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기도와 경기문화재단(경기옛길센터)은 경기옛길 도보탐방 전용 스마트폰 앱 ‘경기옛길’을 정식 출시했다고 16일 밝혔다.이번에 출시된 경기옛길 앱은 경기도의 코로나19 확산 방지 정책에 발맞춰 비대면·비접촉 도보탐방을 위한 다양한 기능이 담겨 있다.처음 경기옛길을 걷는 초심자에게 유용한 ‘따라가기’ 기능은 GPS 정보를 이용해 경기옛길 노선을 안내하고, 노선을 이탈했을 경우 경보음이 울리도록 해 혼자서도 안전하고 편리하게 탐방을 즐길 수 있도록 돕는다.무엇보다 눈에 띄는 기능은 경기옛길을 걸으며 마치 라디오를 듣는 듯 길에 얽힌 이야
이층 큰 방에는 체경이 달린 오래된 장롱들과 철제 침대 대여섯 개가 있었다. 일제 때는 사교댄스 교실이었을 거라는 소문이 돌 만큼 크고 넓은 방이었다. 장롱들 속에는 전쟁 때 납북된 할아버지의 양복과 모자와 가방과 안경 등의 유품들이 고스란히 보관되어 있었다. 벽을 따라서 배치되어 있는 침대들을 대학생이었던 외삼촌 두 분과 내가 하나 씩 쓰고도 몇 개가 남았다. 이층 큰 방에서는 골목을 지나가는 행상들의 노래가 잘 들렸다.“ 아지나 동태 ~ 도루묵……. 아지나 동태 ~ 도루묵…….”“ 다발무가 싸구려~ 다발파가 싸. 다발무가 싸구려
숙소에 돌아와 장 보따리를 풀어 놓고 우리는 언제 떠날 것인가를 의논했다. 내일 아니면 모레가 적당했다. 또한 모레보다는 내일이 안전하다는 결론을 내렸다. 결국 우리는 다음날 아침에 떠나기로 결정했다. 부탄 여성들은 몹시 서운해 했다. 특히 아네이가 그랬다. 아네이는 그새 정이 들어서 눈물을 글썽였다. 몽사는 바바에게 우리가 떠난다는 말을 전하러 갔다. 취생은 슬퍼하는 부탄 여성들을 위로하고 스님은 말없이 저녁을 준비했다. 나는 스님을 거들었다. 스님은 감자를 넣은 수제비를 끓였다. 홑이불 수제비라고 했던가? 밀가루 반죽을 홑이불처
인터넷으로 떠나는 여행, 랜선여행 네번째는 섬진강_시인으로 유명한 김용택 시인의 생가가 있는 섬진강 상류로 떠나겠습니다.섬진강은 요즘 주말이면 아주 바쁩니다. 지금이 자전거 여행 하기 가장 좋은 시기라 섬진강_자전거여행을 떠난 이들이 시원스럽게 강변을 달립니다.섬진강 자전거 여행의 들머리가 되는 전북 임실군 덕치면에 김용택 시인 생가가 있습니다. 김용택 시인은 서정시를 사랑하는 이들이라면 누구나 좋아하는 시인이죠!섬진강의 풍경과 강마을 사람들, 그리고 애틋한 이야기들을 정감 있는 시로 써내는 시인입니다. 김용택 시인 생가에서 천
걸어서 떠나는 대한민국 도보여행!2019 대한민국 평화통일 국토대장정 3일차 두 번째 영상입니다.<대한민국 도보여행! 2019 평화통일 국토대장정 평택에서 천안까지>
걸어서 떠나는 대한민국 도보여행!2019 대한민국 평화통일 국토대장정 3일차 두 번째 영상입니다.
청명한 아침이어서 피케가 잘 보였다. 잘 하면 오늘이 이번 순례에서 마지막으로 피케를 바라보는 날이라 생각하니 피케의 자태가 새삼스러웠다. 피케 정상을 시계의 중심에 놨을 때 우리의 현 위치는 7시 방향이었다. 3주 전에 우리는 8시 방향인 지리에서 피케로 접근하여 시계 방향으로 한 바퀴 크게 돌아 이제 지리로 빠져나가는 것이다.3주전, 우리는 순례를 시작하면서 배에 왕짜王字가 새겨질 때까지 걷기로 했었다. 그리고 그렇게 되는 데는 한 달이면 족하다고 나는 장담했었다. 한 달 내리 걸으면 배에 왕짜가 새겨진다는 이야기는 결코 터무니
길은 잠시 완만해지더니 다시 긴 오르막으로 이어졌다가 계곡으로 내려섰다. 외딴집들이 드문드문 들어서 있는 계곡 끝의 어느 집 샘가에 이르러 짐을 풀고 잠시 쉬었다. 그 집 부인에게 청해서 더히(요구르트)를 큰 컵으로 한 컵 씩 먹고 돈을 내려고 했더니 그 아낙이 단호하게 손을 내저었다.- 파이사 뻐르다이나. 바토 자누 만체라이 더히 엑 길라스 디에 뻐치 파이사 버나우네 람로 차이나. (돈 필요없어요. 나그네에게 더히 한 컵 주고 나서 돈 받는 거 안 좋아요.)네팔 산중을 돌아다닌 지 꽤 오래 되었지만 이렇듯 딱 부러지게 돈을 거절하
오다 말다 하는 비를 맞으며 주인을 부르고 있자니 초로의 부인이 흙이 잔뜩 묻은 손을 털며 나타났다. 채마밭에 쭈그리고 앉아 김을 매다 온 것 같았다. 앙 다와 씨가 부인에게 숙식이 되겠냐고 물으니 그녀는 곤란한 표정을 지으며 쌀이 없다고 했다. 그녀의 생각에는 우리가 쌀 아니면 안 먹는 부자들이었던 거다. 내가 나서서 네팔 말로 거들어 봤다. - 사우니, 써머시아 차이나. 하미레 알루 뻐니 카누 훈차, 먹거이 뻐니 카누 훈차. (부인, 문제없습니다. 우리는 감자도 먹고 옥수수도 먹습니다.) 내가 네팔 말을 하자 아낙네는 놀랍다는
앙 다와 씨에 의하면, 설산 가우리상칼의 티베트 식 이름은 초무치링마이다. 가우리상칼은 힌두식 이름일 거라는 정도는 짐작한 바 있지만 초무치링마에 대해서는 전혀 듣지 못했다. 구름이 점점 차올라 가우리상칼의 소라 고동 끄트머리 같은 그 뾰족한 정상만 간신히 남겼을 때 우리는 제세 반장으로 하산을 시작했다. 응달진 곳으로 난 비탈길은 군데군데 이미 얼어 있었고 무너진 곳도 있어서 조심스러웠다. 이윽고 제세 반장이 발밑에 보이는 비탈에서 람주라라 능선 쪽을 바라보니 그쪽에는 시커먼 구름이 엉키고 있었다. 비나 눈이 올 조짐이었다. 우리
치즈 공장을 지나 나울 마을 어귀에 이르자 또 다른 마네가 보였다. 마을 가까이 있어서인지 장식이나 구조에 훨씬 정성을 드린 듯했다. 식전에 두 시간, 식후에 두 시간, 모두 4시간을 걸은 이 날 일찌감치 여장을 푼 집은 바로 나왕 린지 라마네 집이었다. 이 날은 종일 날이 흐려서 몰랐는데 날이 갠 다음 날 아침에 보니 부엌 문 밖으로 설산 눔불 히말과 가오리상칼이 보였다. 여장을 푼지 두어 시간 후에 나왕 린지 라마가 피케 마네에서 내려와 우리에게 마을 곰파를 보여 주었다. 나왕 린지 라마가 거처하는 방도 있는 그 곰파의 대웅전에
지난봄에는 술 취해서 걸었던 밤길을 낮에 걷자니 처음 걷는 길 같았다. 유채꽃이 환하게 핀 농가들, 산비탈의 다락논, 푸른 하늘 밑에 새하얗게 빛나는 설산 룸불 히말이 모두 새롭게 보였다. 커다란 보리수가 서 있는 길가의 밥집에서 라면을 먹고, 가파른 산비탈을 오래 내려가 출렁다리 건너편 산비탈 위에 있는 절쿠의 셀파 호텔에 도착한 때는 오후 3시 경이었다. 내친 김에 두 어 시간 더 걷고 싶었지만 이곳 셀파 호텔만큼 괜찮은 숙소나 밥집을 해지기 전에 만나기는 어렵다는 앙 다와 씨의 의견을 존중해야 했다. 셀파 호텔은 지난봄에 들러