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 괴승 대사자 우신의 집 근처 골목에 몸을 숨긴 삿갓 쓴 사내는 대문을 바라보며 두충이 나오기만을 학수고대하고 있었다. 벌써 어둑어둑한 저녁 무렵이었다. 해가 지자 서쪽 하늘에 개밥바라기별이 떴고, 어디선가 개 짖는 소리가 들려왔다. 동쪽 하늘에도 달이 둥실 떠올라 길바닥을 훤히 비추었다. 두충은 우신의 집을 나서면서 조심스레 좌우 주변을 살폈다. 아무도 지켜보는 사람이 없다고 판단한 그는, 말을 타고 천천히 큰 거리로 나섰다. 삿갓 쓴 사내는 그의 그림자를 놓치지 않기 위해 재재바른 걸음으로 뒤를 쫓았다.그러나 큰 거리로 나서
주간운세 (2021년 12월 26일 ~2022년 1월 2일) 12월 27일 ~ 2022년 1월 2일까지 각 일간들이 어떤 오행의 기운으로 흘러가는지를 알아보는 주간 운세를 풀어보겠다.각 일간들의 천간과 그날의 십이 운성만으로 풀이하는 것으로 적중률은 다소 떨어질 수 있다는 점을 인지하고 그날의 오행 기운만을 참고하면 된다. 甲목 일간 월: 약속 변경, 취소, 일이 순리대로 진행되지 않는다. 화: 자영업 수입↑ 덕을 베푼 것이 보상으로 돌아오는 날.수: 문서 계약, 시험 운 좋다. 직장에서 능력 인정받는 날.목: 심리적으로 다운되고
아이의 학교에서 확진자가 나왔다는 소식을 듣고 그러려니 하고 넘겼다. 매일 7000명 이상의 확진자가 나오고 대한민국 국민 중 1/100이 감염된 마당에 학교, 직장발 코로나 전염이 처음도 아니어서 그런가보다 했는데 이번에는 같은 반이요 옆의 짝꿍이라고 하니 조금 심각했다. 그 즉시 아이와 엄마가 선별 진료소에 가서 PCR검사를 받고 다음 날 아침(22일) 보건소로부터 둘 다 양성이라는 전갈을 받았다. 가장 마지막으로 학교에 간 게 17일 금요일이었고 큰 아이도 온라인 수업 기간이라 접촉자가 많지 않아 가슴을 쓸어내렸다. 그 사이에
주간운세 (11월 1일 ~ 11월 7일) 11월 1일 ~ 11월 7일까지 각 일간들이 어떤 오행의 기운으로 흘러가는지를 알아보는 주간 운세를 풀어보겠다.각 일간들의 천간과 그날의 십이 운성만으로 풀이하는 것으로 적중률은 다소 떨어질 수 있다는 점을 인지하고 그날의 오행 기운만을 참고하면 된다. 甲목 일간 월: 고집과 주관↑ 우월감 상승. 吉=승진, 명예 상승. 凶=독단적 성향↑화: 사회적 교류 활발. 적극적, 진취적 성향↑ 고집과 아집은 내려놓기.수: 번거로운 일 예상. 만만찮은 상대를 만날 수 있다. 상생 중요.목: 능력 인정받는
뒷간둥이 / 김주선 “옛날, 옛날에 감자바위 아래 울음도 시원찮은 계집아이가 태어났단다. 온몸에 재를 묻힌 더러운 꼴로 잿간 삼태기 안에서 우는 걸 삼신할미가 안고 나왔지.” 부엉이가 우는 밤. 외할머니의 옛날이야기는 언제나처럼 산파 노릇을 하는 삼신할미 이야기로 시작했다. 마흔여섯에 출산을 한 당신 맏딸의 노산이 얼마나 힘들고 기가 막힌 일이었는지, 탄생이 경사가 아니라 얼마나 남사스러운 일인지를 회상했다. 잦은 병치레로 지어미 등딱지에 붙어사는 외손녀에게 숨을 거두시는 그날까지 똥 묻은 애, 재 묻은 애라고 놀렸다. 나의 출생은
8월 30일 ~ 9월 5일까지 (甲乙丙丁戊己) 주간 운세 8월 30일 ~ 9월 5일까지 각 일간들이 어떤 오행의 기운으로 흘러가는지를 알아보는 주간 운세를 풀어보겠다. 각 일간들의 지지에 어떤 오행을 가지고 있는지를 알 수 없어 천간의 기운과 그날의 십이 운성만으로 풀이하는 것으로 적중률은 다소 떨어질 수 있다는 점을 인지하고 그날의 오행 기운만을 참고하면 된다. 甲목 일간 월: 吉凶이 교차되는 날. 吉=승진. 凶= 누군가를 보살펴야 할 일 있다.화: 관인상생. 매우 바쁜 날 예상.수: 생각은 많아지고 활동성은 떨어지는 날.목: 승
일상생활 속에서 쉽게 쓰이면서 불교와 전통문화가 가진 단아한 매력을 한껏 드러내는 디자인 상품을 공모하는 전통문화우수상품공모전이 올해도 열렸다. 2021서울국제불교박람회 주최측은 지난 5월 25일부터 7월 16일까지 전통문화우수상품공모전 공모를 진행했다.서울국제불교박람회는 매년 전통문화우수상품공모전을 통해 새롭고 참신한 감각의 불교문화상품 및 전통문화상품을 발굴하여 관련 산업의 활성화를 도모하고 있다. 올해는 코로나19 팬데믹 상황에도 불구하고 36점의 작품이 접수되었으며, 8월 12일 전통문화 및 불교 전문 심사위원 5인의 최종
7월 넷째 주 일간별 운세 (7월 26일~8월 1일) 7월 넷째 주는 각 일간들이 어떤 오행의 기운을 받고 흘러가는지를 알아보는 주간 운세를 풀어보겠다.각 일간들의 지지에 어떤 오행을 가지고 있는지를 알 수 없어 천간의 기운과 그날의 십이 운성만으로 풀이하는 것이라 적중률은 다소 떨어질 수 있다는 점을 인지하고 그날의 오행 기운만을 참고하면 된다. 甲목 일간 월: 문서, 이사, 이동 운 있고 활발한 교류가 이루어지는 날이다. 겸손함과 진중함을 갖춘다면 천간 겁재 乙목이 자신에게 유리하게 작용한다.화: 자신의 재능을 인정받아 드러나는
7월 을미(乙未) 일간 별 운세 (90강) 7월은 을미(乙未)로 천간 乙은 음(陰), 오행으로는 작은 나무, 또는 잡초에 해당하고, 지지에 未도 음(陰), 오행으로는 흙이고 동물로는 말이다. 그러므로 乙未의 형상은 양이 초원에서 풀을 뜯어 먹고 있는 형상이다. 보기에는 평화로워 보이지만 未토는 열을 뿜은 흙으로 한낮 뜨거운 대지 위에 있는 양이다. 건드리면 뿔로 공격할 수 있을 만큼 예민해져있다. 7월은 천간 十간 모두 한번 화가 나면 불같은 성격으로 표출될 수 있니 마음 수양하는 것이 가장 핵심이라고 본다. 7월 7일 소서(小暑)
웅진백제시기를 대표하는 왕성으로 2015년 7월에 유네스코 세계유산으로 등재된 공주의 공산성! 웅진백제시기라면(475~538) 라면 고구려 장수왕의 공격으로 한강을 빼앗기고 수도 위례성이 함락된 백제가 웅진(지금의 충청남도 공주시)로 수도를 옮겨 동성왕에서 무령왕을 거쳐 성왕이 사비(지금의 충청남도 부여시)로 이동하기 전까지 64년을 일컫는데 공산성은 그 시절 백제의 왕성이었다. 아득한 옛날 한 나무꾼이 강을 건너 연미산(燕尾山)으로 나무를 하러 갔다. 그때, 큰 암곰 한 마리가 나타나서 나무꾼을 업어 자기가 사는 굴속으로 데리
쾰른 대성당에 내렸다. 기차역이 바로 앞이라 엄밀히 말해 제대로 그곳에 내린 게 맞다. 저녁 7시 검은 구름, 검은 비, 검은 대성당......역을 나서자마자 엄청난 높이와 무게로 나를 짓누르는 거대한 모습에 감격했다. 나중에 알고 보니 오래된 느낌을 간직하도록 건물의 검정 때를 닦지 않는다.기차역에서 서성이는 일본 여자애를 보았다. 밤도 늦어가고 숙소도 정하지 못한 나는 혼자보다 둘이 다니면 더 나을 거 같아서 그 애에게 머물 곳이 있냐고 물었다. 자기도 찾는 중이라 해서 우린 동행했다.잘 곳을 정하자 그녀는 엔틱점에서 산
이어령만 오래 걸린 게 아니다. 참으로 긴 여정이었다. 작가인 이어령이 황홀한 산통을 겪었다면 독자인 난 인고의 행군을 했다. 10년에 걸쳐 저술한 책을 1년에 거쳐 읽었다. 한 장 넘길 때마다 나도 아나필락시스를 지독한 겪었다. 괴테의 을 읽는 것처럼, 도대체 이게 한국말인가 외계어인가 중체 이해할 수 없는 번역의 니체나 헤겔, 아도르노의 서양 철학책을 읽을 때처럼, 아님 서양에서 무슨 상 하나 받으면 최고의 명작이라고 칭송하지만 막상 책을 집어 들면 갸우뚱거리게 만들고 몇 장 읽다 침대 모서리로 던져 버리는 문학상
을축(乙丑) 일주의 성격과 성향 (80강) 육십갑자(六十甲子)의 성향을 알아보는 일곱 번째 시간으로 오늘은 을 목의 첫 번째 을축(乙丑) 일주에 대해 알아보겠다.乙과 丑은 음양으로는 음(陰)이고, 오행으로는 乙은 잡초, 화초와 같은 여린 풀에 해당되며 색깔은 초록색이다. 丑은 습기를 머금은 축축한 흙이고, 작은 밭의 형상이며 색깔은 황토색이다. 丑은 계절로 겨울이며 丑月이 가장 추울 때이다. 그러므로 乙丑일주는 추운 겨울 꽁꽁 언 땅에 뿌리를 내리고 있는 형상이니 끈기가 있고, 밟아도 죽지 않고 다시 살아나는 잡초의 근성을 닮아 억
밸런타인데이다. 사랑스런 시를 쓰는 사랑스런 그녀도 있다. 사라 트래버 티즈데일(Sara Trevor Teasdale)은 1884년 8월 8일 세인트 루이스 미주리주에서 막내로 태어나 1933년 사망한다. 사라는 할머니의 이름을 따서 지었고 출생 당시 20살, 14살 오빠 둘과 17살 언니가 있었다. 언니는 사라를 사랑했고 그녀를 매우 잘 보살폈다. 어머니에 따르면, 예쁜 것에 대한 사라의 사랑이 그녀 시에 영감을 주었다고 한다. 첫 번째 출판된 시는 "레이디의 거울"이었고, 지역 신문에 실렸다. 첫 번째 시집은 1907년 『두세에
적음 형이 여생을 마친 곳은 경북 봉화 땅이었다. 물야면 수직리 야산 기슭의 민가에 일소암(一笑庵)이라는 당호를 달고 살았다는데 무슨 인연으로 거기까지 흘러갔는지는 모르겠다. 다만 기댈 데가 아주 없지는 않았을 것이다. 예전에 시인통신에 가끔 들렀던 화가 부부가 나에게 적어 준 주소도 그 쪽이었고, 멀지 않은 산에 있는 큰 절 주지가 적음 형의 도반이라는 얘기 들은 적이 있다. 그 스님은 절에 들어오는 시주로 적음 형을 도왔을 것이다. 일소암 초기에는 한 보살이 적음 형을 시봉했으나 얼마 못가서 세상을 떠났다는 소식을 들은 적도 있
보살의 나이는 적음 형 또래거나 한두 살 많아 보였다. 얼굴이나 표정은 가수 임주리와 비슷했다. 강한 인상 속에 처연함이 들어 있고, 바보처럼 순진한 표정이 언뜻언뜻 떠올랐다. 음성이나 창법은 가수 김추자와 비슷했다. 그러나 동종(銅鐘) 같은 울림이 있고 비애가 과장되지 않았다. 기성 가수 중에도 그런 가수는 흔치 않을 것이다. 나는 존경을 품고 보살의 잔에 소주를 따랐다. 그리고 한 곡 더 청했다. 적음 형도 옆에서 ‘오늘 더 잘하네. 한 곡 더 해봐라.’ 하면서 거들었다. 한 곡 더 했을 것이다. 아니 두 세 곡 더 했을지도 모
적음 형이 서울 삼청동 총리 공관 인근의 오래 된 단층집 구석방에 살았던 때는 언제였던가? 아무리 생각해 봐도 모르겠다. 내가 도망치듯 네팔로 떠나곤 했던 1991년 이후부터 아주 살러 갔던 1996년 이전일 수도 있다. 내 직장이 세종로에 있었던 1985년 무렵일 수도 있다. 잡지 쟁이는 보따리 장사라는 말도 있었는데, 나는 직장을 여러 번 바꿨다. 한 번 바꿀 때마다 직급이 오르거나 보수가 부쩍 늘었기 때문이다. 내가 직장을 여러 번 바꿨듯이 적음 형의 거처도 여러 번 바뀌었다. 이 산에서 내려오고, 다시 저 산으로 들어갔다가
이상하다... 왠지 방학동에 갈때마다 추적추적 비가 내린다. 그 동네를 걸으며 맞는 비는 평온하지만 왠지 모르게 애잔하다. 근심이 없다는 뜻의 무수(無愁)골이 에워싸면서 세상의 모든 소리와 근심을 살펴본다는 관세음보살의 다른 호칭인 원통(圓通)에서 이름을 딴 방학능선의 가장 높은 곳에 위치한 원통사를 찍고 내려오면 연산군의 묘가 쓸쓸히 자리를 잡고 있는 그곳, 거기에 한국문학의 대표적 자유시인이었던 김수영을 기리는 문학관에 며칠을 벼르고 다녀온 그날도 겨울비가 내렸다.코로나 3차 대유행으로 한달여를 휴장했던 김수영문학관이 거리두기
적음 형이 흑석동 어느 골목에 방을 얻어 살았던 때는 언제였는가? 기억이 뒤죽박죽 뒤엉켜서 갈피를 못 잡겠지만 나는 그 방에서 적음 형이 구술하는 육성 원고를 타자기로 기록하고 있었다. 적음 형은 종이에 제목들만 나열해 벽에 붙여 놓고 내용은 그날그날 즉석에서 만들어 냈다. 나는 늘 한 손에는 타자기, 한 손에는 종이봉투를 들고 적음 형에게 갔다. 방문을 열고 종이 봉투를 내밀면 적음 형은 염화시중 같은 미소를 지었다. 빙그레 웃는 입가에서 곧 침이 흘러내릴 것 같았다. 나는 앉은뱅이 밥상에 타자기를 놓고 앉는다. 내 준비는 끝난
적음 형은 나보다 다섯 살이 많은 1949년생이다. 처음 만났던 1975년에 우리는 둘 다 20대였다. 스물 두 살의 내가 스물일곱 살의 적음 형 시를 처음 읽었을 때 나는 선시를 읽는 듯 신비스러웠다. 적음 형의 시는 한문을 번역한 선시와는 달리 자연스러운 운율이 느껴졌다. 글씨체는 짧고 꼬불거리는 터럭을 모아 가지런히 정렬해 놓은 듯, 여차하면 바람에 흩어질 것처럼 위태로웠다. 그런 적음 형의 서체를 누구는 음모정렬체라고도 평했다. 악의를 가졌던 것은 아니고, 웃자고 한 평인데 딱 들어맞았다. 적음 형은 내 공책에 써 준 자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