착하게 굴러갑니다- 마혜경 손수레가 지나간다 꽃 한송이 다가온다 납작한 가슴, 옷핀 하나에 매달린 꽃, 바람에 흔들린다. 매정하게 뗄 순 없지 애가 준 걸. 할머니가 가다 선다. 꽃이 가다 선다. 활짝 피는 일은 갈 뿐 서지 않는다 골목에 숨은 어둠이 이름을 부른다 꽃은 귀를 막아 뒤돌아보지 않는다. 홀로 키운 손녀딸, 기죽지 마라 그 할머니 죽지 마라. 삐딱한 무게중심 핀 하나에 매달려 굴러간다 할머니 이거 오백 원, 여기서 주웠어요. 아니, 거기 그냥 둬 요즘 애들 줍는 재밀 통 몰라. 흙 묻은 동전 둥근 바퀴 노을을 밟고 굴러
오늘은 젊은 시인 윤동주 님의 기일이다. 아름다운 청년으로 오래도록 우리에게 남길 바란다.『아무도 미워하지 않는 자의 죽음』, 독일 책 『백장미』를 번역한 한글 제목이다. 번역자가 정한 제목인 듯한데 내용과 너무 잘 맞는다. 독일 치하에서 레지스탕스를 한 의대생 한스와 여동생 조피의 삶과 죽음을 다른 형제가 쓴 글이다. 백장미는 그들의 활동 모임 이름이다. 책을 읽고 평생 세 번 울었는데 그중 하나다.아무도 미워하지 않는 주체는 누굴까? 주인공 조피가 남을 미워하지 않는 선한 자란 뜻인가, 모든 사람이 미워하지 않는 조피란 건가.
키가 큰 아침 - 마혜경 송도 국제도시 초고층 호텔꼭짓점을 피해 앉은 외국인들이 같은 아침을 먹는다냅킨으로 입술을 두드리고 에스프레소를 마신다무례함은 에티켓이 될 수 없다얌전한 척이라면 몰라도 따분한 아이들이 모여 숨바꼭질을 한다노란머리가 술래인데 검은머리 아빠가 일어선다검은머리가 들켰는데, 노란머리 삼촌이 곱슬머리를 가리킨다 얌전을 모르는 아이들얌전빼는 어른들같은 아침을 먹어서 같은 소리로 웃을까 세상이 인정한 소란68층에 깃발을 높이 꽂았다
허기 ? 허끼 배가 고프면 허기라고 합니다.마음이 고프면 허끼라고 하렵니다. 젖배로 배고픈 시대를 지낸 나는 식탐이 많습니다.때가 되면 꼭 먹어야 합니다.숙취 아침에도 무언가를 느~야 하루를 견딥니다.여북하면 삼식이 새끼라는 말도 듣습니다. 배고픈 건 참을만하다고 말하는 놈들이 있습니다. 배고파 본 적이 없는 놈이지요.배고픈 것보다 더 힘든 건 허끼입니다. 사랑을 잃고 힘들어하는 사람은 정신줄을 놓기도 합니다.마음이 고파서입니다.마음의 허끼는 마음이 메워 줍니다.사람에게 받은 상처는 다른 사람으로 치유되는 이치와 같습니다. 사랑으로
어미 부엉이가 짠하다. 말 못하는 미물도 저리 새끼를 애잔하게 돌보는데 그렇게 큰 자식이 부모를 외면하는 건 벌받을 일이다. 부엉이 발에 찬 띠가 자식에 대한 족쇄처럼 느껴진다. 양태철 시인의 부모님에 대한 시가 감동이다.바람소리를 듣는다나무가 보낸 바람 소리.마지막을 이처럼 마무리하면 부모님이 보내는 소리가 간결하게 더 연상되서 감동을 줄 듯 하다. 갑자기 확 깼다가 나오니 시의 흐름이 깨진다. 가을날 아침 양태철(양하) 바람소리를 듣는다몸의 촉수마다마다에서 가지고 있던 가락들을 흔들어 깨운다.그것은 아버지가 즐겨 부르시던 소리가
밤하늘 별시시껄렁왼갖 푼수데기시러배잡녀르눔들서껀야들아,오늘따라다 뫄코야오도방정에월려?니미룩내미룩육갑꼴값궁시렁다 떨어 쌌남들 시작 메모오륙십 년 전 아주 어렸을 때, 우리가 가장 어렵고 못살았을 때, 노상 꿀꿀이죽으로 아침 점심 저녁 때울 때, 그러나 가장 행복했을 때였구나. 사상도 없고 주의 주장도 없고 신념도 없고 배움도 없고 가치도 없고, 그래서 그때 밤하늘은, 별들은 저렇게 아름다웠구나. 생각나는 대로 느끼는 대로 하고 싶은 대로 내키는 대로, 누가 뭐라 하든 말든. 그땐 뒷골도 이렇게 묵직하니 땡기지도 않았지. 그리웁다. 하
성묘누가 이야기 했답디다.고향은 땅이 아니라 사람이라고.고향 친구를 만났습니다.녀석 하는 말이 시간은 타원형으로 흐른 답디다.잠깐 한졸음 했더니 금새 네 시간이 지났고요.나이 먹어가는 내 시계도 점점 빠르게 지나갑니다.고향에 왔습니다.고향에 왔지만 내 마음 속 고향은 산에 계시고다른 고향인 친구랑 친척을 만났습니다.내일은 엄마랑 아부지를 만나러 가겠지요.내 고향, 땅이 아닌 사람을 땅으로 뵙겠지요.현존의 실체와 존재했던 실체를 생각해 봅니다.니체를 떠올리고 실존철학을 되집어 봅니다.신앙이라는 문제도 더불어 생각해 봅니다.어머니라는
입춘대길산에 오른다.늘 마음에 새기는 말이지만산 앞에서 겸손해지는 것이 나의 습관이다.산이 나더러 오라하지 않았고오르라 허락하지 않았다.그냥 원래 그대로 거기 있을 뿐이다.사람을 만나고 관계를 맺는 일도 산에 오르는 마음으로 임할 일이다.제 아무리 높고 험한 히말라야라도사람에 비할만큼 큰 산은 없다는 생각이다.수많은 길을 만나고 수많은 시간이 흐르고 수많은 우여곡절을 겪는 것이 사람이라는 산을 넘는 일이다.입춘이 지났다.입춘첩을 거꾸로 붙였나보다.영하의 매서운 한파가 분다.봄이 멀지 않았음이지만 추위가 매섭다.일기도 인생을 닮은듯하
이리 갈까저리 갈까차라리 돌아갈까사람들은 제각기 다른 생각과 인식을 지니고 살아간다많이 아는 사람은 많이 아는 만큼조금 아는 사람은 조금 아는 대로자신의 잣대로 세상을 바라보고 판단하고 행동한다아는 만큼 보이고 보이는 만큼 행동하는 것이 상식이다그러나 때로 자세히 보면 상식을 파괴하는 경우도 많다많이 알지만 사악한 사람이 있고조금 알고도 선한 사람도 있다많이 알면서 겸손한 인간이 있고조금 알면서 잘난체 하는 인간도 있다양심이 바로 서고진실과 정의가 강물처럼 흐르는 세상은 어디에 있을까세상은 왜 자꾸만 잘못된 방향으
물구나무서기- 마혜경 나무는 하늘을 바라보는 것이 아니다어둠을 파헤치고 땅을 보는 것이다흙이 고집을 버리고 길을 내어주면조금 수월해질 뿐이다막무가내로 나아가면 안 된다물러난 만큼 다가가고 기다려야 한다빈자리에 헝클어진 머리를 대고새 살이 차오르듯흙이 다가올 때까지 오래 기다려야 한다. 하늘을 바라보는 것이 아니다종이와 펜을 잡은 시지프스는 나무가 그랬듯이 안을 바라보는 것이다 달이 깨진 자리여우가 숨은 사막에서홀로 별이 되는 것이다 다만 푸른 나뭇가지만이 손목을 비틀어이 소름 끼치는 사연을 시인에게 수신할 뿐이다
편지누나!이 겨울에도눈이 가득히 왔습니다. 흰 봉투에눈을 한 줌 넣고글씨도 쓰지 말고우표도 붙이지 말고말쑥하게 그대로편지를 부칠까요. 누나 가신 나라엔눈이 아니 온다기에. LetterSis!Also in this winterit snowed a lot. In white envelopeputting handful of snowwithout writing anythingwithout putting stampneatly as it iswould I post letter? In country you wentbecause not snow
돔부 할미 지호맹이랄거! 끽뿌시기 한 대 피우곤 한 홉큼비뚤어진 손마디로하염없이 쓸고 앉았네 밥에 놔 먹으라고아주 달다고 보은 버스 차부 앞에해거름고동색 뙤약 얼굴들 그잘난 시작 메모생선 채소 나물 곡식 약초 국밥 막걸리 신발 모자 옷가지 병아리 강아지 잡동사니 다 좋다만, 막걸리 한 사발로 점심 때우고 미처 팔지 못한 돔부콩 한 줌 펼쳐놓고 쭈구리고 앉은 노을녘 할매들 저 서글픈 모습에랴. 그러나 그런 할매들 이젠 보은 장에 가도, 청산 장에 가도, 괴산 장에 가도 찾아보기 어렵다.
일하는 아이들 새 쫓고 애 보고꼴 베고 쇠죽 쑤던 아이들이 새 쫓고 애 보고꼴 베고 쇠죽 쑤던 마음들을 순전히새 쫓고 애 보고꼴 베고 쇠죽 쑤던 말로다 썼네 삼십 년 전안동 시골 학교 이오덕 선생님이 엮은일하는아이들 케케묵어 너덜너덜해졌지만책상 위에 놔두면 누가 훔쳐 갈세라가슴도 졸이면서읽고 또 읽던1990년도 삼천 원짜리 작은 책 거기서 시를 알았고머리 허얘아직도 거기서 시를 배우네 시작 메모두메산골 초등학교 아이들이 쓴 글을 모은 은 내가 만난 가장 아름다운 마음들이다. 소 먹이고 나무 하고 담배 심고 마늘 캐고
고백 사람들이 살아가는 지구는 하나가 아닙니다.사람 하나가 지구입니다.어쩔 때는 사람이 우주이기도 합니다. 세상이라는 널디 넓은 공간에 놓여진 나는 미약합니다.길다면 긴 삶을 산 저로서는 달리 공부할 것이 없을 듯합니다. 두 가지 공부를 다시 하려고 고백합니다. 하나는 운전입니다.면허 후 운전한 시간이 30년이 훌쩍 넘었습니다.과속 스캔들 주인공이었음을 고백합니다. 다른 하나는 술입니다.남자 문화란 가부장 문화이고남자다운 문화는 폭음이라는 어리석음으로 젊음의 낭비했습니다. 이제 지구의 일원이고자 합니다.우주의 주인이고자 합니다. 나
닭울음소리 끝나지 않은 새벽반려견 '구름'이와 산책을 준비하며 비우고 내려놓는다집착하는 못된 욕심도 버린다마음의 평화보다 더 큰 행복 어디 있으랴반려견 '구름'이와 새벽 산책 나서며 첫걸음 떼는 순간양극을 향해 냉혹한 자본의 칼바람 불어온다'착취=성공'을 가르치는 천박한 자본주의'약육강식'만 강요하는 피도 눈물도 없는 경쟁탐욕의 콘크리트로 쌓아올린 양생 덜된 건물 와르르 무너지고돈의 노예가 되어버린 종교는 끝없이 타락하고함께 나누며 정답게 살던 공동체는 해체되고못된 돈이 혈육의 정마져 끊어버리는 참혹한 현실에서도
지기럴 똥구멍이 찢어져라가난하고 어렵던 시절이어라그래도 개떡 인심은 좋았으니그 누가 개떡 먹는 걸뚫어지게 쳐다보고 있을라 치면즈이도 그것밖에 먹을 게 없지만별도리 없어라한 쪼가리 떼어 주고 말았으니꺼끌꺼끌 말라붙어양중엔 차돌멩이만큼이나 딱딱한 개떡그 한 쪼가리를 또 애꼈다간미웁고도 싫어라마침내 막내 모개한테까지 떼어 주니어린 마음에도 묘리 없어라개떡은 본디 떼어 주고 또 떼어 주란 것인가감출 수도 숨길 수도 없는 것이던가이 구석 저 구석 굴러다니며 발로 채이기까지나누고 나누어도 왜 그렇게 남는 것이냐이따금 그립고도 목이 메네그려 지
새해가 밝았다. 놀랍게도 벌써 한 달이 지나고 있다. 새해 목표로 흔히 건강 챙기기, 한 달에 한 권 책 읽기 등 다양한 위시리스트를 세운다. 천리길도 한 걸음부터 아니겠나. 거창한 목표보다는 하루에 짧은 시 한 편씩 스텝을 밟아보자. 해당 시집은 19년 로 등단한 김희준 시인의 작품이다. 2020년 여름, 갑작스러운 사고로 영면했다. 젊은 나이에 유고 시집이 된 이 작품은 시인의 생일이자, 시인이 하늘로 간 지 49일이 되는 날 출간되었다. 분석 전 시인의 아름다운 시를 더 볼 수 없음에 안타까운 마음을 전하며, 삼가
김소월은 음력 1902년 8월 6일 평안북도 구성에서 태어나 1934년 12월 24에 사망한다. 본명은 김정식이고 소월은 흰 달이란 필명이다. 맑고 고운 그의 심성과 시심이 잘 나타나는 듯하다. 오산학교와 배재고등 보통학교를 거쳐 도쿄대 상과를 중퇴한다. 1920년 시 「낭인의 봄」으로 데뷔하고 1926 동아일보 정주지국 설립했지만 실패한다. 1981년 금관문화훈장, 1999년 한국예술평론가협의회 선정 20세기를 빛낸 한국의 예술인을 수상하고 대한민국에서 가장 사랑받는 시인이다.스승 김억의 애제자였으며 소크라테스와 플라톤의 관계처럼
산사겨울은 맑은 계절이다.차가운 공기가 맑고바라보는 시선이 맑고정신이 맑아진다.허전한 산속에 허름한 절이 있다.진입로에는 개천이 흐르고일주문 너머엔 험상궂은 사천왕이 버틴다.목탁소리 들리고풍경소리 들리고염불 외는 소리 들린다.물소리 들리고산새소리 들리고바람소리 들린다.온통모든소리맑다.
수많은 생각 고민 걱정과 함께하는 인생길단 한 순간이라도 생각없이 걸어볼 수 있다면누구든 그렇게 걷는다면 그는 행복한 사람이다산맥을 솟구쳐 떠오른 해를 바라보다가너무나 눈부셔 고개 떨구면황급히 돌틈으로 숨어드는 다람쥐 한마리구멍 속에 살찐 알밤은 저장해두었을까청설무에게 빼앗기지는 않았을까다람쥐를 걱정하는 순간함께 걷던 반려견 구름이가 돌틈에 코를 박는다더 깊이 들어가렴 다람쥐에게 위로의 말을 건네고구름에게 갈 길을 재촉한다생각없이 걷다가 문득 생각 나 뒤돌아보면지나온 길 아득하다처음 이 길로 들어설 때생각없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