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 영세 언제 적 제자였나온순하고보일 듯 말 듯 다리를 조금 절었지지금은 한쪽에서늘 그릇 닦는 마음으로시를 쓰고시 쓰는 마음으로그릇을 닦는다니그러나 시는 썩 좋질 않기, 오히려그 마음 얼마나 아름다운가끌리는가 떵떵거리는잘난 이들 잘 쓴 글보다도―웃기는 짜장면들,영세가 빨리 좋은 여자 만나결혼을 하고 가정을 꾸렸으면아들 하나 낳아꿈에도 그린다는 아버지가 되었으면이따금 영세를 통해 시를 다시 보고곰곰 내 인생 또한 생각해 볼 수 있어참 좋다―영세는 세 살 때 교통사고로 뇌수술을 받아 장애를 안고 살고 있다 그런데 잘 쓰지는 못하지만
딱지치기 딱지를 '딱'하고 치니까'딱' 하는 소리가 난다.그래서 딱지인가?
가을 모기 이 안에 당신이 계신 걸 다 알아요.선뜻 나타났다 어디론가 사라지는걸차라리 눈에 띄지 않았으면 모를까. 밤새 무슨 일이 있었느냐고 따지지는 않겠어요.모든 걸 용서할 테니 숨지 말고 나와 주세요. 용서의 의미는 참 여러 가지로 들리는 것이 우리네 삶입니다만...
사랑, 그 사랑 사랑은 사랑이 무엇인지도 모르게 슬쩍 스쳐 지나갑니다. 사랑이 지나간 후에이게 사랑이었나 보다아쉬운 마음으로 받아들입니다. 사랑이 올 줄 미리 알고이렇게 해야지 하는 일은 드믑니다. 지나간 것은 추억입니다.추억 속에 지나간 사랑이 담깁니다.추억이란 내가 지나온 길이고 그 길은 봄빛 가득한 초록의 길이었고비 오는 날 우산도 없이 함께 걸었던 시간이었습니다. 어리석었던 젊음의 객기는누구에게나 있습니다.초록길은 낙엽으로 덮이고 우산도 필요 없게 되었지만지난 것은 부끄럽지 않은 추억입니다. 추억 안에 덜 익은 사랑이 함께하
어떤 아이 열 살 남짓 보이는어떤 여자애한테눈이 참 예쁘다 했더니눈보다 더 예쁜 웃음으로대답합니다.
통일가 참 희한한 일이다.아직은 녹음을 온몸으로 자랑하는 나무가불과 열 사나흘 후면 알록달록 옷을 갈아입고 눈요기를 시킨다니 단풍으로 몸치장하는 까닭을 생각해 본다.젊음의 회한이 남아서 결실을 떨구고때때옷 갈아입고 시집가려나?자식 농사 다 마치고 시집간 딸네 만나러 가려나? 북녘 금강산에 네가 왔다는 소식을 들었다.나날이 너는 아래로 아래로 내려오겠지.내려오는 길에 피안도 아지매, 함경도 아바이 소식이라도 가져오려무나. 너의 불붙는 자태처럼이제라도 평화가 통일을 끌어안고 온다면온 산이 불타오르듯 민족의 염원이 타오른다면한라에서 백두
사과 한 알 사과나무는 커다란 새입니다.한 해가 동안 열심히온 하늘을 날아 수많은 사과 알을 낳습니다. 가을이 익어가는 오늘사과를 맛보았습니다.해님 닮아 붉게 익은 사과를물끄러미 봅니다.내 앞에 오도록 얼마나 많은 수고가 담겼을까? 사과 한 알에 햇살과 바람과 비와천둥과 번개와 이슬이 있습니다.사과 한 알에 구름과 풀 뽑기와 가지치기와 여인의 손길(솎아내기, 봉지 씌우기, 사다리 타서 따기)와남정네의 땀 냄새와 정성이 담겨 있습니다. 사과나무가 낳은 사과 알을 맛있게 먹었습니다.
오손도손 눈이 자꾸만 감긴다.저 위에 계신 엄마가 보고 싶다. 잠들지 못하던 어제 밤뒤척이던 베개랑 요대기 때문일까? 잠기는 눈꺼풀을 치뜨면어찌나 무거운지 도로 내려온다.엄마보다 먼저 저 위로 가신 아부지도 보고 싶다. 엊저녁 먹은 술 때문일까? 잠과 죽음을 연결해 본다.잠들었다 깨지 못하면 죽는 것 아닐까?사후 세상도 생각해 본다.저 위에서 엄마도 아부지도 안계시다면세상사 무의미할 것 같다.그래서 인간은 종교를 만들고자기가 만든 종교에 복속하며 살아가는 것이다. 죽음과 잠의 의미는 큰 차이가 아니다.잠을 오랫동안 자고 깨어나지 않
겨울, 생극에 가다 갑작스런 강추위에 귀싸대기가 얼얼하다골짜기 야산 억새 더미눈 부스러기에 뒤덮여 반짝이고새로 생긴 생극 추모공원저마다 숨소리 죽인 납골실마치 대학교 도서관 같다망자들 칸칸이 빼곡하다꽃무더기 속에 묵주알 속에 파묻힌아무것도 아닌 사람들이름과 그 길고 짧은 생몰 연대와한창때 스냅사진들읽는다, 짧을수록 천천히(그러나 다들 책 놓은 지 오래된 우리들인데보아하니 먼지나 털어 주는 겔 게다)어렸을 적 늙었을 적 처녀 적 학생 적살았을 때 가장 좋던 시절 택해누구랄 것 없이 활짝 웃고 있으니! 오히려 가슴 애려어정어정 걸어 나
동안(童顔)내 얼굴 속에는가난이 없구나 어둠이 없구나 굴욕이 없구나 망가짐이 없구나 야비함이 없구나 시들어빠짐이 없구나 철저한 짓밟힘 처절한 헤어짐이 없구나 떠내려감이 없구나 미워함, 표독스러워라, 불붙는 증오가 없구나 굵은 뿌리 꿈틀거리는 절규와 절망 아우성이 없구나 욕정의 흙탕물 넘쳐흐르는 엉망진창이 없구나 아픔도 괴로움도 투쟁도 갈등에 찢어짐도 없구나 시샘의 시궁창 악취도 없구나 하다못해 나태와 방종 싸구려 분내도 없구나 내 얼굴 내 영혼 읽을거리가 없구나 수염 뽑히고 침 뱉고 모욕이 없구나 아무리 봐도 기쁘고 성스러운, 모욕
라파엘라 내가 누구예요몇 살이나 먹었나요여기는 어딘가요 어떻게 나가요문 하나 열 줄 모르는구나곱게 늙으셨는데되게도 똑똑하셨는데벌레 한 마리 죽이지 못하셨는데개망할라니욕을 욕을 밥먹듯이 하시는구나그 많던 세상 지식 지혜 다 잊어 버려숟가락이라 여기셨는감안경으로 밥을 떠먹으시네마침내 홀딱 벗곤 가방을 옷이라자꾸 입으시는구랴외로우면, 다 떠나가고 외로움이 뼈에 저미면때갈스러워지는구나 뻔뻔스러워지는구나남사스러버라! 그 가방나도 함, 입고 싶네요 시작 메모추석날 한 친구한테서 전화가 오기를, 시방 밖에 달이 아주 좋다고 거기도 달이 떴냐고,
피카소 사진관 - 마혜경 그곳 바닥에는 깨진 거울이 있었고파편들은 대체로 누워있었다문득 내가 궁금했다빛이 예리하게 바닥을 지날 때다행히 두 눈동자만큼은 조각의 한가운데 자리 잡아잘리거나 어긋나지 않았으며어제를 재연하듯 다소 경직되었다스틸사진과 닮았다고 생각을 한 게아마 시계에서 조각조각 소리가 날 때였을까 그곳 바닥, 거울 눈동자 속에서시간이 찰칵 조각나고빛은 표정을 지우고 있었다두 눈동자만큼은 사라지지 않고정면을 응시한 채 기억되고 있었다내가 조각나고 있었다
고바야시 잇사(Kobayashi Issa)는 일본 에도 시대 시인으로 1763년 6월 15일에 태어나 1828년 1월 5일 세 번째 뇌졸중으로 쓰러져 사망한다. 1827년에 죽었다고도 하나 1828년이 맞는 듯하다. 외래어 표기법으로 코바야시나 이사, 잇샤는 잘못이다.본명은 고바야시 노부유키(Kobayashi Nobuyuki)이며 우리나라에서 본명으로 알려진 고바야시 야타로(Kobayashi Yataro)는 어릴 때 이름이며 그 이름으로 많이 불렸다. 일본어는 한글 순서와 같아서 고바야시가 성이고 노부유키가 이름이다.2020년 1월
추억 오징어를 씹는데추억이 씹혔다.때로는 엉뚱한 일로 과거를 연상하기도 한다.추억을 떠올리는 것은 아름다운 것만은 아니다. 세면대에 서서 세수를 하려는데늘 하던 일에 깜짝 놀랐다. 거리가 너무 가까운 거다.익숙하다고 자신 있어 한 내 불찰이다. 추억은 머리로만 떠올는 것이 아니라는 걸오징어가 나를 깨우쳐 줬다.세면대가 일상을 되돌아 보게 한다. 슬프면 울고, 아프면 아프다고 할 일이다.내게 일어나는 모든 일들을시간이, 세월이 알아주지 않는다.익숙한 것에 경계를 삼을 일이다. 때로는 오징어가 과거의 아픔을 치료해주고세면대가 내 추억을
구학산과 주론산 능선을 넘어가는 새로 뚫린 임도에 서서 세상을 본다북녘을 향해 두 팔 벌려 서면왼쪽 방학리의 벌판과 오른쪽 옥전리의 비탈밭벼를 베거나 고추를 따거나 기쁨보다 한숨 깊은 수확의 계절경계에 맞닿은 파란 하늘로 뭉개구름 번져나가고'오징어게임'이 세계 1등 드라마가 되는 시간'돈 없으면 집에 가서 빈대떡이나 부쳐먹는' 낭만조차 사라지고대한민국 20대 대통령을 선출하기 위한 경선 잔치 한창이다화천대유 천화동인 적반하장 후안무치 마녀사냥 네거티브 마타도어 시끄럽다대장동 부동산에서 뿜어져 나오는 꿈도 꾸지 못하는
바람 바람은 시간과 공간의 이동이다.여름을 지고간 바람이 가을을 이고 온다.나락을, 과일을, 추억을, 사랑을 머리에 이고삼라만상 모든 이에게 안긴다. 역사의 시간은 과거에서 현재, 미래로 불지만바람의 시간은 미래에서 불어오기도 하고과거로 나를 데려 가기도 한다. 차가운 곳에서 따뜻한 곳으로의 공기이동이 바람이라 배웠지만어느 순간 나를 해변으로, 들판으로 이동시킨다.추억에서 추억으로 바람이 분다. 마음 안에도 바람이 분다.눈물이 나도록 서글픈 사랑에도.가슴 따뜻한 온기 속에도 바람이 분다. 바람이 있기에 잊기도 하고바람이 있기에 떠올
시간, 강물, 그리고 배 시간은 도도히 흐른다.역사란 시간 위에 얹혀 진 사건일 뿐이다.나의 일상도 작은 역사일 뿐이다. 강물과 시간은 많이 닮았다.강물은 중력에 의해 높은 곳에서 낮은 곳으로 흐른다.시간도 중력이 있는 것은 아닐까?시간은 지구의 자전과 공전의 산물이다.시간의 중력은 없지 않을까? 물은 흐르며 굽은 대로 막힌 대로 그냥 흐른다.메마른 땅에는 충분히 스미고 난 후에야 흐른다.시간도 흘러가며 스민 조각이 있을 텐데나의 역사에 스민 시간은 어떤 조각으로 남아있을까? 강물 위에 배가 떠 있다.시간 위에 떠 있는 배에 나는
은화(隱花) 서녘에 해는 노루 꼬리만큼 남았는데 남자는 옹기짐을 지고 아낙네는 얼라를 업고 머리에 곡식 자루를 이고 구불구불 솔맹이 긴 고갯길 오릅니다 아직 시오리는 더 가고 게서 곁길 접어들어 초군길 자욱 더듬어서도 한참 그제야 비로소 마을에 닿습니다 마을이래야 헛간 몇 채와 오막살이 칠팔 호가 고작 그 곁으로는 옹기 가마가 기다랗게 누워 있는 점말 숯말로 천주교 교우촌입니다, 그곳에서 하루 나물죽 두 끼로 때우며 천주를 위해 조석으로 기도하고 사주 구령에 열심히 힘쓰니 나날이 행복합니다, 둠벙골 느더리 정삼이골 삼박골 새미랑이
추모 미사 지금 경제도 안 좋잖아이제 그만둘 때도 됐잖아라고들 하지 마세요, 그리고 거기자꾸 화장실 뒤에서 담배 피지 마세요아유 증말 또다시 4월이 오고하나 하나 하나 하나엊그제 별이 된 그 녀석들나 이 밤 미사성체를 모신다슬픔과 위로의 마음손톱만큼이라도냈으면얻었으면 제발인간 망종은 되지 말았으면 시작 메모미사가 끝나고 독수리 몇몇, 성당 그 화장실 뒤에 모여 뿌시기 한 대들 피며 얘기합니다. 독수리들은 겉은 멀쩡한데 속으로 심한 우울증이나 깊은 정신병을 앓고 있습니다. 난 아무래도 결혼 못할 것 같애. 나도 그래. 그러며 찍찍들
ㅠㅠ, 2015년 11월 12일 1.어두운 바닷속 가슴 아픈 시간들귀기울여 들어보면 그대들 마음은 언제나괜찮아요 ㅎㅎ 왜 이리도 천사 같냐깊은 바닷속 그리운 이름들눈감고 읽어 보면 그대들 영혼은 언제나미안해요 ㅠㅠ 왜 이다지 꽃다울까 나 그대들 위해 그대들에 대해아무것도 이해하지 못하고 진정 아파하지 않았으며사랑하지도 그렇다고 싸우지도 못했는데살려 주세요 밝혀 주세요 목이 터져라 외치지도 못하고날뛰는 파도 빤히 바라보면서 우리 어느 누구 하나 뛰어들어 건져 주지 못했는데잘못만, 온통 잘못만 했을 뿐인데 그저 부끄러울 뿐인데이제 보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