당신 이다음 생이 있다면눈사람으로 태어나고 싶다. 한 계절 그것도 잠깐눈이 소복소복 내리는 날당신의 따뜻한 손길로 만들어져오롯이 당신만을 생각하다가사라져 버리는 그런 사람이고 싶다. 당신의 손으로 태어나금방 사라질지라도당신을 위한 위로가 된다면당신의 기억 속에 머문 시간은나에게 커다란 행복일 테니까.한낮 햇살에 녹아버린다 해도나 그리 서운하지 않겠다. 세상에 머문 시간이 짧아아쉬움도 있겠지만당신 안에 머물렀던 기억은나만의 행복이었으니까. 행복은 크기를 잴 수 있는 것이 아니니까.
눈사람 눈이 왔어요.마냥 좋았지요.흐린 하늘에서 내려오는 눈을입 쫙 발리고 받아 먹었고요.너댓번 중에 가끔 한 번씩입 속으로 눈이 들어갔고아무 맛이 없지만 내겐 달콤했어요. 누가 먼저랄것 없이 눈을 굴렸어요.작은 눈덩이가 커지는 것은 금방이었지요.더 큰 눈덩이는 아래쪽에조금 작은 것을 위에 올려놓았죠. 나뭇가지, 솔가지가 눈, 코, 입두 눈뭉치가 살아났어요.눈사람은 차가운 눈이지만우리가 만든 눈사람은 따뜻했어요.눈뭉치를 굴리면서까르르 웃음도, 왁자지껄 소란도우리들 마음도 함께 뭉쳤으니까요. 우리가 자라면 눈사람은 녹겠지요.그렇지만
누름 누른다는 것은주체와 객체가 있을 것입니다. 밥을 하다가 시간이 잠깐 늦으면누룽지가 생깁니다.아마 위에 있는 밥은 주체일 것이고누룽지는 객체일 것입니다. 사랑이란게 지겨울 때가 있지?노랫말을 들었습니다.사랑이 지겨우면 안되는데사랑이 누룽지가 되도록 참았나 봅니다. 누구든지 내 생각이나 자유나 의지를 누를 수는 없습니다.그 무엇이든 내 의지와 상관없이 눌리는 것은자유의 침탈이자 속박입니다. 사랑은 자유입니다.자유로운 사랑은 행복과 만족을 덤으로 줍니다.아름다운 구속은 존재하지 않습니다.지겨운 사랑은 이미 사랑이 아닙니다.
서울의 봄 하필이면 오늘이 12월 11일이다.하필이면 오늘 종일 비가 내린다. 겨울에 내리는 비는 처량하지 않고차라리 잔인하기 까지 하다.아픈 과거를 뼈 속까지 잔인하게 파고 들어 결국 가슴을 후벼 파는 비를 내린다. 나의 20대 초반 청춘은 겨울비 만큼이나 잔인했다.대학 초년시절 계엄령이 세 번이나 발동 되었고불행하게도 나는 그 원인을 다 꿰고 있었다.결과는 비겁하게 살아온 나의 고백이다. 1212 하루 전날 '서울의 봄'을 봤다.내내 가슴은 아팠고 울분은 상한가 게이지를 찍었다.그 놈 연기를 해주신 배우 황정민님께 감사드린다.
세 귀 귀를 열어 두세요.소리가 들려야 말을 배울 수 있듯이귀를 열어야 마음을 들을 수 있습니다. 듣는다는 것은상대의 마음과 내 마음이 어우러진다는 의미입니다.두 악기가 같은 주파수로 울릴 때소리의 하모니가 아름다운 것과 같은 것이지요. 마음의 귀도 열어 두세요.아픔을 들어주는 사람은진심이 통하는 사람이니까요.마음의 귀가 넓을수록더 많은 좋은 친구가 있는 까닭입니다. 이제 생각의 귀도 열어 두세요.생각이 같은 사람만 만나면 좋겠지만세상은 그렇지 못하니까요.다른 생각을 말하는 사람에게생각의 귀를 열어 들어보세요.더러는 그 사람의 말에
우화 세상은 언제나 삶과 죽음이 교차 되는 곳이다.엄청 중요한 일이기도 하고 아주 자연스러운 일이기도 하다.삶과 죽음이 하나인 이유이다. 나비가 되기 위해서는 번데기의 변태가 있어야 한다.껍질을 찢는 엄청난 고통을 이겨 내야 아름다운 날개를 펼칠 수 있을텐데우화는 커녕 나는 자꾸만 나만의 동굴을 판다.우화나 파굴도 하나라는 나만의 변명으로… 나비의 우화는 자유를 찾아가는 희망이기도 하고아름다움을 창조하는 행위이기도 하다.혹은 지구가 지구다워지는 섭리이기도 하다. 자신만의 파굴은 세상으로부터의 도피이다.세상이 자신 없어 회피하는 짓이
숙제 사랑이라는 구슬을행복이라는 쟁반에 담아 사는 삶은참 좋을 일이다. 사랑이라는 구슬은저절로 우리에게 굴러오지 않는다.저만치 혹은 보이지 않는 곳에구슬은 존재한다.눈에 보이는 구슬은 없다.우리가 그곳으로 다가가야 한다. 구슬을 손에 넣었다 해도부드러운 수건으로 닦아 주어야 한다.빛을 더하려면 광을 내도 좋겠다.이 세상에 당연한 것이 없듯거저 주어지는 사랑도 없다. 행복 쟁반은 마음의 넓이만큼 그 크기가 다르다.마음 결이 고운 사람의 쟁반은 여러 개의 구슬을 담을 수 있다.쟁반에 잘 닦인, 반짝이는 구슬이 담기면 서로 잘 어울리겠다
산국 가을이 익어 간다.온통 노랑으로 꽃을 피운 산국이매혹의 향기를 내며 피어난다.이 길의 끝은 만추로 향하겠지만여인의 노란 향기는 코끝에 남으리라. 네 진한 향기의 유혹이겨울을 준비하는 벌들의 부지런한 날갯짓으로 남는다.꽃과 꽃 사이를 나는 벌에게는이보다 큰 보시가 없으리니 산길을 거니는 나그네 발길도 만추로 향한다.
만추 해도 저물면 붉어지듯낙엽도 저물어 붉어집니다. 낙엽이 저마다의 꿈으로 떨어지듯저물어 가는 것은 꿈을 꾸는 것입니다. 내일이 오면 저문 해가 다시 뜨듯봄이 오면 꿈들은 초록으로 피어날 테지요. 가을이 저물어 갑니다.
정 서리가 내렸나 봐요.호박잎이 축 처져 있는 걸 보면 수풀 속에 숨어 있던아직은 덜 여문 호박을 찾았어요. 호박을 갈무리했어요.내 눈에 띄지는 않았지만두어 달 동안 혼자 꿈꾸며 익어 갔을 것이어요. 소중함은 스스로 소중한 게 아니라그 곁에 있는 이를 소중히 여기는 마음이 소중한 것 같아요. 호박을 베고 잠시 누웠더니수많은 이야기가 들려요. 여물어 가는 씨앗들이서로의 이야기를 하나 봐요. 지난여름 이야기랑 추워지는 날씨 이야기랑어쩌면 내 이야기도 할 수 있잖아요. 호박을 베고 누운 잠깐의 시간은한여름 저와 호박이 함께 지낸 시간이
발에 대하여 드디어 허리를 편안하게 눕히는 나만의 시간이다. 나의 이야기는 발가락에서 시작된다.하루 동안 나를 지탱해 준 신체의 모든 부분이 발이다.발가락은 보조 부분이라 생각한다면 그것은 엄청난 오해이다.엄지나 새끼 어느 한 발가락이 없다면 몸의 균형을 잡지 못한다. 욕실에서 양치하고 세면을 한다.어제 샤워를 해서 오늘 샤워는 생략한다.마지막 내 행위는 발을 씻는 의식이다. 예수의 세족례는 거론하지 않으련다.변기 뚜껑을 열고 발을 올린다.경건한 마음으로 샤워기를 발로 향하고 발가락 사이사이를 정성껏 씻는다. 하루 동안 내가 지구를
가을은 가을은 비움의 계절입니다.온갖 풍요를 선물한 가을 들녘은휭하니 부는 바람 한 자락으로 답합니다. 산마다 온통 푸름을 선물한 신록은가을볕에 나름대로 그리움 가득한 낙엽이 되어몸뎅이를 스스로 떨굽니다. 가을은 그리움의 계절입니다.덜 익은 대추마냥 풋풋했던열대여섯 그 애를 생각나게 합니다. 낙엽이 지듯내 인생도 비움으로, 그리움으로가을과 닮아갑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