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면하소서 기품이라는 것은 눈에 보이는 것이 전부가 아니다.내면에 가지고 있는 공력과 어우러진 것이어야 한층 돋보인다. 설원에 우뚝우뚝 고귀한 자태를 뽐내며 서 있는 자작나무를 본다.백설과 어우러진 백색의 표피가 눈에 띈다.백자작의 기품이다. 껍질을 벗겨 불쏘시개로 사용하면 자작자작 소리를 내며 잘 탄단다.누군가를 위한 불쏘시개가 된다는 것은 자기 희생이다. 외양의 아름다움보다 내면의 미가 그를 더욱 돋보이게 하듯이자작나무의 희생이 나무의 미를 더한다. 그깟 일계급 특진이나 옥조 무공훈장 따위가 무슨 소용이랴.타인의 생명을 구하려던
부네* 달 삐뚜름 둥글넓적배라먹을야밤 하늘 우묵구렁바가지 낯빤대기이쁘게도 떴네쌍것 중에 쌍것이장에서 돈 훔치고콩 훔치고 팥 훔치고부지깽이 훔치니오, 이보다 더 깨끗할 수는 없어얼씨고서푼어치 화냥 웃음까지실실 쪼개는 데야흘리는 데야 말뚝에다 치마만 두른 지집일지언정 * 하회굿놀이에서 양반, 선비, 중과 놀아나는 여인네 시작 메모내 아직 더더욱 가난해질 수 있으니, 괴로워질 수 있으니, 하찮아질 수 있으니, 미약해질 수 있으니, 천해질 수 있으니, 어디 가서 바가지로 욕 얻어먹을 수 있으니, 깨어질 수 있으니, 헤퍼질 수 있으니, 천박
김정은은 한국문인협회 시인이다. 새해를 맞아 신선하게 한국 시인의 시를 영번역해보았다. 숙명여자대학교 국어국문학과에서 김남조 시인 님에게 시를 배우고 신달자 수필가 님에게 수필을 배웠다. 서강대학교 대학원 철학과에서 니체 논문 준비 중 세계 여행에 빠져 수료했다. 세계를 빛낸 명작가를 연재하고 있는 필자 본인이다. 세계를 빛내진 못 했지만 빛내고 싶은 작가이다.시를 잘 짓는 문학소녀인 어머니와 군인인 아버지 밑에서 초등학교를 매년 옮겨다녀서 6년 내내 7번 학교를 옮겼다. 같은 학교를 두 번 다닌 적도 있다. 다른 자매는 전학이 스
개떡 꽃잎은이슬 먹고 새들은버러지 먹고 우리야개떡 먹지 개떡오누이 시작 메모작년, 오랜 벗 김문영이 시집 를 냈다. 이젠 거의 꺼져가는 듯한 촛불 혁명에다, 더해 괴롭고 울적한 코로나 시대까지, 친구는 시집 속에서 온몸으로 부딪히며 이겨내고자 절규했다. 그런데 문영이와 우리는 작고 못나고 찌질하고 외롭고 우둔 우직한 저 개떡 세대이기에, 꽃잎은 이슬들 먹지만 우리야 개떡 먹었기에, 따라서 어떤 어려움이든 거뜬히 이겨낼 수 있기, 나는 그 시집 해설도 다음 시로 갈음했다. 개떡들의 노래 코로나여빨리가라그리하여
면봉 귀 소지는 하지 말라는 이야기가 있다.어디 쉬운 일이겠는가?간지럽고 답답해서 못 견디지.양지바른 마루에서 엄마 무릎 베고 누워엄마가 귀소지 해주던 추억이 떠오른다.엄마 생각만 하면 저 아래서 울컥 올라오는 건 이제 엄마 뵐 날이 멀지 않아서 겠지.잠이 들락 말락 할 때쯤 돌아누우라시던 말씀이 아련하다. 나무로 된 면봉으로 귀를 후빈다.침을 손바닥에 묻히고 면봉을 또르르 굴린다.귀 청소를 하는데 시원하지 않아조금만 힘을 주면면봉은 기다렸다는 듯이 똑 부러진다.부러진 면봉 중에 남아 있는 조금 긴 것으로 귀 청소를 한다.안부러지고
육손이 아무도 몰래돔부콩을 만졌구나돔부 냄새 가득한 손 육손이가늘게 떨리는손가락 여섯 개 회초리로때리니 쳐다보는 얼굴엔주근깨만종종종 아얏 소리 한 마디 없어라 시작 메모몰골은 그야말로 해괴하고 말주변까지 없어 더더거리는데 꼭 쥐는 그 손은 부드러워, 너무나 부드러워서 눈물이 찔끔 나더라. 그렇게 부드러운 손은 난생 처음이더라. 온갖 미움도, 아픔도, 기쁨도, 슬픔도, 똥고집까지 다 무너져 버리더라. 부드러워, 하염없이 부드러워 젠장, 똘똘 사린 똥고집까지 다 무너뜨리는 힘 센 손. 저 착한 육손이 손에 별을 쥐어 줄까, 꽃잎을 쥐어
소복소복 밥그릇에 흰 쌀밥이소복소복 봄볕에 새 나물이소복소복 나뭇가지 가지마다 꽃들이소복소복 장독대에 흰 눈이소복소복 아이들 예쁜 마음도소복소복
고무신 둥긋하니 안짱다리황소고집 아버지 깜냥 왼짝 코는 오른짝 코로오른짝 코는 왼짝 코로 가생이짝은 안짝 삼아안짝은 가생이짝 삼아 너덜짝일랑 두덕짝 되게두덕짝일랑 너덜짝 되게 오래오래 신고자 길동무나 삼고자그예! 바꿔 신었나 보이 초생달 걸음걸음강화 수무김치 트림에돌단풍 잎사귀 즈려밟으사 시작 메모황순원의 엽편 소설(아주 짧은 소설) ‘주검의 장소’에 나오는 우직한 산골 농사꾼 모습도 떠오르고, 강화도 작은 섬에 사는 우리 형님 모습도 쓰고 싶고, 김소월 에 ‘사뿐히 즈려 밟고 가시옵소서’라는 구절도 떠오르고. 저 엽편
무게 뉴튼인가? 뉴턴인가?사과 이야기는 아닙니다. 지구상에 존재하는 모든 것바이러스를 포함한공기가 있는 곳에는 중력과 인력이 존재합니다. 나도 숼찮은 몸무게로 살아갑니다.살덩이, 핏덩이의 무게 이야기는 아닙니다. 인종, 피부색, 민족, 종교, 빈부, 학력더 많은 경우의 수를 포함한 모든 인간의 질량은 같습니다.인간이라는 무게사람답다는 권리우리는 이것을 평등이라 부릅니다. 오늘 저녁이 막 시작되는 시간에모든 인간의 질량은 같다고 생각했습니다.겸손해지려고 술 한잔 따랐습니다.
좋은 하이쿠들이 많아 올해까지 정리하고 싶어 3명의 3개의 하이쿠를 소개하고자 한다. 일본어를 영어로, 영어를 한국어로 다 필자가 번역했다. 홍시, 너도 젊었을 때는 떫었다는 소세키의 유명한 하이쿠도 있지만 『나는 고양이로소이다』라는 소설이 고양이가 주체고 주인을 보는 시점이 독일 소설을 모방했다는 말이 있어서 다루지 않는다.하이쿠는 제목도 없고 일본어나 한자는 띄어쓰기가 없어 띄어쓰기 없는 한 줄이나 시적 모양새를 위해 3행 처리했다. 한글도 서재필의 ‘독립신문’ 나오기 전엔 다 붙여 썼으나 아버지가방에들어가시다가 돼서 최초로 캐
반려견 구름이와 함께 걷는 새벽 산길눈발이 날린다구름이는 흩날리는 눈을 뚫고 흥겹게 앞 뒤로 뛴다구름이는 흥겹지만 나는 초조하다전염병 위기가 몰고온 생존의 불안굶어 죽으나 병들어 죽으나 죽기는 마찬가지라는 푸념이 성을 쌓고타들어가는 가슴은 새까맣다닭 울음도 멈춘 새벽 초조한 마음 너머로 먼동이 튼다산맥은 꿈적도 않는데 긴장된 시간은 자꾸 흐른다기다리면 해는 뜨겠지만 그러면 또 살게 될까일상이 달려올까언 땅 딛고 선 무릎 위로 세찬 눈보라 몰아치고시린 가랑이 사이로 찬 바람에 실려 희망 한무더기 빠져나간다기다리면 될
눈사람 누운 사람도 눈사람똥 눈 사람도 눈사람하얀 눈이 내려도 눈사람 내가 제일 좋아하는 사람은소복소복 눈사람
백 남 기 열사여 ! 백남기 열사여그리움으로 불러봅니다.부끄러움 무릅쓰고 불러봅니다목이 메어 목마름으로 불러봅니다 백남기 열사여역사의 한복판에서민중역사의 머릿돌이 되신 열사여 전봉준이 역사였고여섯 열사님들이 역사였고전태일이 역사였고광주항쟁 열사님들이 역사였고박종철 이한열이 역사였듯이백남기가 역사입니다 우리는 오늘 여기서다시금 되새기고 다짐합니다 어제부터 오늘까지,오늘부터 내일까지백남기는 역사입니다 박정희 유신독재와의 싸움 ---박정희 딸 박근혜독재와의 싸움 ---당신이 지난 세월 젊음을 바쳐 싸워왔고평생 동안사람사랑, 흙사랑, 우리
기온 급강하 모든 것 얼어붙는 산촌집집마다 문 꼭꼭 걸어잠그고바람 한자락 스며들지 못하도록 단도리하는 손길 바쁘다골짜기 가득 채우던 고라니 울음소리도 들리지 않고둥지찾아 허둥대던 새들도 날개 접는다나는 추위에 떨며 이육사의 시를 생각한다강철로 된 무지개 겨울 절정의 시간배신과 배반의 인물, 청산 대상 적폐가 대통령을 꿈꾸고후보와 후보들 비리가 들춰지고 폭로되고협잡과 악다구니가 혼란을 부채질한다점점 더 코미디가 되고 있는 정치대선 정책 공약 온데간데 없고주변 들춰 물어뜯는 아비규환 확대 된다멈출줄 모르는 코로나19
형!백 남 기 형 ! 부끄러움으로그리움으로형의 이름을 불러봅니다 그때 그 죽임과 죽음의 아픈 기억으로부터이 거룩한 의혈탑 앞으로어서 오세요 불러봅니다 “그만해~ 그만해! 이제 그만...”평화의 몸짓으로 만류하던 비폭력 농민,형을 과녁 삼아 쏘았다니!직사포!형을 노리고 노려 쏘아댄 직사포!기어코형의 정수리를형의 머리통을정통으로 때려버렸네요! 저들은, 저 양심 구제불능 총잡이들은죽으라고 쏘았으면서 거짓핑계를 둘러대곤 했지요저들의 비굴한 거짓에 맞서저들의 더러운 위선과 위악을 깨면서부검운운, 시신탈취, 강제집행을 막아내며농민형제들 민주후
식구 울 밑꽈리 누나 길섶까마중 형 오늘도 빨강 코씀바귀 아부지 뉘엿뉘엿 해는 지고올갱이 식구들 아차차니저발엿고자 진한 초록 사발익모초 엄마 시작 메모 그게 이제 저 육십 년 전이구나. 누이들은 울타리 꽈리나무에 꽈리를 따서 입에 넣고 불며 놀았다. 늘 배가 고픈 형과 우리들은 뻑하면 길 가 까마중이나 보리밭고랑 깜부기를 훑어 먹기 일쑤였다. 소주에 절어 살던 아부지. 개다리소반에 달랑 그 쓰디쓴 씀바귀 무침 한 종지를 안주로 삼는데 취하면 새빨갛게 달아오르던 코가 가장 무서웠다. 아직도 선하다. 뉘엿뉘엿 해거름 저녁이면 냇가에 돌
사랑 내 안에 꽁꽁네 안에 꼭꼭넣어 두고 감춰 두는 게사랑이 아니야. 산을 보려면멀리서 봐야 해. 조금 멀리 서 있는 것은내 안에 네가네 안에 내가얼마만큼 소중한지 궁금해서야.
뿌리와 줄기 무시하는 일상이 활개치고곁가지 붙들고 몸부림치는 아우성에 우수수 나뭇잎 떨어진다나의 잘못은 로맨스고 당신의 잘못은 불륜인 세태정치는 점점 코메디가 되어 배꼽잡으며 구경하느라시나 소설은 한 개도 재미 없다연예인과 정치인의 경계가 허물어지고기득권 지키려는 사악이 정의가 되는 세상힘들고 어렵게 무수한 피 흘리며 군부독재 끝냈더니군인이 있던 자리 검찰이 대신하여 검찰독재 하겠다네없는 죄는 만들고 있는 죄는 없애는선택적으로 수사하고 선택적으로 기소하는무소불위 권력 괴물 공룡이 된 검찰자신을 임명한 대통령의 등에 칼을 꽂
조캉* 주륵 코피 한 줄기 흐른다새도 나무도 풀 돌도더는 살 수 없는 매캐한 곳가장 높은 곳에 불현듯가장 낮은 얼굴들 산다수십 수백 성스러운 누더기들이땅바닥 가득두 무릎을 바치고두 팔꿈치를 바치고이마를 바치고마침내 입술을 바친다쭝얼쭝얼, 숫제 구린내 향 떨치며목이 메네요! 세상 끝에 맺힌낯 검게 탄 이슬들이여잘 먹고 잘 입는 것쯤다 똥으로 여기는 이들 웬걸똥보다 못하다 여기는 이들 이들한텐 더러운 것이야말로 깨끗한 것깨끗한 것이야말로외려 더 더러운 것이제 평생 버러지 한 마리 죽이지 못할 듯한저 아래 땅바닥 눈망울들나를 우러르는 데
시래기 모든 것을 내어 주고 나면허전해지는 것이지만껍데기뿐인 너는 그렇지 않다.마치 부모가 자식에게 그리 한 것처럼 뿌리에 붙어 쓸모없어 보이지만너는 기필코 다시 태어나고야 만다.넌출 넌출 넓다란 잎은여인의 억척에 거두어져소금 한 줌 넣은 끓는 물로 들어간다.여름을 견디느라 그간도 뜨거웠을 텐데... 건져 올려진 너는 두 가지로 변한다.하나는 몇 자락 남지 않은 가을볕에 널리거나다른 하나는 도마 위에서 칼질 종종 받아 비니루 봉지에 담겨 삶의 터를 냉동실로 옮긴다.겨우내 너는 된장을 만날 것이다. 가장 귀한 이들의 껍데기가 되고 싶