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밑에 네 친구가 왔다.”“친구?”“주정뱅이 말이야. 내가 뭐랬어. 숙소를 가르쳐 주면 찾아온다고 하지 않았어?”“안 가르쳐 줬어. 어떻게 여길 알았을까……. 어쨌든, 있다고 했어?”“아니, 있나 없나 본다고 했어. 그 친구는 벌써 한잔했더군. 술 냄새가 역해.”“체크인한 사실이 없다고 말했어야지.”“네가 알려줬다고 생각했지. 젠장.”“방에 없다고 해 줘. 미안.” 쓰던 일기를 마저 쓰려고 볼펜을 들었으나 상념이 이어지지 않았다. 생각하고 싶지 않은 생각이 자꾸 머리를 쳐들고 꼬리를 흔들었다. 주로 술 생각이었다. 한 시간 쯤 버티
안개가 차오르고 있었다. 내 뒤에 따라오던 짙은 안개가 나를 앞질렀다. 광장에는 안개가 구름처럼 사람들 사이를 흘러다녔다. 까무잡잡한 현지인 관광객들은 그런 안개 속에서 즐거워하며 사진을 찍고 있었다. 신혼부부, 핵가족, 대가족도 있었다. 한 줄은 벤치에 앉고, 한 줄은 그 뒤에 주르르 서도 모자라 벤치 앞에도 서넛이 털썩 주저 앉아야할 만큼 식구가 많은 대가족도 있었다. 그 많은 식구들을 향하여 카메라를 들고 있던 여학생이 내게 카메라를 내밀며 미소 지었다. 셔터를 눌러 달라는 거였다. “스마일. 하나, 둘 …….” 번창한 가족의
비탈길을 에돌아 학교 마당으로 내려섰다. 미쉘은 거기 있었다. 인부들이 페인트칠 하는 벽을 다른 두 사람과 함께 올려다보고 있었다. 세 사람 모두 정장 차림이었다. 무슨 모임에 다녀 온 듯 했다. “김!”미쉘이 반갑게 웃었다. 면도를 했는지 얼굴이 말쑥했다. 미쉘이 함께 있던 두 사람을 소개했다. 젊은 여자는 친정에 갔다던 미쉘의 아내 강가. 눈초리에 의심과 짜증을 달고 있었다. 체구가 큰 서양 남자는 미쉘의 형 요한. 형제라지만 둘이 너무 달랐다. 미쉘이 사근사근하고 순진해 보인다면 요한은 거칠고 야비해 보였다. 배다른 형제일지도
우선 아일랜드에 갔다. 배낭 속 약주머니에서 아스피린을 찾아 두 알을 먹고 체크아웃 했다. 여주인에게는 시킴으로 떠난다고 했다. 세탁소에 맡긴 빨래와 침낭도 찾아왔다. 침낭은 깨끗해졌지만 벤젠 냄새가 심했다. 아스피린을 먹은 후 잠시 잊었던 두통이 재발하는 듯 했다. 침낭을 침대에 펼쳐 놓고 보니 과연 홀쭉해져 있었다. 햇살 좋은 날 빨랫줄에 널어놓고 손으로 비비면서 두드리면 어느 정도 복원이 된다던 몽사의 말이 생각났다. 벤젠 냄새라도 빼야겠다 싶어서 침낭을 대충 말아 안고 옥상으로 올라갔다. 하늘은 흐리고 바람도 없었지만 안개도
머리가 너무 무거워서 들 수 없었다. 눈을 뜰 수도 없었다. 눈곱이 말라붙어 속눈썹들로 눈을 꿰매 놓은 것 같았다. 손가락에 침을 묻혀 문질러서 간신히 눈꺼풀을 벌렸다. 커튼 한쪽으로 희미한 빛이 들어오고 있었다. 어딘지 전혀 알 수 없는, 비좁은 방이었다. 일어나고 싶어서 눅눅하고 묵직한 솜이불을 젖혔다. 조금 움직였을 뿐인데 편두통을 앓았을 때처럼 머리가 욱신욱신 아팠다. 목이 타고, 아랫입술 안쪽이 쓰라렸다. 개를 쫒기 위해 휘두르던 허리띠가 내 입술을 스친 기억이 났다. 이불 속에서 배를 더듬었다. 여권과 달러가 든 전대는
학교 마당이 파도 위의 갑판처럼 출렁였다. 거기 혼자 위태롭게 서서 춤추듯 비틀거리는 사람은 미쉘인가 했더니 병수 형이었다. 병수 형인가 했더니 미쉘이었다. 병수 형은 1975년 12월에 서울 삼청동 자취방에서 연탄가스 중독으로 죽었다. 병수 형은 반야라는 하얀 암고양이와 함께 살았었다. 반야는 병수 형의 죽은 애인의 이름이기도 했다. 병수 형은 반야를 마치 애인처럼 끌어안고 다녔지만 나는 반야가 달갑지 않았다. 그 음산한 울음소리는 특히 싫었다. 그때 나는 도봉산 밑에 살았기 때문에 종로통에서 술 마시다 통금에 쫓기면 병수 형 자
광장 건너편 행상들이 좌판을 걷고 있었다. 티베탄 마부들도 말을 끌고 집으로 돌아가고 있었다. 미쉘은 광장 동쪽 비탈에 있는 공중변소 뒷골목으로 들어섰다. 거기 판자로 지은 싸구려 선술집 서너 채가 나란히 있었다. 다르질링에서 가장 누추하고 좁고 저속한 선술집들이었다. 미쉘이 맨 끝 집의 거적을 들추자 흐린 불빛이 퍼져 나왔다. 불빛 속에서 여자의 조그만 얼굴이 나타났다. “김, 이 숙녀가 바로 내 애인 스바나야. 어서 들어와.” 미쉘은 여자의 목을 왼팔로 감으려했으나 여자는 살짝 빠지며 안으로 모습을 감추었다. 미쉘이 발정한 곰처
안개가 스멀거리는 문 밖을 망연히 내다보고 있었다. 그러다 문득 현실로 돌아왔을 때, 다음날 오전에 침낭을 찾고 오후에는 시킴으로 떠나려던 계획에 차질이 생길 것이라는 생각이 스쳤다. 미쉘을 만났기 때문이었다. 나처럼 못났고, 나처럼 슬프고, 나처럼 술에 탐닉하는 인간인 미쉘도 무슨 생각을 하는지 잠시 말이 없었다. 우리 둘은 와이프 이야기가 드리운 암울한 그림자에서 쉽게 벗어날 수 없었다. 둘 다 멍하니 안개 속에 투영된 각자의 쓰라린 과거를 바라보고 있었나 보았다. 희뿌연 안개를 몰고 들어온 한 떼의 술꾼들이 앉을 자리를 찾았다
약을 삼키고 나서 그가 말했다. “참, 네 이름이 뭐였지? 나이와 직업도 말해 줬던가?”“내 이름은 김이다. 나이와 직업은 네가 알아 맞혀 봐라.”“김, 이제 기억난다. 김이었지. 그리고 ...... 나이는...... 글쎄 ....... 동양인 나이는 알기가 쉽지 않다.” 미쉘은 새삼스럽게 나의 이모저모를 뜯어보았다. 그 짧은 순간에 나는 뭐라고 말해야 둘 다 즐거울 것인가를 궁리해냈다. “직업군인이었어. 1971년에는 베트남에 있었지.”“1971년에 베트남이라……. 그럼 네가 몇 살이란 말이냐?”“1950년 생. 올해 마흔 다섯
다시 짙은 운무. 무작정 걸었다. 물러 터진 토마토가 굴러다니는 질척질척하고 좁은 채소 시장 골목을 빠져나오니 비썩 마른 노동자들이 트럭에서 짐을 내리는 길모퉁이가 나왔다. 낯익은 장소였다. 트레킹 직전에 몇 번 들렸던 선술집이 그 모퉁이 맞은편에 보였다. 벽에 머리를 기대고 앉은 사내의 담뱃불이 빨갛게 피다가 졌다. 눈이 쓰리도록 자욱한 담배 연기 속에서도 담배를 피워야하는 주정뱅이들, 오줌 지린내 같은 땀 냄새와 쥐가 썩는 것 같은 겨드랑이 냄새, 그리고 주인 여자가 입은 양털 옷에서 나는 비린내도 역겹지만 앉을 자리도 없었다.
넋 놓고 걸었나 보았다. 눈앞에 페마가 서서 웃고 있었다. 페마는 묻지도 않았는데 ‘당신의 친구들이 가게에 있다’고 알려 주고 나서 길 아래로 내려갔다. 길 위로 멀리 페마네 뚱바집이 보였다. 내 발길은 나도 모르는 사이에 페마네 가게로 향하고 있었던 것이다. 마호가니 병을 깨트렸던 소년이 페마처럼 ‘안녕하세요’ 라며 환하게 웃었다. 불과 며칠 동안 들었던 우리말 인사를 억양까지 비슷하게 익혔다. 이미 와 있던 취생도 몽사도 번갈아 ‘안녕하세요’를 했다. 그 두 사람이 소년에게 ‘안녕하세요’라는 한국 문장의 발음과 억양을 가르쳤음이
보트에 두 사람이 있었다. 한 사람은 길게 누워 있고 한 사람은 앉아 있었다. 앉아 있는 사람은 여자, 여자는 눈물을 흘리고 있었다. 턱을 타고 흘러 내린 눈물은 누워 있는 남자의 얼굴에 떨어지고 있었다. 보트는 흐르지 않는 듯 흘렀다. 여자는 느린 노래를 힘없이 부르고 있었다. 슬픔이 극에 달한 사람이, 슬픔에 눌려 죽어가는 사람이 낼 수 있는 음성이었다. 어쩌면 흐느낌이 노래로 들렸는지도 모르겠다. 꿈에서 깨면서 방금 꾼 꿈을 세세히 기록해 둬야 한다는 생각이 들었다. 침대에서 일어나 책상에 앉아 일기장을 펼치고 볼펜을 들자마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