대로 선수들에게 맞는 걸 선호한다. 원하는 부위를 정통으로 맞아야 돈이 된다. 뼈가 부러지고 이빨이 빠지고 살이 찢어져야 견적이 잘 나온다. 빗맞으면 아프기만 하고 멍이나 들 정도면 정말 껌값이다.내가 맞는 일을 시작한 것은 한 여자 때문이다. 나는 내가 사랑한 그녀를 원했다. 사람들이 가장 좋아하는 사랑, 행복, 꿈이나 가족이 내겐 없었다. 그녀를 처음 본 순간부터 마지막 사랑이기를 간절히 원했다. 알고 있다. 그런 행복이나 꿈은 언제나 '헛된'이라는 수식어를
정말 응칠이가 또 감옥에 갔어? 응칠이는 내가 잘 알지. 이 친구야, 글쎄 내 얘길 먼저 들어보라니까. 응칠이를 만난 것은 뺑끼칠을 할 때였어. 그 판에서는 학생이나 뺑끼칠쟁이나 젊거나 늙거나 노가다, 그러니까 막노동꾼이었어. 걸친 옷이 곧 신분을 드러낸다고나 할까. 멀쩡한 놈도 작업복 입고 한 손에 깡통 들고 뺑끼 붓을 드는 순간 뺑끼칠쟁이가 되는 거지. 양복 입고 뺑끼칠 할 수는 없잖아? 정신줄 놓지 않고서는 말이지. 뺑끼칠이라는 게 몸으로 때우고 군말 없이 오야지가 주는 일당이나 받으면 되지. 물론 땀으로 목욕할 정도로 열나게
겨울 눈바람이 옆구리를 파고드는 저녁 무렵, 나는 홀로 섬에 갔다. 추위를 녹일 한 잔 술과 따뜻한 사람들이 보고 싶었다. 나의 반쪽인 나타샤가 사라지자 나는 황량한 이 툰드라 동토에 혼자 남겨진 것처럼 비장했다. 외로움은 느낄수록 커지고 참을수록 작아지는 것. 낮에는 미친 사람처럼 그녀를 찾아다니다가 밤이 오면 작은 골방에 처박혀 지낸 지 한 달이 흘렀다. 사라진 나타샤를 수소문하다 지쳐서 마지막 등불이라도 들고 뭍에 오른 심정으로 섬에 들른 것이다. 섬은 나타샤가 자주 가는 술집이었다.지상의 섬은 물 위에 있으나 그곳 섬은 지하
그날 나는 운전만 70㎞를 했다. 주행 시간은 총 4시간이었다. 경기도에 있는 대학병원으로 문상을 갔다 오는 코스였다. 내비게이터가 친절하게 안내해 준 최적 경로는 아주 지루한 강변북로 퇴근길이었다. 30분간 시속 10㎞로 달리는데 중간에 멀미가 날 정도였다. 후배 K의 부음을 어제저녁에 전해 듣고 우선 황망했다. 나이도 어린놈이 뭐가 급해서. 온종일 일이 손에 잡히지 않았다. 그리고 황망함 뒤를 이어 미안한 감정들이 따라왔다. 병원에 입원해 있을 때 한 번밖에 못 갔다. 병원비가 부족하다고 그의 아내가 전화했을 때 도와주지 못했다
“냉장실 바닥이 엉망이야. 도대체 주방 위생 상태는 왜 이 모양이지?”금발 머리카락 사이 수잔의 푸른 두 눈이 찌푸려있다. 수습 기간 중인 보조 매니저 제임스를 야단치는 중이었다. 호텔 직영 레스토랑 매니저인 그녀는 특히 나 같은 검은 머리 아시안 유색인종들에게 말을 섞지 않았다. 되도록 멀리 떨어져서 대화했다. 그런데도 멀리서 본 그녀는 원색적으로 아름다웠다. 호텔 사장이 숨겨놓은 애인이라고 마오리족 접시닦이 제이컵이 비웃었다. 하여튼 대학을 졸업한 지 3년 만에 수잔은 레스토랑 수석매니저가 되었다. 제이컵은 대걸레와 물통을 들고
성명: 박인생년월일: 1980년 5월 20일주소: 지구 행성 북위 36.7도 동경 127도진단명: 중력 기원성 두통상기인은 남성 신규환자로 금일 진료시 원인불명 두통을 호소하였다. 그가 처음 진료실에 들어설 때 그의 목은 바로 선 자세에서 열두 시 오 분을 가리키고 있었다. 병력 청취와 진찰을 통하여 경추 기원성 두통으로 진단하였다. 경추는 목등뼈로 일곱 개가 있고 주요 신경은 여덟 개이다. 통증은 주로 척수에서 나오는 여덟 개 주요 신경과 갈라진 작은 신경 주변에서 발생할 수 있다. 이런 두통의 원인은 아직 완전히 밝혀지지 않았다
아버지는 한밤중에 깨어나서 산동네 오막살이 지붕 위로 올라갔습니다. 낡은 기와지붕 옆에 작은 장독대가 있었지요. 컴컴한 밤이면 장독대로 올라가는 사다리에서 삐꺽 대는 발소리가 들리곤 했어요. 아버지는 술에 취해 몽유병에 걸린 사람처럼 밤하늘의 별을 올려다보았죠. 그러다 술이 깨면 라산스카가 부른 노래를 흥얼거렸죠. 사랑스러운 애니로리. 아버지는 사람들이 잘 모르는 라산스카를 좋아했습니다. 담배를 한 대 피운 후 또 낮게 흥얼거리는 소리가 들렸죠. 엄마와 제 동생은 이불 속에 누워 자는 척하지만, 코와 귀는 열려 있으니까요.라산스카는
산은 깊을수록 푸르다. 깊고 푸른 산골로 들어가 세상을 등지고 홀로 살던 나는 어느 날 문득 사람이 그리웠다. 지리산 골짜기에서 서울로 가는 여비를 마련해야 했다. 태어나서 처음 소설을 써서 원고료를 받았다. 부지런히 써도 한 달 수입이 10만 원을 겨우 넘었다. 지인들이 보내주는 쌀과 지천으로 널린 나물과 약초를 캐서 근근이 사는 데는 지장이 없었다.사실 돈이 필요 없었다. 내가 돈을 멀리했는지 돈이 나를 피해 달아났는지 모르겠다. 분명한 것은 내가 돈보다 더러운 법 없이도 살 수 있으니 돈이 무슨 대수라, 했다. 가끔 헤어진 연
그날 이후 나는 금발 머리가 무서웠다. 풍만한 리즈의 가슴은 내 결핍된 모성애를 자극했지만 살찐 엉덩이는 느낌이 달랐다. 금발이 매력적이어서 그녀 방으로 따라갔었다. 그녀와 나는 서둘러 옷을 벗었다. 침대에 누운 여자 넓적다리에 붙어있는 하얀 살이 보였다. 그녀 허리에 삼겹살로 접힌 비곗덩어리가 마치 목구멍에라도 걸린 것처럼 내 가슴은 체증으로 타올랐다. 침대에 눕자 살덩어리에 짓눌려 숨이 턱 막히는 느낌이었다.나는 남겨온 와인 반병을 들고 전부 마셔버렸다. 다리와 다리 사이 계곡이 금빛으로 접혀있었다. 거대한 엉덩이에 기죽은 내
가거도는 말 그대로 살 만한 섬이었다. 약수가 흐르는 아름다운 난대수림을 거느린 독실산은 해무에 묻히곤 했다. 그날 그 섬 절벽 끝에 죽으러 온 여자가 피사체로 서 있었다. 민박집에서 어제 얼핏 본 삼십대 여자였다.소흑산도 등대로 가는 길은 폐가 몇 채를 지나 높은 바람벽에 둘러싸인 윗마을을 지나야 했다. 인적 드문 마을을 지나고 아찔한 낭떠러지 길을 걸어 오르면 후박나무숲이 나타났다. 어두컴컴한 숲을 빠져나오자 하얀 등대가 솟아 있었다.나는 뙤약볕이 내리는 등대에 올라 바다를 바라보며 사진을 찍었다. 등대 아래 백 미터 남짓한 절
개나리가 활짝 핀 봄날 오후였다. 군대 가려고 휴학하고 입영일이 일주일 앞으로 다가오자 시집간 누이는 저녁이나 먹자고 나를 집으로 초대했다. 누이 집은 도시개발이 막 시작되던 서울 변두리 단독주택이었다.누이는 저녁거리를 사러 시장에 가고, 나 혼자 안방에 누워 빈집을 지키며 빈둥거렸다. 봄기운이 뻗치는 날, 애인 하나 없이 방구들을 지고 있자니 옆구리가 허전하고 괜스레 부아가 치밀었다. 이런 날은 음악을 크게 틀어놓고 춤을 추거나 공상에 빠져야 제격이었다. 나는 비틀즈와 퀸 음악을 졸면서 들었다.갑자기 현관문을 다급하게 두드리는 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